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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

하나님이 쓰시는 드라마

작성자권순태|작성시간15.08.24|조회수275 목록 댓글 0

 

성경: 에스더 9 : 20 - 22

제목: 하나님의 드라마

일시: 2015. 8. 23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가 유대인을 통치하고 있던 시기에 그의 수하에 하만이라고 하는 장군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유대인들의 수장인 모르드개와 온 유대민족을 멸절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추종자들과 더불어 “부르”라는 제비를 뽑아 유대력 12월 13일을 유대인 인종청소의 D데이로 잡았다.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였기에 그에게 왕의 인장이 새겨진 자신의 반지를 빼어 주어 조서를 마음대로 내리게 했다. 전권을 위임한 것이다. 그 조서에는 아달월 13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다 죽이고 재산을 탈취해도 좋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절체절명의 이 위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드라마를 보게 된다.

 

II. 하만이 한 것은 높이가 50규빗(25m정도되는 높이)이 되는 긴 장대를 세워 거기에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고 모든 유대인들은 조서에 명이 내려진 대로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만이 그런 계획을 할찌라도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서부터 반전을 가져 오신다. 

 일은 “그날 밤”에 벌어지게 된다. 6장 1절을 보라. “그 날 밤에” 그날은 에스더가 왕 아하수에로를 초청할 때 그의 신하가운데는 유일하게 초청받아 자신에게 대한 신임이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여 감사하고 모르드개를 달아죽일 장대를 세운 날이다. 그런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왕궁의 일지를 가져오게 하여 읽게 시켰다. 그런데 그 기록 속에서 왕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왕의 내시 빅단와 데레스의 암살미수사건이다. 당시의 왕들은 칼로서 왕이 되었기에 자신과 같은 권력의 야망을 가진 사람들을 언제나 경계했다. 그래서 신복을 바로 옆에 두고 경호를 철저히 하며 역적을 최고의 악으로 다스린다.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가고 싶어도 부름 없이 나가게 되면 심지어 왕비라도 죽임을 당한다는 규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왕이 얼마나 자신의 신변의 안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바로 이 사건에서 모르드개라는 사람이 그 내시들의 암살음모를 알고 고발하여 거사 직전에 왕을 위기에서 건져내었다는 사실과 큰 공을 세운 그에게 아무런 상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르드개는 당시에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을 뿐이지 여전히 보상은 저축되어 있는 것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날 이자이익이라도 발생하려는 듯이 말이다. 응당 받아야할 보상을 받지 못하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빚을 진자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하수에로는 채무자이고 모르드개는 이제 채권자이다. 마치 압축된 용수철과 같이 더 강하게 튀어오를 날만 기다리면서 폭팔의 그날을 위해 계속 압력이 가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모르드개는 한 장의 와일드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판을 키우시는 하나님이시다. 모르드개의 보상을 미루셨다. 하나님은 그것을 갚으실 날을 키우고 계셨다.

자 하나님께서 이제 어떻게 보상을 시작하시는가? 모르드개를 높이는 일을 기가막히게 하신다. 모르드개를 보상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아하수에로는 “누가 뜰에 있느냐”고 묻는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이른지라”(에스더6:4). 절묘한 타이밍이다. 신하들이 하만이 뜰에 있다하니 왕이 반가워하면서 들어오게 한다. 그리고는 묻는다.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라고 묻자 하만은 심중에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라고 생각하면서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에스더 6:8-9절)라고 한다. 이에 왕은 곧바로 모드르개를 데리고 오고 하만이 말을 몰고 모르드개를 모시고 대궐문을 나가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게 되었다. 아주 통쾌한 장면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만을 바로 끊어버리지 않고 바닥을 치게 하신다. 하만의 교만은 이제 땅에 떨어질 때에 큰 소리를 내도록 만들 것이다. 거리에서 이제 그렇게 그의 위신이 깍이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아신다. 우리의 수고와 땀을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보상을 아신다. 하지만 그가 반응하지 않고 내버려 두시는 것은 때를 준비해 놓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을 축복의 판을 키우고 계신다.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가 싶기도 하다. 어려움을 당해도 되는가 싶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두고 계시는 것이다.

 

III. 하나님께서 모르드개를 보상하신다는 것은 다른 한쪽에서는 하만을 벌하신다는 것이다.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 상을 받지 못하면 그것도 무척 속상한 일이지만 더욱 화나는 것은 정작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벌을 받지 않고 형통할 때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가 하는 반문이 일어날 때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르고 계시지 않는다.

