성경: 시편 114:1-5
제목: 홍해와 요단강
일시: 2014. 12. 28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그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의 필연적인 여정이었다. 애굽은 이스라엘이 있을 곳이 아니었고 가나안은 이스라엘이 가야만 할 곳이었다. 애굽은 종된 삶이었고 가나안은 자유한 자의 삶이었다. 애굽은 세상 권력의 통치가 있는 곳이었고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요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곳이었다. 이 필연적인 여정에서 건너야 할 두 개의 큰 장애물이 있었다. 하나는 애굽에서 나올 때의 홍해요 다른 하나는 가나안을 들어갈 때의 요단강이었다. 홍해와 요단강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는가?
II. 홍해를 건너라.
성경에서 애굽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다. 이스라엘백성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 같아도 언제나 발목을 잡는 나라였다. 이스라엘은 필요에 처할 때마다 애굽을 바라보았지만 애굽은 결코 이스라엘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애굽이라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비록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난 것까지는 잘했지만 그가 머문 그 땅에 기근이 있자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다.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자기의 아내 사라를 바로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한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을 나와 광야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투덜거리는 아이와 같이 계속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한다. 신광야에 이르러 먹을 것이 떨어지니 “우리가 애굽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16:3)
한다. 그래서 만나를 하나님이 주시는데 이제는 또 목마르다고 난리이다.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출17:3)라고 한다. 그때 모세는 호렙산 바위를 쳐서 암반석 생수를 준다. 그쯤되면 양심이 있으면 좀 인내해야 할 것인데 그들은 만나로만 맛이 없으니 고기를 달라고 한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민수기 11:5-6절)라고 한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들에게 메추라기를 주신다.
광야의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애굽을 생각하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바로 홍해였다. 하나님께서는 왜 홍해를 주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절망하게 하고 괴롭게 했을까?
단절을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잘 아셨기에 홍해를 주신 것이다. 홍해는 단절을 위한 바다였다. 과거의 그 익숙한 삶을 단전하기 위함이었다. 체질화된 과거의 종 되었던 삶에서의 단절이다. 홍해는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하는 바다였다. 홍해가 있기에 이스라엘은 더 이상 애굽을 바라보지 않고 약속의 땅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홍해가 없다면 조금만 어려워도 다시 몸을 돌려 애굽으로 향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한번 가르기로 작정하셨지 두 번 가르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홍해로 인해 좌절하게 하시고 다시 돌아가기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셨다. 쉬워봐라 금방 쫓아간다. 이렇게 홍해를 건너야지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혼을 하는 것이 쉬운가? 사람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사랑고백에서 사귐 그리고 많은 변수들을 다 거치고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결혼을 하는데 간소화도 좋지만 너무 간소화해서 결혼식을 가볍게 해서도 안된다. 돈도 꽤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이거 두번 다시 못할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재산이 얼마 있든지 함께 공유해야 한다. 살다보면 혹 이혼도 할 수 있는 것이니 그때 복잡하지 않도록 자기들의 재산은 합치지 않는 것으로 하면 안된다. 그리고 암트에서 법적인 결혼도 하고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 결혼해야 한다. 나중에 성격차도 날 수 있으니 좀 살아보고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물리기 쉽게 말이다.
홍해를 건널 때 후회가 많은 광야를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삶에서의 승리와 약속의 땅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은 다시 건널 수 없는 홍해의 우리 뒤에 있기 때문이다. 퇴로를 만들지 말라. 승리의 전략이 퇴로를 만들지 아니하는 것이다.
나폴레온은 죽음을 무릎쓰고 싸우기 위해 부관에게 건너왔던 배를 불 지르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위대한 정복자 줄리어스 시이저나 무적의 해적 바이킹 역시 육지에 도착하면 자신들이 타고 왔던 배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모두 도망할 구멍을 막고 퇴로를 차단하여 죽기 살기로 싸워야 이길 수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한고조의 명장 한신은 전세가 불리해지면 병사들이 도망갈 염려가 있기에 강물을 뒤로해서 진을 쳤다. 그래서 물에 빠져 죽으나 싸우다가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한 병사들은 죽을 힘을 다해 싸워 결국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때 배수진이라는 말이 나왔다.
