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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

솔로몬이 본 인생의 방정식

작성자권순태목사|작성시간16.06.13|조회수426 목록 댓글 0

성경: 전도서 9 : 1, 11 - 12

제목: 솔로몬이 본 인생의 방정식

일시: 2016. 6. 12 (2009. 6. 21)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사람들은 보통 빠른 것이 느린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한다. 지름길이 돌아가는 길보다 더 경제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2인자보다는 최고 일인자가 되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하더라도 세계 최초니 세계 최고니 혹은 세계 최대니 하는 타이틀이 붙어야 눈길을 더 주고 감명을 받게 된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확하게 맞는 답인가? 느리다고 나쁜 것이고 돌아가는 것이 손해고 등 수 안에 들지 못하면 루저가 되는 것인가? 인생의 방정식이 꼭 그렇게 답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솔로몬은 이러한 우리의 생각을 깨뜨리고 있다.

 

II. 솔로몬이 본 우리 인생의 방정식은 답이 딱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빠른 경주자는 그 누구보다도 우승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결승지점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는 것은 아니다. “빠른”이라고 했을 때 “이겼다”라는 말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것”이지 “그런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이 “힘”이 있는 자라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아니며, 똑똑하다고 판단과 결정을 잘하는 것도 아니며, 머리가 좋고 수단이 좋아 부자가 되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가능성이 있어도 가능성일 뿐 보증수표는 못된다.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일들이 예상을 벗어나고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을 우리의 인생에서 수도 없이 경험한다. 아니 오히려 내가 계획하는 것은 꼭 안 되는 것 같다. 웬 운명의 장난인지... 지금까지 내 계획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왜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는가? 솔로몬은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기에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시기와 우연(기회)은 내가 정하지 못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기와 우연”의 영향 아래 사는 인생이지 “시기와 우연”을 초월해서 사는 인생이 아니다. 우리가 시기와 우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돌발적인 변수가 갑자기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이 갑작스런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예측을 할 수 없다. 물고기들이 헤엄쳐 잘 놀다가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하늘을 신나게 날다가 올무의 걸림같이 생각지 못한 곳에서 우리의 인생을 전면 수정해야 할 때도 있다. 시기와 우연은 빠른 경주자가 예상한 것이 아닌 변수이다. 우리 인생의 방정식에서 밝혀지지 않은 비밀의 부호 x인 것이다. 솔로몬이 본 인생의 방정식은 우리의 계산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무원시험준비생이 아파트에서 투신해 40살 공무원 가장을 덮쳐 둘 다 숨지는 황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5월 31일 밤 9시 48분께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 20층 복도에서 대학생 A(26) 씨가 1층 건물 입구로 추락해 같은 시각 이 아파트에 들어서던 공무원 주민 B(40) 씨의 머리와 부딪혔다. 두 사람은 모두 119구조대에 의해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둘 다 숨졌다. 투신한 대학생은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여 A4 2장 분량 편지, 절반가량 빈 양주병을 남기고 스스로 몸을 던진 것이다. 어처구니 없이 죽은 피해자는 전남 곡성군의 공무원으로 곡성세계장미축제 관련 업무로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나서 귀갓길에서 변을 당한 것다.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일은 2개월 뒤 출산 예정인 아내, 6살 아들도 버스정류장까지 B씨를 마중 나왔다가 사고 현장에 함께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은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B씨를 뒤따르고 있었다. 1초만 늦게 혹은 빨리 걸었더라도...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인생의 기상도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제 우리 경제가 회복되겠는가? 주가는 오를 것인가 내릴 것인가? 환율이 좋아질 것인가 나빠질 것인가? 돈을 미리 부치는 것이 좋은가? 좀 더 기다릴 것인가? 수많은 경제학 박사가 있고 연구소들이 있지만, 제대로 예측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뉴스를 보면 어떤 기사를 올리고 나서 실컷 이야기하다가 종종 마지막에 한 줄씩 넣는 것이 있다. “일각에서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고 있지 않다”는 둥의 말이다. 일기예보에서도 곳에 따라 소나기가 내릴 수 있다고 한다. 아주 애매한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비가 안 내리면 이곳이 아닌가벼 싶고 비가 내리면 이곳인가벼 라고 생각해야 한다. 또한 비가 올 확률로 예보를 하고 있다. 그래서 오면 그 확률 안에 있는 것이고 안 오면 확률 밖에 있는 것이다. TV 프로그램이나 행사일정의 가장 밑줄에도 종종 “상기 일정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피할 길을 마련해 둔다. 앞으로 다가올 그 시기와 우연은 우리가 관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말이 앞서면 안된다고 한다. 우리의 인생은 살얼음을 걷는 것 같다. 빠른 경주자라도 근육에 쥐가 날 수 있고 빨리 달렸다고 싶었는데 돌부리가 있을게 뭐냐! 시험 준비를 잘 해 놓았는데, 그날 아프지 말아야 한다. 시험을 치기 위해 그 도시에 가는데, 기차가 연착하지 말아야 한다.