에스더는 총 10장까지 있는데 절반인 5장까지는 하만의 우세였다. 그러나 6장서부터는 하만의 계획이 틀어지고 모르드개의 우세로 돌아가게 된다. (1)6장에서 우리는 하만이 참으로 “개망신”을 당하는 것을 본다. 좀 머리가 돌아가면 뭔가 돌아가는 분위기를 감지했어야 한다. 결국 반전이 되고 있다. (2)일단 처리되는 것이 하만이다. 왕의 내시 하르보나가 왕에게 말하기를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높이가 오십규빗 되는 나무를 준미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라고 하니 왕이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고 했다. 완전한 반전이다. 모르드개가 달릴 나무에 하만이 달린 것이다. (3)나아가 하만이 받을 수 있는 그 존귀함을 모르드개가 받고 모르드개를 달려고 했던 나무에 하만이 달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하만이 모르드개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르드개가 하만의 집을 다스린다.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다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하니라” (에스더 8:2). 그리고 왕의 반지가 하만에게서 모르드개에게로 넘어갔고 모르드개가 새로운 조서를 내리게 된다. 권력의 주관자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드라마는 하나님이 쓰셨다. 우리는 에스더 처음부터 여러 가지 하나님께서 포석을 깔아놓는 것을 보게 된다. 왜 왕후 와스디가 폐위가 되게 되는가? 왜 에스더가 왕후로 뽑히게 되는가? 왜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고 했고 모드르개가 알게 되었는가! 특별히 하만의 계략에 의해 에스더가 나설 수 밖에 없었을 때 모르드개는 그에게 무어라고 하는가?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스더4:14). 한 달 동안이나 에스더가 왕을 보지 못했을 때 목숨을 걸고 나가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날따라 “매우 사랑스러우므로”라고 한다. 그것도 그렇게 보여야 한다. 에스더는 오페라로 만들면 아주 멋질 것이다. 모르드개가 테너가 한다. 에스더는 오프라노가 하겠지. 아하수에로는 베이스 그리고 하만은 바리톤,... 하나님께서 무대에서 연출을 하신다. 마지막 장은 부림절이 제정되는 때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하나님이 연출하시는 드라마도 극적인 드라마요 반전의 드라마이다. 하나님은 극적인 드라마를 쓰시는 분이시기에 좌절할 필요도 없고 교만해서도 안된다.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끝까지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역으로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역전 반전의 명수가 되시기에 그분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내 자신에 대해서 포기하라. 실망하던 것을 포기하라. 불평하던 것을 포기하라. 우리는 좌절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드라마를 쓰기 시작하신다. 그래서 뭔가 할 수 있을 때 겁나고 뭔가 이제 더 이상 믿을 것이 없을 때 오히려 소망이 생긴다. 하나님이 설설 일해보실까 하는 것은 우리가 힘이 빠졌을 때이다. 에스더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표현일 것이다. 그 말에는 에스더가 자신의 왕후의 직도 자신의 생명도 다 포기하고 이제 하나님이 알아서 책임지라는 의미의 고백이었다. 바로 그때부터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한 것이다. 

절여진 배추를 보라. 김장을 할 때 배추가 잘 절여져야 한다. 소금이 골고루 잘 뿌려져야 한다. 우리는 뻣뻣하면 안된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이제 드라마를 쓰신 하나님을 다시 감각하고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규례를 세우게 된다. 부림절이다. 그 날은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드라마를 삶에서 감동있게 경험한 것이다. 지금도 이스라엘사람들은 율법이 정한 이스라엘의 3대 절기는 아니지만 그들의 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유대인들은 부림절에 다음의 네 가지를 실천한다. 첫째, 아달월 14일 저녁에 별빛이 나올 때 회당에 모여 에스더를 낭독하게 된다. 그리고 하만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그의 이름은 말살될 지어다 악인의 이름은 소멸될지어다”라고 청중들은 말을 한다. 둘째, 가까운 이웃과 친지들에게 선물을 보내며 기쁨을 함께 나눈다. 셋째, 가난한 사람 두 명 이상에게 자선을 베푼다. 넷째, 부림 만찬을 나눈다. 이 만찬은 단순히 음식을 함께 먹는 것 이상의 신앙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IV. 우리의 삶에는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다. 올라간다고 교만하지 말고 내려간다고 좌절하지 말라. 선한 이에게 보상이 없다고 좌절하지 말고 악인이 잘된다고 불평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드라마를 써 나가실 것이다. 그것이 모르드개에게 보상하신 하나님의 드라마이고 하만을 심판하신 하나님의 드라마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연출하시는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이었다. 하만이 던진 부르라는 제비, 우연의 제비, 재수와 운의 제비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바뀌어 이스라엘에게 부림절이 되었다. 어지럽게 흩어진 우리 삶의 모든 조각들을 계획하시고, 좌절을 소망으로, 약함을 강함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부림절 드라마가 우리의 삶에서도 재현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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