홍해는 우리로 하여금 지금의 삶의 현장에서 승부를 짓게 한다. 애굽의 생선과 고기와 오이와 참외, 부추와 마늘이 생각날 때 다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것은 홍해이다. 루비콘 강을 건너며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말했던 시이저와 같이 우리는 돌아갈 수 없는 홍해를 뒤로 하고 지금 내 삶의 현장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홍해는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전심전력하게 한다. 과거의 향수와 왕년에 한가닥하는 낭만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홍해의 영적의미가 무엇인가? 고린도전서 10장 1-2절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아래에 있고 바다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이 말은 홍해침례를 받았다는 말이다. 침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가?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홍해에서 우리는 죽은 것이다. 죽은 자는 감각이 없다. 홍해는 더 이상 애굽을 감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애굽은 죄와 세상이요 종되었던 우리의 과거를 말한다. 홍해침례는 죄와 세상과 종되었던 과거와 죽음과 같은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님이 태어나셔서 헤롯이 목숨을 찾았을 때 애굽으로 피난을 했다. 그 이유는 “내가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렀노라”는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다.
III. 요단강을 건너라.
홍해를 건넜기에 이스라엘은 이제 과거의 모든 결박의 사슬에서 해방되었다. 단절의 바다 회개의 바다를 건넜다. 애굽이 흔들어 깨워도 애굽을 감각하지 못하고 더 이상 애굽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뭐? 그게 결론이 아니다. 진정한 게임은 이제 시작이 된 것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이제 앞으로 가야 할 목표가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제 요단강을 향해 가야 하는 것이다.
요단강까지 어떻게 가게 되는가?
누가 나를 밀었어? 유대인부호가 있었다. 그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그 부호는 딸과 결혼시킬 사위를 구하는 공모를 했다. 지원한 많은 청년들이 그 부호의 사위가 되겠다고 정해진 날 몰려 들었다. 안내인이 그 모든 이들을 그 대 저택의 풀장으로 안내를 했다. 다들 그 풀장 가장자리에 섰다. 건너편에는 부호와 딸이 앉아 있었다. 안내인이 이제 사위를 뽑는 방법을 말한다. 누구든지 이 풀장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여 그 부호와 딸에게 가장 먼저 가면 된다는 것이다. 이제 출발선상에 선 청년들, 그러나 그들은 그 풀장을 보았을 때 아무도 뛰어들지 못했다. 그 물속을 보니 악어 물뱀 등 무섭고 징그럽게 생긴 각종 동물들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뛰어들지 못하는 가운데 한 청년이 용감하게 뛰어든다. 그러자 다들 자신들이 지금 부호의 딸과 결혼하는 경쟁자임을 잊고 그 용감한 청년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사력을 다해 헤엄치는 그 청년 마침내 반대편에 도착하고 올라간다. 그리고 그 부호와 딸 앞쪽으로 간다. 그러나 그들을 지나쳐서 청년들이 있는 곳으로 온다. 그리고 외친말은 “누가 나를 밀었어” 그가 사력을 해서 수영을 한 것은 다른 목표가 아니라 밀려서 그렇게 한 것이다.
