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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

리브가 - 낙타에게 물먹인 여자

작성자권순태|작성시간07.02.12|조회수247 목록 댓글 0
성경: 창세기 24:12-14
제목: 리브가 - 낙타에게 물먹인 여자
일시: 2007. 2. 11
장소: 라이프찌히 한인교회

1. 요즈음은 맞벌이 한다고 하는데, 남편보다 돈을 더 잘 버는 여자를 황금오리라고 한다. 그리고 남편이 벌어오는 것에 가계에 보탬이 될 정도로 버는 여자를 청동오리라고 한다. 벌어오는 것 없이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는 여자를 집오리라고 한다. 그런데 돈을 버는 것은 고사하고, 나가서 돈을 쓰고 가계에 축을 내는 여자가 있다. 이런 여자를 탐관오리라고 한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선생님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좋은 동료를 만나고, 사장을 만나고, 목회자를 만나고... 그 가운데 특히 배우자를 만난다는 것은 그 어떠한 만남보다 중요하다. 그 만남은 남자나 여자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인생의 결정적인 만남이다. 여자가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떠나 남자에게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여자의 인생이 변한다. 남자의 위치에 따라 여자의 위치가 결정된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만난다는 것은 알고 보면 더욱 중요하다. 집안의 실세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남자를 만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이 달린 문제라면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집안의 장래가 달린 문제이다. 어떠한 사람이 집에 들어오느냐 하는 것은 그 집 분위기를 좌우하게 된다. 들어온 사람으로 인해 집안분위기가 평화스럽고 짜지게 살림을 해서 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고 들어온 사람으로 인해 평화스럽던 집안에 형제가 갈라서고 교제가 끊기고 집안을 말아먹는 경우도 있다.
오늘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집안이 한 여자를 구하는 장면이다. 아브라함의 며느리요 이삭의 아내 말이다. 아들 이삭을 위해 며느리를 구하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이 민족을 일으키는 어미가 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일로 인해 아브라함은 그의 충실한 종 엘리에셀을 파송한다. 어떻게 며느리를 구하는가?

II.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구할 때 하나님께 의뢰했다. 24장 3절을 보라.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그의 종에게 맹세케 하고 며느리를 구해오도록 한다.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이러한 사명을 받은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의 약대 10필을 끌고 그 위에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싣고 메소포타미아로 가게 된다. 나홀의 성에 이르러 그는 성중 딸들이 물을 길러 나오는 우물가에 있게 된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께 의뢰한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이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는 종의 기도인 것이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리브가가 아브라함 가문의 며느리가 된 것은 기도로 선택된 것이었다. 이삭과 리브가가 맺어진 것은 바로 기도로 인해서였다. 세상에 많은 중매쟁이가 있지만 최고의 중매쟁이는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배우자를 구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기도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종과 같이 기도하라.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Please grant me success today해 달라는 것이다.
솔로몬의 잠언을 보라.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잠언 19:14). 남자라면 주여 내게 좋은 자매를 순적히 만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할 것이며, 형제라면 주여 좋은 형제에게 찍히게 해 주시옵소서. 괜히 어떤 놈팽이에게 걸리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중매를 서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중매를 서신다면 최선의 배우자를 주실 것이다. 그분은 기계적으로 맞추어 놓으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접붙임이 안되는 나무를 붙어놓지 않으신다. 그분은 장기이식을 할 때 부작용이 되는 지체를 주시는 것이 아니다. 몸에 거부반응이 없는 것을 주신다. 중매는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

