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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

쌍둥이가 싸웠던 이유

작성자권순태목사|작성시간17.06.25|조회수425 목록 댓글 0

성경: 쌍둥이들이 싸웠던 이유

제목: 창세기 25 : 22-26

일시: 2017. 6. 25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아이를 갖고 낳는 일이 예부터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100세가 되어 어렵게 이삭을 얻었는데 이삭 역시 리브가와 더불어 아이를 낳는 것이 60세가 되어서였다. 리브가가 아기를 가졌을 때 쌍둥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태중에서 서로 싸운다. 리브가가 괴로울 정도의 싸움이다. 새번역의 표현에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로 싸움을 표현하고 있다. 리브가가 이와 같이 불평을 하자 하나님은 그 싸움이 단순한 아기들의 싸움이 아님을 말씀하신다.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싸움의 근본을 보고 계신다. 아이들의 싸움이 아니라 민족의 싸움이다. 이 쌍둥이들이 싸웠던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II. 싸울 때는 싸우는 이유가 있지 않는가?

“큰 자”와 “작은 자”의 싸움이다. “먼저 나온 자”와 “후에 나온 자”의 싸움이다. 그 싸움은 숙명적으로 끊이지 않는다. 평생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싸우는 이유는 장자의 명분이었다. 차자로 나온 야곱은 장자권을 쟁취하고자 형과 다투었다. 야곱의 인생은 투쟁의 역사였다. 태어날 때 발꿈치를 잡고서 나온 것도 장자의 권한을 얻으려는 노력이었다. 또한 붉은 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고자 했다. 또한 아비 이삭의 장자에게 주는 축복을 사기성 다분하게 속여서 얻어냈다.


장자의 권한을 갖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장자는 아버지의 뒤를 잇는 후계자가 된다. 가문의 정통성을 가진 대표자가 되는 것이다. 장자의 축복은 다른 자녀들보다 재산을 더블로 얻는 정도의 특권만이 아니다. 장자의 축복은 재물과 후손이 더 풍성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복으로 따지면 장자의 권한과 축복을 빼앗겨 버린 에서도 자녀를 갖고 민족을 이루고 재물로 충분할 만큼 다 가지고 있었다. 야곱이 결국 장자의 명분을 취하여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가문의 정통성이었다. 야곱은 얍복 강에서 주의 천사와 씨름하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며 이후 야곱을 통해서 나오는 사람들은 이스라엘백성이 되는 것이다. 정통성을 가진 이름이란 족보에 올라가는 것이다.


명품은 족보가 있다. 악기도 족보가 있다. 어릴 때 큰 아이는 바이올린을 시키고 작은 아이는 첼로를 시켰다. 큰 아이의 악기 싸이즈가 더 커지게 되니 하나 사주려고 했다. 그때 마침 프라하에 친구목사 교회 교인이 악기매매를 하는 분이 있어 그분에게 구입을 하게 되었다. 프라하에서 단숨에 악기를 가지고 왔다. 얼마나 악기에 대해서 모르면 나는 “활”은 하나 서비스로 주는 것 없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가장 설득력 있게 보인 것은 그가 가지고 온 악기 족보였다. 프라하 오케스트라 전문연주자가 연주한 것 등등... 이후 설주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던 전문가 교회지체에게 어떻냐고 물으니 “좋네요”라는 말을 했다. 아직도 그의 “좋네요”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진짜 좋은지 아니면 “사기 전에 저한테 가지고 오셨어야지요 지금 물으면 뭐라고 합니까”라는 의미인지... 그때 가장 권위를 둔 것이 족보였다. 지금 그 악기는 집에서 놀고 있다.