홍해에서 요단강까지의 길은 어떠한 길인가? 광야의 길이었다. 그 광야의 길은 황폐함과 부족함, 위험과 불확실한 미래만 있을 뿐이었다. 애굽에서 가나안, 홍해에서 요단강, 이 긴 여정을 이끄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어떠한 사람인가? 모세는 언제나 위기의 사람이었다. 코너에 몰려서 살았다. 그의 삶은 밀려가는 삶이었다. 그가 계획하고 목표를 가지고 달려갔다기 보다 밀린 것이다. 누가 밀었는가? 하나님이 민 것이다. 모세는 애굽에서 태어나서 3개월 부모 밑에 양육되었지만 죽어야 할 히브리노예의 남자 아들이라는 어쩔 수 없이 버려지게 된다. 그는 갈대상자에 뉘여져 나일강에 띄워졌다. 이제 그를 이끄는 것은 나일강의 흐름이었다. 나일강의 조류에 따라 밀려가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인생이었다. 어디로 가는가? 마침 나일강에 바람을 쐬러 나온 바로의 딸 하셉수트에 의해 건져진다. 그래서 물에서 건져내어졌다는 의미의 이름인 모세가 된다. 그는 왕궁으로 들어가 바로의 아들, 이집트의 왕자로 살게 된다. 그것은 그의 계획이 아니라, 밀려진 인생이었다. 40년 후 그는 다시 왕궁을 나오게 된다. 그가 원대한 꿈을 가지고 철저한 계획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밀려서 나온 것이다. 히브리사람 하나와 애굽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애굽인을 죽이게 된다. 뭐 죽이려고까지 했겠는가! 하지만 한 대 친게 살인이 뵈고 모세에게 책임을 묻는 바로를 피해 모세는 궁을 도망쳐 나오게 된다. 계획한 것이 아니라 그는 밀려 나온 것이다. 그리고 미디안광야에서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40년간 평범한 유목민으로 살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그곳은 그의 삶의 목표는 아니었다. 때가 되니 하나님께서 그를 또 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호렙산 떨기나무불꽃 가운데서 그를 부르신다. 또 밀려서 바로에게 간다. 그는 사양을 한다. “...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4:10).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굳이 그를 택하여 대변자 아론까지 붙여주신다. 그냥 아론을 쓰실 것이지 말이다.
그 이후로 그는 바로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열 가지 재앙, 유월절 사건, 그리고 홍해를 가르는 일들을 주도하며 이후 광야에서 40년간 이스라엘백성들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살아간다. 마침내 그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요단강이다. 요단강까지 오는데 모세는 밀려서 온 사람이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 질문 거리가 많았을 것이다. “왜 이리 오래 걸리게 하십니까”. “왜 돌아가게 하십니까.” “왜 편안한 길도 있는데 험난한 길을 주십니까.” “바닥을 치거나 고생하기 전에 미리 미리 주시지 왜 사람의 애를 끓이기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계속 코너로 몰아가시면서 모세를 이끌어 오신 것이다.
모세는 애굽에서부터 시작해서 광야를 거치는 동안 그 위기의 순간과 밀리는 순간 하나님의 손길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철저히 깨닫게 되었다. 바로의 마음이 완고했지만 하나님께서 10가지 재앙으로 이스라엘을 바로의 대기권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파워를 깨달았다. 홍해의 위기가 있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현장이 되었다. 배고플 때 만나를 경험하고 목마를 때 반석의 물을 경험했으며 고기를 원할 때 메추라기를 먹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대박을 터뜨리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이 모든 일이 모세와 이스라엘을 요단강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요단강이 이제 앞에 놓이게 되었다. 그것이 대박인 것이다. 대박이라는 말이 요즘 많이 쓰여진다. 핸드폰 배경사진이 좋아도 대박, 국먹다가 고기 큰 거 하나 들어와도 대박, 앙게보트로 과일이 싸게 나와 샀다고 해서 대박... 별게 대박이다. 하나님께서는 대박을 터뜨리기 위해서 광야를 걷게 하셨고 이제 이스라엘은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요단강을 이제 건너라. 그것은 가나안대박을 터뜨리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건너야 할 강은 요단강이다. 그 강은 가나안으로 안내하는 강이다. 그 강은 소망의 강이다. 요단강은 약속의 강이다. 홍해침례라면 애굽과의 단절을 말하는 죽음을 의미한다면 이제 요단강은 부활을 의미하는 생명의 강인 것이다. 홍해는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바다였다. 하지만 요단강은 미래와의 연결을 하는 강이다.
IV. 오늘 주일은 2014년도 마지막 주일이다. 후회스럽고 아쉬운 것도 뒤로 한다. 지난날 좋았던 것도 자만하지 말고 그 낭만 속에 취해있지 말라. 괴롭고 힘들었던 삶의 과거의 감옥에서 벗어나라. 홍해를 건너라. 그리고 이제 2015년을 맞이하라.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라. 그 강은 이제 가나안으로 이끄는 대박의 강인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라.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의 대박을 터뜨리기를 사모하라. 이스라엘백성들이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는 이제 과거의 삶 홍해를 건너고 미래의 삶 요단강을 도하하려고 한다. 이 모든 여정에서 우리를 미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라. 홍해를 가르시고 요단을 여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라.
그러한 2014년도의 마지막 주일이요 2015년도를 바라보는 오늘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