예)신개념의 결혼문화라고 해서 결혼상담소 같은 사업소인데, 보면 마치 소 돼지 교배시키는 느낌이다. 그것이 신개념의 결혼문화라는 것이다. 웨딩컨설팅라는 이름으로 광고를 내었다. 거기에 보면 회원구분 및 조건이 있다. 그 회원은 4개로 나뉜다. 다음을 한번 보라.
a. 일반회원 남: 28-35세 4년제 대학 이상
여: 24-31세 전문대학 이상
b. VIP 회원 남: 28-35세 서울 소재 4년제 대한 이상 및 해외명문대학 졸업이상
여: 24-31세 서울소재 4년제 대학이상/ 키 160cm 이상/ 부모님생존 및
중산층 가정
c. GOLD 회원 남: 28-36세 서울대, 연 고대 및 대학원이상/ 키 172cm 이상/ 부모님
생존 및 대졸이상/ 상위 20% 이상가정/ 전문직 및 그에 준하는 직업
여: 24-30세/ 서울소재4년제 대학 이상/ 키160cm 이상/부모님생존 및
대졸이상/ 상위20%이상 가정/ 아름다운 외모
d. DIAMOND 회원 남: 28-36세/ 서울대, 연 고대 및 대학원이상/ 키 172이상/
부모님생존 및 대졸이상/ 50억 이상의 재산/ 전문직 및 그에 준하는 직업
여: 24-30세/ 서울소재4년제 대학이상/ 키 160cm 이상/ 부모님
생존 및 대졸이상/ 50억 이상의 재산/ 아름다운 외모
이러한 기준에 따른다면 결혼 못할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나아가 세상의 가치와 기준으로 포장된 결혼은 보장할 수 없는 결혼이다. 한마디로 사기 결혼을 당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인정하심도 없고 사랑이 전제되지 아니한 결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포장된 사람들을 많이 본다. 따라서 결혼을 하되 속기 쉽다. 겉으로 들어난 것으로 좋은 신랑감, 좋은 신부감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과연 그 포장된 것으로 우리의 결혼이 파경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속지 않고 결혼하기 위해... 포장을 풀어보면 겉보기와는 다른 상품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

III. 하나님께 기도할 때 중매쟁이이신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볼 수 있다. 세상의 중매쟁이는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준다. 사람들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보가 사람을 망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 정보로 인해서 오히려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오늘날의 문제는 정보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보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이다. 의도된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정보가 그냥 막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절되면서 사용되는 것이다. 정부에서 모든 국가의 정보가 다 있지만 정치적으로 선거를 앞에 두고 정보를 터뜨리는 것을 알지 않는가! 정보는 그 자체를 알게 하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보는 불순하게 의도되어 나온다. 사람들이 배우자에게 주는 정보, 사람들이 자신의 배우자를 보기 위해 갖는 기준들... 이 모든 것들은 의도된 정보들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눈을 가리게 된다. 멋지게 보이게 하고 일등신랑, 일등신부로 보이게 한다. 중심을 알게 하는데서 멀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기도한다는 것은 다른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정보가 된다는 것이다. 그 정보로 볼 때 중심을 사람의 중심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듯이 사람을 볼 때 중심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학벌이나 외모나 재산이나 가문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속의 중심을 보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외적인 것들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속 중심을 보지 못하도록 하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그러한 것들이 나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토록 많이 배운 사람들이 만든 가정이 다 완전하지 않는가? 돈이 많으면 행복하지 않겠는가? 결혼,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따라서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진정한 인격체와 사람을 보는 것이다. 중심이 보여야 한다. 하나님의 눈은 사소한 것을 본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보지만, 하나님의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우물가에 성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올텐데 누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누가 주인 어르신의 며느리감인지 알겠는가? 순적히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아브라함의 종은 기도 가운데 이 지혜가 생각이 났다.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여기서 대답이 예스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답을 더 요구하였다.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고 하면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라고 기도했다.
이러한 기도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개를 드니 한 여인을 본다. 그게 바로 그 우물가에 물 길러 온 리브가이다. 이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에게 물을 달라고 청탁한다.(수가성 우물가의 여인도 주님을 만났듯이 우물가를 조심하라. 한국에도 지혜로운 여성은 우물가에서 만났다. 냉수를 한 그릇 주시오 하면 버드나무잎을 떨어뜨려 주지 않았는가? 물도 체한다고). 이때 참으로 종이 순적히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임자를 만난 것이다. 18절을 보라. 얼마나 예쁜 모습인가? “주여 마시소서”라고 하며 지체없이 급히 그 물 항라리를 손에 내려 마시게 했다. 1단계성공이다. 종의 가슴을 뛰었을 것이다. 만일 여기서 “왜 내가 물을 줍니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세요 저는 바쁩니다...” 뭐 이런 식으로 했다면 예선탈락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종을 마시우게 한 다음 계속해서 리브가는 말한다.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물을 마실 때 말한대로만 한 것이 아니고, 넉넉하게 한 것이다. 이렇게 넉넉할 수 있는 것은 자원하기 때문이다. 시켜서 한 것이 아니다. 낙타의 심정도 아는 섬세한 여인이다. 남의 사정을 아는 것이다. 그 마음의 표현인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열 마리의 낙타에게 물을 주는 리브가를 보라. 얼마나 기특하겠는가! 이러한 모습을 묵묵히 주목하여 본다.
“the man was gazing at her in silence..." 대충 슬쩍 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주목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용히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다. 그렇게 평가를 하는 것이다. 큰 것을 잘하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잘하게 되어 있다. 사소한 것을 잘하라. 보통 큰 것을 잘한다. 사소한 것은 보이지 않으니 대충한다. 그러나 바로 이 사소한 것에서 그의 본심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사소한 것을 보는 것은 아주 까다로운 것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까다롭게 보아야 한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는 까다로운 눈을 가져서는 안 된다. 결혼 후에는 사소한 것을 보지 말라. 문제는 거꾸로 결혼하기 전에는 큰 것을 보고 결혼하고 나서는 사소한 것을 본다. 결혼하면서 싸우는 것은 사소한 것으로 싸우는 것이다.
종이 주목하여 본 것은 낙타에게 물을 주고 있는 리브가이다. 그것은 사소한 일이다. 하지만 사소한 것을 본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리브가의 중심을 본 것이다. 낙타에게 물을 주는 것은 넉넉함이었다. 낙타에게 물을 주는 것은 성실함이었다. 낙타에게 물을 주는 것은 자원하는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남의 마음을 아는 귀한 마음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일상실력 평소실력이었다. 만일 리브가가 이삭의 종이 온다는 정보를 듣고 꾸몄다면 그것은 눈속임이었을 것이다. 아마 화장도 하고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리브가의 모습은 앞으로도 그러할 모습이었다. 꾸민 것은 이후에 드러나게 된다. 본색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본색이 원래 그랬다면 꾸밀 것도 없고 있는 그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리브가는 거부이며 하나님의 백성을 이룰 아브라함의 며느리가 되는데 “낙타에게 물 잘줘서” 된 것이다. 그러나 낙타에게 물을 주었다는 것은 그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주목하고 볼 때 보이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런 정도의 여자 같으면 이삭의 아내가 되고 아브라함의 많은 재산과 가문을 잘 관리하고 평안히 가정을 다스릴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리브가가 이스라엘의 가문의 사람이 된 것은 낙타에게 물 주어서이다.

