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요한복음 13:1-2
제목: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
일시: 2017. 9. 10
장소: 라이프찌히 한인교회
I. 지난 주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는 사람, 아멘의 사람이라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다. 주님은 “예”만 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않았다. 바울도 그랬다. 그리스도를 닮아 “예”하는 사람은 아멘의 사람으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다. 오늘 주님은 “예”라고 하실 때 처음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끝까지 “예”라고 하신 분이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fall in love 만 하실 뿐 아니라 keep in love 하시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키워드는 “끝까지”라는 말이다. 그냥 사랑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이다. 인내도 그냥 인내가 아니라 끝까지 인내여야 한다. 헌신도 그냥 헌신이 아니라 끝까지 헌신이어야 한다. 모든 일에 끝까지 함께 하고 마무리를 잘 하는 사람은 정말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다.
II. “끝까지”는 무한책임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다. 그런데 그 사랑은 내가 즐겁고 신나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사랑이었다. 어느 정도 책임지는 사랑인가?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이다. 무한책임이다. 무한책임을 지는 이유는 남이 아닌 “자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책임을 조금 지다가 지치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지는 책임이다. 끝까지는 어느 정도인가? “생명을 거는데”까지이다. 본문에서는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라고 하는데 그 뜻은 사랑하다가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다는 것이다. 주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빌립보서2:8). 생명도 내어 놓는 그 사랑은 끝까지 무한책임을 지는 사랑이다.
주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나마 부모님의 사랑일 것이다. 정상적인 부모들은 자녀들을 끝까지 사랑한다. 자녀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하여도 끓어오르는 속을 누르면서 끝까지 사랑한다. 간절한 충고를 잔소리로 여겨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또 다시 이야기한다. 할 수 있을 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한다. 결국 자신들 잘되는데, 골고루 먹고 운동도 적절히 하라고 한다. 자기들 건강해지는데...
어제 비젼스쿨청소년들과 함께 베를린을 다녀오면서 가는 길에 큰 딸 얼굴을 한번 보려고 한다. 보면 뭐가 나오나? 그리고 보는 김에 무엇인가 갖다 주고 싶다. 달라고 안 해도 말이다. 그러니 무겁게 많이 가져오지 말고 김치만 조금 가져달라고 한다. 나름 예의를 차려서 받아주겠다는 것 같다. 그러나 막상 가져가려니 아내가 준비한 것이 생각보다 한참 많다. 바리 바리 싸서 준비한 것이다. 걱정이 생긴다. 혹 무게 때문에 애가 그것을 좋아할까? 그런데 가만히 보니 물건을 넣은 주머니도 버튼이 잘 잠기지 않고 우아하지 않다. 멋과 우아함을 중요시여기는데 이 짐을 귀찮아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자녀들에게 대한 마지막 우리의 독백은 무엇인지 아는가? “참 더러워서...”(큰 아이가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아주 그렇지는 않았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보시기에 “참 더러워서”라는 생각이 드실 수 있지만 끝까지 인내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향하여 무한책임을 지신다. 주님은 어떠한 순간에도 약속을 지키신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해도, 제자들이 주님을 버리고 다 도망간다고 해도, 가룟유다처럼 주님을 팔아넘겨도 주님은 끝까지 책임지신다는 것이다. 주님은 당신이 손해가 날 상황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고난을 당하실 상황에도 생명을 잃을 수 있는 그 위기의 순간에도 주님은 책임지는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지난 해 프라하를 방문하였을 때 민박집에 머문 적이 있다. 친구목사가 사역하는 교회 형제들이 운영하는 민박집이다. 친구목사를 돕는 목회차원에서 호텔대신 민박집을 이용한 것이다. 나와 수학캠프 김철중목사님이 함께 갔는데 주일 하루 그리고 주중에는 교회에서 수학캠프를 하니 금요일 하루 이렇게 이틀을 묵는 것으로 했다. 