 

III. 지혜자의 말에 귀를 기울려 보라. 지혜자는 “빠른”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지 않았다. 빠르면 선착한다는 공식을 신뢰하지 않았다. 빨라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느려야 선착한다는 말도 아니다. 지혜자는 “용사”(유력자)라는 말에도 방심하여 마음을 풀지 않았다. 힘을 가진 용사들이라고 전쟁에서 늘 승리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지혜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알량한 지식과 지혜와 정보가 재물을 가져다 주거나 일을 형통케 해주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지혜자는 결코 기준이 될 수 없는 그런 상대적인 개념의 단어들에 넘어가지 않았다. “느리다 빠르다”라고 하는 말은 상대적인 개념이지 절대 변치 않을 개념이 아니다. 빠르고 느리고는 지혜자에게 중요한 단어가 아니다. 지혜자는 빠르다고 안심하고 느리다고 불안해하지 않는다. 지혜자는 자만하지도 않고 좌절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빠른 경주자도 안된다는 말은 느린 경주자라도 안될 것도 없다는 것이다. 느린 경주자라도 꼴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지만 전복위화될 수 있는 것이다. “빠른” “강한” “지혜와 지식”등에 현혹되지 말라. 나의 빠름을 믿지 말라.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느린 자라고 실망하지 말라. 느린 경주자라고 늦게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유력자라고 교만하지 말라. 그 힘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역으로 무기력한 자라고 좌절하지 말라.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라. 내가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지식이 있고 경험이 있다고 할찌라도 그것을 의뢰하지 말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시기와 우연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이다. 12절에 보라.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라고 하고 있다. 그 말은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시기를 아신다는 것이다. 최고의 지혜는 인생의 변수 X를 알고 계신 분이다. 그 변수를 콘트롤하고 계시는 분이다. 9장 1절을 보라. 우리 인생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람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전도서9:1). 지혜자는 “시기와 우연”에 대한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아는 자이다. 지혜자는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하나님께 나의 인생을 맡기는 자이다.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아는 사람은 운명이나 재수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운명과 재수는 주관하는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재수 없어서... 운이 좋았지요! 믿는 사람들의 용어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어떤 알지 못하는 물체가 갑자기 내게 던져져서 놀래 자빠질 뻔 했다”라는 말이 있다고 하자. 이것은 우리에게 해당되는 표현이다. 하나님에게는 그 문장에서 빼야 할 단어가 많다. "어떤" “알지 못하는” “갑자기” “놀래” 등과 같은 단어는 하나님께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목요일에는 책상을 바꾸었다. 창문이 열리지 않아서이다.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이다.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먼지와 파리 죽은 시체들이 많았다. 분명히 파리채에 맞고 쓰러졌는데 보면 없어지곤 했었다. 파리채를 사용할 때 제가 힘껏 때리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붉은 피가 힌 페이트벽을 더럽힐까 생각해서다. 그래서 기절정도만 시키곤 한다. 그것들이 무덤을 찾아간 것인지 거미가 물고 간 것인지 몰라도 한쪽에 다 몰려 있었다. 그런데 거미도 약 5마리 정도 없앴다. 두 마리는 왕거미고 세 마리는 새끼 거미들이다. 그들을 없앨때는 진공청소기를 사용한다. 깨끗하게 빨려들어가는 것이 좋다. 긴다리를 뻗고 안들어가려고 버팅킬때면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먹고 살려고 거미줄도 얼기설기 잘 설치해 놓았는데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당한 것이다. 그러나 시기와 우연이 임하지만 나는 다 계획 속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래에 우리의 발을 내딛고 우리가 내려야 할 수많은 선택과 결정들을 가장 지혜롭게 하기 위해서는 매 순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 이유는 “다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나를 믿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 하나님만이 우리의 미래의 보증자 되신다. 지혜자 솔로몬이 본 인생방정식의 결론이 그것이다. 그도 재물을 모아보았다. 군사력을 키워보았다. 권력을 가져 보았다. 쾌락을 추구했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전도서 1장 2절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인생이 헛되다는 정의부터 내리고 시작하고 있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노력과 수고와 계획이 무익함을 아는 자이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는 바짝 엎드리는 자이다. 자신의 자세를 낮추고 바짝 기고 있는 것이다. 감기 한번 안 걸리는 체력이 있다고? 그러면 걸린다. 아기가 순둥이처럼 잘 잔다고? 그러면 밤새 보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 원숭이다. 우리같이 자세를 낮추어 나무에 오르지 않는 사람은 나무에서 떨어질 리 없다. 재능이 있다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은혜라고 하라. 재능은 주어진 것인데 자랑할 것이 무엇있는가! 학생들을 보면 재능만 가지고는 안된다. 노력이 있어야 한다. 연습벌레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성실하고 근성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노력했다고 자만할 것인가? 누구는 끈기가 없고 싶은가? 인내력이 떨어지고 손에 힘이 딸리는데 어떻게 하는가? 전에는 “천재형이다 노력형이다”의 구분이 있었다면 지금은 “노력하는 천재”여야 한다고 말한다. 다 갖추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으로 부족하다. 여기에 있는 이들은 다 재능이 있다. 다 노력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완성시켜 주셔야지 된다. 이미 처음부터 재능도 은혜요 노력도 은혜였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이다.