IV. 그래서 얻은 이삭의 아내 아브라함의 며느리 이 종의 주인마님 리브가는 어떤 여인이었는가? 비록 낙타에게 물을 주는 여인으로 리브가를 택했지만, 알고보니 참 많은 것을 갖춘 여자였다! 한마디로 리브가는 준비된 여자였다. 아브라함과 그의 종 엘리에셀이 그렇게 심혈을 기울인 것처럼 리브가도 준비되어 있는 여성이었다.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딸이었다. 가문이 좋았다는 것이다. 16절에 리브가에 대한 표현이 나온다.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고 한다. 알고 보니 그녀는 예뻤다는 것이다. 성형도 필요하면 하라.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매력포인트를 가지라. 신부는 아름다워야 한다. 멋을 한껏 부려보라. 하지만 순결해야 한다. 그것이 신부의 트레이드마크이다. 남자는 없고 정결하기는 한데, 붙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자신을 꾸미지 않아도 곤란하지만, 아름답기는 한데 남자가 많으면 안 된다.
이곳에서 커플들이 많다.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꼭 부탁하는 것은 선을 넘지 말라는 것이다. 선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어릴 때도 선을 넘다가 죽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사방치기 하고 오징어, 무슨 게임하다가 선 밟고 넘으면 죽는다. 순결이 없어지면 죽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지켜질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결혼을 하라. 그래서 오는 3월 1일 결혼하는 커플이 있다. 한달우형제와 전주희자매이다. 한국에 가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아예 결혼하고 오지 뭐.

이번 주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배우자와 결혼과 가정치유세미나가 있다. 좋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좋은 가정을 세우기를 위해서 한번 진하게 드려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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