그런데 주일 밤을 지나고 우리는 빈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요셉처럼 의로운 사람이라 가만히 끊고자 하여) 민박집을 운영하는 형제를 가만히 불러 빈대를 꼭 제거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주간 동안 갈등이 많았다. 예정된 대로 금요일 저녁에 하룻밤을 그 빈대천국에서 잘 것인가? 아니면 숙박을 취소할 것인가? 결국 “이미 다 제거했겠지”라고 생각하고 의리를 지켜 끝까지 가서 자 주기로 했다. 그런데 새벽 4시경에 함께 잠을 자던 김목사님이 불을 키신다. 나는 연세가 들어가시면서 잠도 없는가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났다. 그때 목사님이 “빈대다” 라고 하시는 말씀에 잠어 확 달아났다. 그때부터 4시간 정도 잡았다. 플라스틱 봉투에 잡아 넣은 것이 50마리도 넘는다. 아침밥도 가격에 포함되어 있으니 밥 나오면 얼른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주인장이 일어날 생각도 안하고 밥줄 생각도 안한다. 결국 아침을 포기하고 50유로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글을 몇자 써 놓고 나왔다. 꼭 빈대를 잡아야 하고, 출발을 해야 하니 아침은 못 먹고 그래서 식시는 제하고 숙박비를 놓고 간다고. 사실 숙박비는 고사하고 고소를 해야 마땅할 판이었다. 돈을 안낼까도 했으나 친구목사의 목회를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다. 마지막 기대한 것은 그 형제들의 인간성이었다. 우리에게 다시 50유로를 내어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담임목사가 되는 친구목사를 통해서 말이다. “잠도 제대로 못주무시고 식사도 못드리고 해서 너무 죄송합니다 다시 돈을 돌려드립니다”라는 기대를 하고. 그러나 그런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들은 이야기는 그 두 총각형제들이 민박집을 곧 접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끝을 잘해야 한다. 그들는 어디 가서도 잘 못할 사람이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계획을 화려하게 하고 오프닝 나팔을 크게 부는 사람이 아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끝은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요 끝을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과 일하고 싶지 하다가 마무리 못해서 주저앉는 사람과 일하기 어렵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라 무한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III. “끝까지”는 진짜배기 진국인생이다.
끝까지 가는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 성실한 사람이다. 내용이 알찬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진국이다”라고 한다. 진국은 언제 만들어지는가? 전기값 들더라도 팍팍 오래 끓여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국이셨다. 그 사랑은 맛내기를 넣어서 만든 국이 아니라 끝까지 우려내어서 요리한 진국인 것이다. 주님의 사랑은 금방 식어버리는 사랑이 아니요 뜨겁고 진한 진국사랑이다. 주님은 사랑이신데 화려하게 겉으로만 금도금만 하신 사랑이 아니라 속에까지 금으로 가득 찬 순금이다. 한번 깨물어 봐라. 도금이 벗겨지는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은 맛내기 사랑이 아닌 진국사랑이다.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 이런 사람과 일하면 일할 “맛”이 날 것이다.
아직도 그 폴란드 브로초와프 한인 식당 주인 집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감동이다. 주변의 동역자들과 브로초와프를 방문했다. 그 집사님은 담임목회자 선배목사들이 왔다고 대접을 해 주신다. 그 전에도 그랬는데... 얼마나 잘 먹었는지 모른다. 스시, 회, 잡채, 깐풍기, 오징어와 새우튀김 이제 더 이상 배부른데에 오뎅떡복기 탕수육 그리고 된장찌개와 만두를 넣은 김치찌개.. 어떤 몇 음식은 손도 못 대었다. 먹을 수 있는 경계선을 넘을 때까지 공급하신다. 그런데 진짜 감동은 다음 여행지는 포즈난이었다. 거기에 그의 레스토랑이 지점을 내어 있었는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가 그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이미 집사님이 다 조처를 취해 놓으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여행의 행선지를 따라 다니면서 대접하시는 것 같다. 만일 바르샤바에도 있었으면 그리 했었으리라. 지금도 브로초와프 목사님을 만나면 진정으로 묻는다. 집사님 사업은... 끝까지 가면 진정성이 보이는 것이다. 진국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끝에 가면 사실 자신의 본성이 나온다.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나온다. 끝을 잘하는 사람이 정말 진짜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처럼 속에까지 순금같은 사랑이다. 그러니 어떠한 순간에도 그 사랑은 표출되는 것이다. 끝까지 보여주는 사랑이다. 그러니 진정한 사랑이다. 주님이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것은 진국사랑이다. 끝까지 가는 진국의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은 일할 맛이 나는 것이다.