족보는 정통성이 있음을 말한다. 마태복음 1장을 보라. 족보가 나온다. 정통성 있는 가문에 누가 속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족보의 시작은 아브라함부터이다. 족보가 그에게서부터 시작되는 것은 그가 약속을 받은 자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은 자이고 그 약속의 성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구약은 이루어질 약속에 대해서 기록된 것이고 신약은 이루어진 약속에 대해 기록된 것이다. 아브라함 가문에 속하고 약속을 받은 사람은 바로 이 마태복음의 예수님 가문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이렇게 마태복음은 시작한다. 야곱은 그렇게 정통성 있는 가문에 들어가기 위해서 투쟁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약속의 아들 야곱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땅도 결코 버리지 않는다. 정통성있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야곱이 형의 진노를 피해 가나안 땅을 떠나 외삼촌이 있던 하란으로 도망할 때도 루스라는 곳에서 서원을 한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 달라는 서원이었다. 이후 형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도 목숨을 걸고 얍복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기어들어온다. 세월이 지나 잃었던 아들을 다시 보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갈 때도 그는 바로 애굽으로 가지 아니하고 브엘세바로 간다. 브엘세바는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그의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곳으로 과연 그가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가야 하는가에 대해 하나님의 의향을 묻기 위해서였다. 그는 고센땅에서 죽게 된다. 하지만 죽기전의 유언은 무엇인가? 가나안땅에 묻어달라는 것이다. 도대체 가나안은 어떤 곳이기에 그렇게 애착을 갖는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기 때문이다. 가나안은 정통성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약속하신 땅이기 때문에 그렇다.


리브가의 태중에서 쌍둥이가 싸우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두 민족이 싸우고 있다고 한다. 한 민족은 약속을 잃어 버렸고 다른 민족은 약속을 얻었다. 그러므로 싸움은 장자의 명분을 위한 싸움이었고 정통성에 대한 싸움이었다. 싸움은 족보에 오르느냐 마느냐의 싸움이었다. 싸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에 속한 자이냐 약속 밖에 있는 자냐의 싸움이었다. 그러기에 그 싸움은 육신의 싸움을 넘어 영적인 싸움이었다.

 

III. 쌍둥이가 태중에 생성될 때부터 싸우듯이 우리 인생은 투쟁의 인생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목표로 세우고 추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싸운다. 입시전쟁이다. 먹고살기에도 생업전쟁이다. 요즘 개콘이 별로 재미가 없다. “아직도 봐요”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난 주에는 아내가 옆에서 하는 말이 참으로 참담하다. “참 먹고 살기 힘들다”라는 한다. 서로 튀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날리는 개그맨들을 보고 말이다. 승진하기 위해서 애쓴다. 이름을 더 알리고 영향력을 드러내려고 한다. 각 나라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갈등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전쟁은 새끼 전쟁들이다. 마치 에서와 야곱 두 쌍둥이가 어미의 태 중에서 싸우듯이 그러한 싸움을 싸운다. 하지만 이 모든 새끼전쟁들의 기원은 무엇인가? 어디서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는가? 우리는 출산을 하고 일을 하여 땀 흘리고 힘이 들 때는 아담을 탓하게 된다. 조상 탓을 하는 것이다. 왜 선악과는 드셔 가지고...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입시 투병 먹고 사는 것... 등등의 괴로움이 없었을 것인데 말이다. 사탄이 에덴동산 전투에서 선전포고를 하고 우리에게 큰 타격을 안겨주었다. 그 이후 수많은 새끼 전쟁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어떻게 우리의 삶속에 있는 수많은 수고로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그 새끼 전쟁들을 해결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결국 그 싸움은 왕 전쟁을 이겨야 한다. 최후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전쟁이 어디인가? 에덴동산에서 발발했던 전쟁은 우리에게 큰 타격을 주었으나 옛뱀 사탄과의 결정적인 최후 싸움은 갈보리산에서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싸움의 최고 격전지는 갈보리산전투이다. 에덴동산에서의 싸움이 갈보리 산에서 종결되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먹고 살기 위한 싸움인가? 우리의 싸움은 영적인 싸움이다. 처음부터 틀어진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그 관계로 인해서 다른 새끼 전쟁들이 생기게 된 것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다. 근본적인 해결점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 관계회복을 위해 족보의 종결자요 정통성을 이루시는 주님이 화목제물로 오시고 갈보리십자가의 싸움을 싸우셨던 것이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rea Trade-Investment Promotion Agency, Kotra)는 대한민국의 먹고 살 것을 걱정하며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경제전사이다. 그들이 관심을 갖고 추진했던 것이 650조원 수출 신대륙 Halal 시장을 잡자는 것이었다. 할랄이란 무엇인가?

