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출애굽기 4: 1-4
제목: 모세의 지팡이
일시: 2016. 9. 4
장소: 라이프찌히 한인교회
I. 골리앗을 이긴 소년 다윗, 주님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나왔던 소년, 극심한 가뭄 속에 통에 가루 한 움쿰과 병에 기름 조금을 가지고 엘리야를 대접했던 사르밧 과부, 군사 32000명에서 300명으로 줄여 전쟁에 임했던 기드온,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아브라함 사라 노아 등등의 많은 신앙의 열조들 ...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가진 것이 작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II. 하나님은 약한 것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들어 사용 하신다. 작은 자를 들어 크게 쓰시고 형편없는 것을 가지고 멋지게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지도자로 모세를 택했다. 모세의 첫 번째 걱정은 정통성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인정하겠느냐하는 것이다. 국민투표를 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호렙산 떨기나무불꽃 가운데서 과업을 맡기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리라”라고 하면 들을 것이냐는 것이다. 최고의 권력자 바로를 찾아가는 것도 또한 심한 부담이었다. 더구나 자신은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이기도 했다. 그렇게 더듬거려서야 어떻게 이스라엘백성이나 바로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때 하나님은 물으신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는 대답한다. “지팡이니이다” 그 지팡이는 80세 노인 모세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이다. 양을 치는데도 사용하는 목자의 지팡이일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수백년 묵은 나무 가지를 구해서 특별한 지팡이를 만들라고 주문 제작하신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그저 평범한 모세의 지팡이를 사용하시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권위의 지팡이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 지팡이는 애굽의 바로와 술객앞에서 강한 뱀으로 변하기도 했다. 홍해를 건널 때 바다를 가르게 하기도 했다. 광야에서 그 지팡이로 호렙산 반석을 치니 생수가 솟아나기도 했다. 그 지팡이는 약하고 무능하다고 극구 사양하고 있는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답변이었다. 그 지팡이는 바로 모세였다. 아무것도 아닌 마른 막대기 지팡이이다. 이전에 이스탄불에 갔을 때 모세의 지팡이라고 전시해 놓은 것을 보았다(구글에서 한번 쳐보라 나온다). 1.5미터 정도 되는 손가락 세 개 정도 굵기의 나무로 끝에 새총같이 가지가 조금 나온 정도이다(진짜 모세의 지팡이라고 믿지도 않지만). 하나님은 평범했던 지팡이를 가지고 살아있는 뱀을 만든 것처럼 별 볼일 없고 연약한 모세를 바로 앞에서 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팡이도 이전부터 있는 지팡이를 그대로 사용하신 것처럼, 여전히 언변 없고 더듬는 모세를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바로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어 보이신 이유가 있다. 애굽에는 수많은 우상이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우상이 뱀신이다.
애굽인들에게 있어 뱀은 혐오스런 동물이 아니라 존귀와 주권을 상징한다. 그래서 애굽의 바로는 코브라 형상의 금왕관을 쓰고 있다. 그것은 바로왕의 능력을 상징한다.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의 권력을 압도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특기는 약한 것을 들어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물으신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손에 걸레가 있는가? 그러면 닦아야지. 가진 것이 시간밖에 없는가? 시간을 써야지. 손에 든 것이 망치인가? 그러면 못을 박아야지.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내가 가진 것이 많다 적다, 약하다 강하다, 크다 작다, 새것이다 헌것이다를 논할 필요가 없다. 모세의 막대기가 위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마른 막대기를 사용하셨을 뿐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일은 되는 것이다.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 시작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할 때 오히려 기대감이 생긴다. 포기할 때 웬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절망 속에서 오히려 소망을 보게 되지 않는가! 내가 나를 비울 때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신다. 나의 퍼센테이지가 줄어들면 하나님의 퍼센테이지가 늘어난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서 사용하신다. 강한자도 약해질 때까지 기다리신다. 약하다고 고백할 때가지 기어이 끌고 내려가신다. 그렇게 잘 난 바울도 약함을 말하고 있다.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고후12:5),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12:9),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후12:10).