IV. “끝까지”는 최고의 타이밍이다.
성육신을 입으신 주님은 떠날 때가 되었다. 떠나려고 하시는 그 때는 인생의 황혼기가 아니었다. 가장 환상의 시기요 인생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러기에 최고 화려한 마무리를 하는 것이요 가장 멋지게 장식하는 것이다. 박수갈채를 받을 때 떠나라고 한다. 이 부분 말할 때에 “그러니까 목사님 저 지금 잘할 때 그만두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라는 출구를 만들어 주는 것 아닌가 싶어 걱정이 조금 되기도 했다.
그 뜻이 아니라, 아까운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최고의 타이밍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단물이 다 빠진 다음에 같이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주가가 한참 올라갈 때 헌신의 사랑을 보이는 것이다. 그럴 때 뇌리에 잘 기억될 것이다. 아주 강하게 잘 각인될 것이다.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기억에 남지 말라.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은 아주 아까운 분이 되신다. 주님은 박수갈채를 받으실 때 자신을 던지셨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는 어차피 죽으실 때가 아니라, 가장 잘 나갈 때였다. 백성들이 그에게 기대를 거는 시기였다.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았다. 건강할 때 자신의 몸을 주신 것이다. 주님은 병이 드신 것이 아니다. 만일 주님이 폐암말기 환자이신데 십자가에 안 돌아가셔도 어차피 몇일 후에 돌아가실 분이면 좋은 타이밍이 아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유월절 희생제물로서 주님은 가장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가장 흠이 없고 고결한 상태로 있으셔야 했다. 주님이 끝까지 사랑하시던 그 시간은 최고의 타이밍인 것이다.
언제가 헌신할 최고의 타이밍인가? 언제가 시간을 내어 줄 때인가? 바쁠 때이다. 언제가 물질을 드릴 때인가? 과부의 두 렙돈과 같은 때이다. 마지막 남겨진 것이다. 언제가 사랑할 타이밍인가? 사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님의 사랑이 그러하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끝까지는 최악의 타이밍이 아니라 최고의 타이밍이다.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줄 것이다. 그 “끝”을 지나고 나면 각인된 그 인상은 계속 이어진다. 이제 헤어지고 나면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마지막 장면이 최고의 장면이 되고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될 때 그 영상은 우리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은 최고의 타이밍 아니겠는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비비안 리는 오디션 소식을 듣고 영화사로 갔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기량을 선보였다. 하지만 오디션이 끝나고 난 뒤에 감독이 고개를 저으며 "미안하지만 우리가 찾는 여주인공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군요."
기대가 큰 만큼 당연히 실망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거나 인상을 구기기는 커녕 활짝 웃으면서 "잘해보고 싶었는데 아쉽군요. 하지만 실망하진 않아요."라고 말한 뒤 당당하게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가 문을 막 열고 나가려는 순간 감독이 다급하게 달려오면서 외쳤다. "잠깐! 잠깐만요! 미소, 당신이 조금 전에 지은 바로 그 미소와 표정 다시 한번 지어보세요." 그렇게 해서 비비안 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역에 발탁되었다고 한다. 오디션에 떨어졌어도 활짝 웃으며 등을 돌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감독은 모든 것을 잃고도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 오를거야" 라며 당당하게 일어서던 스칼렛 오하라를 본 것이다.
역사는 마지막 남는 사람이 쓴다고 한다. 마지막 살아남은 사람이 결론을 쓰고 마침표를 찍기 때문이다. 마지막 증인이 되기 때문이다.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고장난 것이요 상해서 버릴 쓰레기가 된다. 그러나 끝까지 버티게 되면 가장 값진 것으로 살아남는다. 오래되면 Alte가 되어서 구식이요 고물이지만 끝까지 버티게 되어 마지막까지 남으면 그 값어치를 올리는 최고의 타이밍이 된다. 그것을 우리는 Antic이라고 한다. 보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고물로 일하는 것이 아니요 보물로 함께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V. 주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끝까지 함께 하시는 주님과는 일하고 싶다. 무한책임을 지시는 분이시다. 진국이시다. 고물이 아니신 보물로 최고의 타이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러한 주님은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과 일하기 원하신다. 주 안에서 맡겨진 모든 일들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