아랍어로 ‘법적으로 허용된(lawful)’이라는 의미로서 이슬람 율법에 의해 무슬림들에게 허용된 것을 통칭하는 말이다. 보통 할랄은 “먹는 음식”에 대한 용어로 알고 있지만 비단 식품뿐만 아니라 화장품, 섬유, 첨가제, 중간재 등 인체와 접촉하는 모든 것이 ‘할랄’이어야 한다. 할랄식품은 돼지고기와 알코올을 포함하지 않고 이슬람 다비하(Dhabiha)법에 따라 도살된 가축만 사용가능하다. 대부분 이슬람 하면 돼지고기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할랄 인증을 받으려면 소고기, 닭고기, 양고기 등의 육류 역시 '이슬람 식'으로 도축하지 않은 경우 ‘할랄’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슬람식' 도축은 코란의 기도문을 암송한 뒤 지정한 순서대로 메카의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것도 '할랄인증'을 받은 장소에서만 도축할 수 있다. 또한 음식을 요리할 때도 돼지고기 같이 비할랄 재료를 다룰 때 쓴 칼과 도마, 그릇 등을 가져와서 쓴다면 조리에 사용한 고기가 할랄일지라도 그 결과물은 할랄이라고 인정받을 수 없다. 따라서 제품의 생산을 위해 설비나 기계를 운용하는 담당하는 직원 가운데도 특별히 이슬람교인을 직원으로 고용하도록 하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을 방문한 이후 전북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 내 할랄단지 조성이 있었지만 계획이 백지화됐다. 농림축산식품부가 할랄단지를 사실상 백지화하기로 결정한 데는 입주희망이 기업이 없다는 점이 작용했다. 그러나 할랄단지가 들어설 경우 이슬람 포교의 거점이 될 뿐만 아니라 IS 등 이슬람 테러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기독교계와 시민단체들의 우려와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먹는 것은 하나의 문화이다. 음식문화이다. 그와 같이 장례문화, 혼례문화, 축제문화 등등 삶의 모든 일들이 문화이다. 그런데 문화를 끄집어 내면 거기에는 신앙이 나오는 것이다. 할랄음식이 단순히 문화차이고 문화갈등정도가 아니다. 실상은 종교전쟁이다. 선교사들이 나가서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 문화와의 싸움이다. “요가”는 어떠한가? 그저 단순히 정신을 맑게 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운동인가? 그 역시 인도의 철학과 종교의 정신수련법이다.


역으로 성경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그 역시 삶의 일들을 가지고 전한다. NGO 그룹이 있다. 우물파주기를 한다. 병원을 세워 아픈 이들을 돌봐주고 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운다. NGO 그룹을 보면 대부분 기독교계통의 단체들이다. 그들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쌍둥이가 태중에서 싸움을 하고 있다. 리브가가 무척 괴롭다. 그러나 아이들 싸움이 아니었다. 그들의 싸움은 민족 전쟁이었다. 그 민족의 싸움은 약속받은 민족과 약속을 잃어버린 민족간의 싸움이었다. 우리의 삶의 수많은 일들을 보라. 전쟁과 같은 삶이다. 그러나 싸움의 본질을 보라.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싸움이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요 영적인 싸움임을 알게 될 것이다.

 

IV.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는가?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북한을 어떻게 이기면 되겠는가? 사드가 필요한가? 핵무기가 필요한가? 햇빛정책과 대화가 필요한가? 미국의 도움이 필요한가? 중국의 중재가 필요한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이 싸움에서 이길 방법은 하나님께서 하셔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의 체제는 무엇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민주주의도 아니고 백성을 위한 인민공화국도 아니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이데올로기를 가진 공산주의도 아니다. 사회주의도 아니다. 그냥 그들은 사이비 종교집단이다. 김씨일가의 우상숭배집단이다. 그 싸움 역시 영적인 싸움이 된다.

우리는 싸움의 본질을 잘 파악해야 한다. 왜 싸우는지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를 알아야 한다. 먹고사는 싸움을 하는데도 그리스도인은 참고 인내하고 손해보라고 하는 것은 싸움의 본질이 내 이익 때문도 아니요 영적인 싸움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싸움은 태중에서 자리싸움하는 정도가 아니요 우리의 싸움은 약속에 관한 싸움이요 생명에 관한 싸움이요 자녀가 되는 정통성있는 족보에 대한 싸움이기에 싸움의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씀으로 무장하고 기도로 무장하는 것이다. 예배 가운데 전열을 가다듬고 모든 삶의 일들을 기도 속에 기억하는 것이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최후 승리에서 승리하셨기에 이제 우리의 삶에서 전쟁의 전리품들을 이 한주간도 획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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