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사도행전 4:1-4
제목: 베드로의 4편의 설교
일시: 2017. 7. 16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사도행전에 베드로의 설교가 4편이 나온다. 첫 번째 설교는 사도행전 2:14절 이하이다. 오순절 축제에 예루살렘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을 때이다. 둘째설교는 사도행전 3장 11절 이하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난 이후 사람들이 이를 놀랍게 여겨 솔로몬의 행각에 모였을 때이다. 세째설교는 사도행전 4장 5절 이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가르치는 것을 싫어하여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베드로를 붙잡아 공회 앞에 세웠는데 거기서 전한 설교이다. 네 번째 설교는 사도행전 10장 34절 이하로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네 집에서 가정 설교를 했을 때이다.
II. 복음은 어디서 전하는가? “어디서나”이다. “어디서나”는 다른 말로 “누구에게나”이다. 베드로가 말씀을 전했을 때 대상은 누구인가? 오순절 축제를 지키기 위해 천하각국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에게 전했다. 예루살렘성전을 드나들던 사람들에게 전했다. 베드로는 자신을 정죄하기 위해 공회에 모였던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대제사장의 문중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또한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복음을 전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었든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 대상이 누구이든지 간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든 원수같이 싫은 사람이든 간에, 받아들일 것 같은 사람이나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도 전해야 한다. 언제나 복음을 전하는데 스탠바이 되어 있어야 한다.
스님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떠한가? 구도자들 아닌가? 구도자들은 도를 구해보는 노력을 기울였기에 진정한 구도자는 진리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성철스님이란 분이 있다. 그는 수행스님이었다. 8년간 눕지 않고 지냈던 극기수행을 했고 10년간이나 사람의 근접을 막기 위해 철망을 치고 심지어 금강산에 자신을 보러온 어머니에게 돌을 굴렸다고까지 한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한 학승이었다. 불교사상은 물로, 서양철학 심리학 종교학 문리학을 섭렵했으며 영어 독어 불어 중국어 일본어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사람이 1993년 11월 4일에 임종하게 되는데 죽기 전에 이러한 말을 했다. “내 말에 속지 마시오.” “한평생 남녀 무리를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속인 죄가 너무 커 지옥에 떨어진다.”
한국에 가면 불교방송을 가끔 본다. 스님들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해서이다. 어느 연세 드신 노승이 나왔고 방송사회자가 이렇게 묻는다. “스님께서는 오랫동안 수행을 하시고 득도 하셨을텐데 도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지요?” 그때 스님은 “제가 아직 도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라고 한다. 사회자는 스님을 겸손하다고 하면서 마무리 했다. 그러나 난 그 고승에게서 여전히 도룰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느꼈다. 잠언 14:12절 말씀과 같이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복음은 누구에게나 전해져야 한다. 진리가 있어 보일 뿐이지 없는 사람이 허다하다.
III.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는 언제나 전하는 핵심 말씀이 있었다. 성경의 핵심테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페북의 외국친구들이 종종 멋진 이야기를 해 준다. 이런 말도 있다.
Jesus is predicted in the Old Testament.
Jesus is revealed in the Gospel.
Jesus is preached in Acts.
Jesus is explained in the Epistles.
Jesus is expected in the Revelation.
It is all His Story.
성경 스토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스토리들 가운데 특별히 무엇을 전하겠는가? 베드로는 사도행전에서 전한 4편의 설교에서 복음을 전할 때 물위로 걸은 이야기를 말하지 않았다. 그는 물고기를 얼마나 많이 잡았는지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천명이상의 사람들을 먹인 것을 말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이나 그의 가르침을 넘어서 주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성전의 비둘기 파는 자, 소 파는자, 돈 바꾸는 자을 채찍으로 몰아낼 때 사람들이 예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한다. 주님이 보여주실 것은 요나의 표적뿐이었다. 요나의 표적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말한다. 오순절 예루살렘 설교와 솔로몬행각에서의 설교,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있는 공회 설교, 그리고 고넬료 가정의 설교에서 공통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설교자로서 늘 생각하는 것이 있다. 나는 어떠한 말씀을 전하는가? 말씀을 선포할 때 윤리적인 설교를 하는가? 그것도 필요하지만 핵심이 아니다. 축복의 설교를 하는가? 그것도 필요하지만 아니다. 위로와 담대함을 주는 설교를 하는가? 그것도 필요하지만 핵심은 아니다. 사회정치핫이슈에 대해서 사회참여의 말씀을 전하는가? 그것도 들어있을 수 있지만 핵심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의 영원한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음악이 있어도 콘서트장이 아니다. 교회는 다양한 가르침과 배움이 있어도 교양강좌가 있는 세미나가 아니다. 교회는 봉사가 있어도 NGO 그릅이 아니다. 교회는 형제자매간의 교제가 있어도 사교 클럽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고 나눔을 가져도 취미활동하는 동아리가 아닌 것이다. 교회에서 우리는 물질의 축복도 누리기도 하지만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복음이 있는 곳이다.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고 우리는 그의 몸된 지체가 되는 것이다.
IV. 성령의 소통이 있어야 한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 하지 않는가? 사도행전을 시작할 때 이미 성령의 함께 하심이 있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다. 성령은 무슨 일을 하시는가? 깨닫게 하는 분이다. 소통케 하는 분이다. 그분의 전류가 통해야지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오순절날 베드로의 설교에도 성령이 임했다. 베드로가 공회의 교계지도자에게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함께 했다. 그러기에 원래 학문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그날 말을 얼마나 잘하게 되는가? 할 말을 주시는 것이다. 또한 고넬료 가정에서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충만히 임재했다. 성령의 영감은 전하는 자에게도 있어야 하고 듣는 이에게도 필요하다.
정말 어려운 것은 쉬운 단어들을 믿는 것이다. 어려운 단어는 쉬운 단어로 설명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논리의 끝, 사고의 끝, 갈 때까지 다 간 다음 더 이상 설명하기 어려운 마지막 이 순간에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성령께서 이해하게 하셔야 한다. 성령께서는 그러한 소통을 주신다. 마치 음식을 먹을 때 입으로 씹어 삼키면 그 다음부터는 잘 모른다. 위에서 더 소화를 시키고 장에서 그것을 빨아들인다. 그런 다음 우리 몸속에 들어가서 퍼지게 될 것이다.
복음이 선포되지만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속에 심겨지려면 성령께서 함께 하셔야 한다. 오늘 선포되는 말씀 역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복음서에서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라고 물으신다. 그때 제자들이 더러는 침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라고 하더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주님이 진짜 묻고 싶었던 것은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때 베드로가 아주 멋진 답변을 하게 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한다. 그때 주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이라고 하신다. 개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복음의 소통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함께 하셔야 하는 것이다.
V. 진리가 우리 가운데 있기에 어떻게든 그 진리가 우리 삶의 중심에 있어서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그 진리를 소통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소통의 대상은 내 삶의 현장에 있는 누구나이다. 소통케 하는 분은 성령이 하신다. 조규석선교사가 이집트에서 사역을 한다. 복음을 전한다. 돌 같은 심령에 뿌린다. 누가 소통케 하는가? 성령의 은혜로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