미국에서 목회하는 어떤 목사님이 부흥회 강사로 초빙되어 한국에서 부흥회를 인도했다고 한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열심히 홍보했다. 이분의 약력을 다 기록하면서 말이다. oo 신학교를 졸업하고 Ph.D박사학위를 받고 오랫동안 미국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명강의를 하는 강사로도 많이 나간다고. 그러나 결과는 형편없었다. 사람들의 출석이 아주 저조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 전단지가 있는데 그곳에서도 부흥회가 있다는 것이다. 강사는 이전에 프로레슬링 선수로서 마약에 연류되어 감옥살이를 하고 조직에 들어 있다가 주님을 만나 회개하였고 지금은 주님의 종으로 간증과 말씀을 전하러 다니는 목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되어 그 부흥회에 가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구름떼처럼 모여 발디딜틈이 없었다는 고백이다. 박사학위보다 전에 마약 사범이요 감옥살이하고 프로레슬링하던 것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셨다는 것이다. 요지는 하나님은 학위나 경험이나 나의 화려한 언변이 아니요 하나님이 약한 자를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III. 왜 뚱딴지 같이 마른 지팡이인가? 포인트는 도구와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실 때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르고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포커스는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리만스트라세에서 이곳 교회로 이사 오면서 이삿짐을 나를 때 한국에 있는 조카 현규가 와서 도왔다. 어떠한 가구가 있었는데 그 물건을 내 차에 실으면서 “삼촌 문제가 있는데 이 가구가 좀 큰데다가 다리가 삐쭉 나와서 차에 싣기가 안 좋은데 어떻게 하지?”라고 한다. 그때에 “음, 이때에는 방법이 네 가지가 있지! 지금은 그 세 번째 방법을 쓰겠어” 라고 재미있게 장난스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실 큰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이후에 가만히 생각하니 정말 방법은 많았다. 다리를 접는 방법이 있고 다리를 떼는 방법이 있고 큰 차를 빌려서 그것만 따로 가져가는 방법이 있고 아예 안가지고 가는 방법도 있고... 방법은 많이 있었다. 분명한 것은 그 가구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사실 모세의 지팡이 자체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큰 의미가 없다. 단지 지팡이는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마른 지팡이가 될 수 있고 뱀으로 변하는 강한 지팡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에 글을 잘 못 쓸 때에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손을 잡고 써 주셨다. 우리는 힘만 빼고 있으면 술술 써내려가는 글이나 그림에 감탄하곤 했다. 우리의 손은 여리고 여물지 않아서 잘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를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도구로서 하나님께 맡겨지지만 하면 일은 되는 것이다. 모세의 지팡이는 평범한 노인네의 지팡이고 양치기의 지팡이였지만 하나님이 사용하실 때 능력과 권위의 지팡이가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팡이가 아니요 누가 그 지팡이를 잡고 움직이느냐는 것이다. 지팡이는 모세가 잡고 흔들지만 모세는 하나님이 잡고 흔드신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잡으시기에 모세는 능력의 종이 되었고 그 지팡이도 능력의 종이 잡고 있기에 권위와 능력의 지팡이가 된 것이다.
칼도 요리사가 잡으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고 의사가 잡으면 죽을 사람도 살려낸다. 그러나 못된 사람이 잡으면 산 사람도 죽게 만들 수 있다. 칼은 혼자 가만히 있지만, 누가 그 칼을 잡느냐에 따라 용도와 능력이 달라진다. 권력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권력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 권력을 잡은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사회가 달라진다. 돈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성숙하지 못하고 자기 콘트롤하지 못하는 어린아이한테 100유로짜리를 일주일 용돈으로 주면 곤란할 것이다. 나라고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이 모든 것들이 누가 나를 잡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실 때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르다. 장인이 다양한 도구와 장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용하실 때 다양하게 사용하신다. 우리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방법은 다양하다. 우리의 관심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누가 사용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으면 무익한 것이요 내가 가진 것이 아무리 약하고 보잘 것 없어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유익한 것이다. 도구와 방법이 아니요 하나님이 열쇠이다.
요한복음 9장의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가?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였더니 씻고 밝은 눈으로 온 것이다. 소경이 눈을 뜨려면 다 그렇게 하면 되는가? 그게 방법인가? 아니다. 아마 예수님을 믿는 소경들은 그 방법대로 침을 뱉어 좋은 진흙을 자기의 눈에 발라보고 노력해본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 때부터 소경에는 통했지만, 다른 소경에는 통하지 않는다. 그러면 다른 소경에게는 하나님이 역사를 안 하시는가? 방법에 초점이 맞추어져서는 안 된다. 여호수아 6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첫 성 강한 성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승리가 나온다. 어떻게 여리고를 무너뜨렸는가? 이스라엘백성이 엿새동안 여리고 성을 한바퀴씩 돌고 마지막 칠일째는 7바퀴를 돈다. 총 13바퀴를 돌고 제사장의 나팔소리가 들리면 백성들은 소리를 지르면 된 것이다.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그때는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성벽 무너뜨리는 방법이 그것인가? 그러나 지금 그렇게 해서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일까? 방법과 계획이 다른 것이다.
삼손의 머리털을 생각하라. 머리털에서 무슨 힘이 나올 것인가? 그러면 다 머리털 기르고 수염까지 기르겠네? 길러도 힘이 나오지 않는다. 모세의 지팡이가 마법의 지팡이가 아니다. 마른 지팡이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실 때 능력의 지팡이가 되는 것이다. 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능력이 있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 테크닉이 아니요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것이다.
IV. 리더와 부리더 발표를 했다. 예상된 사람이 있고 전혀 당혹스러워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모세와 같이 이스라엘백성에게 어떻게 갑니까? 바로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입도 혀도 굳어 있고 뻣뻣하고 말주변도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을 기억하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저 마른 지팡이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 지팡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 지팡이를 잡을 때 비로소 살아있는 능력의 지팡이가 된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라. 애초부터 모세는 하나님이 미셨다. 그를 왕궁에 넣으신 것도, 그를 다시 빼어내어 미디안 광야로 보내신 것도, 그를 다시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신 것도 하나님이시다. 부담스런 이 모든 일들도 마른 막대기를 통해서 생명력을 부어주시는 것도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동행하심과 타치하심을 기억하라. 나는 마른 지팡이이다. 중요한 것은 지팡이를 잡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분이 나의 사용하도록 허용하라. 하나님께서 역사를 일으키시기 위해서 그분의 개입을 허용하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때 죽은 나무막대기 같은 지팡이가 생명력과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한 나를 들어 어떻게 사용하시는지 체험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