깻잎과 밭의 작물을 위해서 비가 오기를 바란다. 비가 오지 않고 가물게 되면 물을 주게 된다. 물 실어나르는 것도 힘이 들고 쉽지가 않다. 그러나 비가 10분만 와 주어도 일은 순식간에 다 해결이 된다. 그것을 보면서 물통 준비하고 물을 대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은혜가 없이는 안된다는 것을 늘 느낀다.

 

IV. 오늘 지혜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하는 일들이 생각대로 잘 되는가? 계획하는 일들이 자꾸 지체되고 지름길 놔두고 엉뚱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가? 솔로몬은 빨리 달려 보았고 유력자가 되어 보았고 지혜와 명철을 가져 보았지만 그것은 참된 지혜자의 방정식이 아니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미래가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방정식에서 꼭 들어가야 함을 알았다. 그분이 시기와 우연의 X를 잡아내는 분이었다. 그분이 답을 내는 분이다. 우리 인생의 방정식에는 하나님이 정답을 만들어 내신다. 빠른 것이 선착의 요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하는 것이다. 용사유력자가 승리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하는 것이다. 지혜와 명철이 재물과 양식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하는 것이다. 바짝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지내고 우리 것을 비우고 빈 그릇으로 준비된 우리에게 은혜로 풍성히 채워주시는 “저절로 되는” “은혜로”되는 한 주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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