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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

가짜 공짜 진짜 공짜

작성자권순태목사|작성시간18.03.06|조회수393 목록 댓글 0

성경: 마태복음 11 : 28-30

제목: 가짜 공짜 진짜 공짜

일시: 2018. 3. 3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한국에 가서 많은 분들을 만났다. 그 가운데 많은 분들이 이곳에 와서 제게 신세를 지신 분들이다. 스스로 말하기 우습지만 말하자면 제게 빚진 분들이다. 제가 그 빚을 받으러 간 것이 아니었는데 그분들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주시고 환영하심으로 이제 다시 빚을 지고 왔다. 이렇게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면 개인적으로 한해를 시작하는 느낌이다. 가지고 온 숙제들과 빚을 갚아 나가고 그들과 함께 계속 교제하며 한해의 삶을 계획해 나갈 것이다. 빚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 그러한 빚은 아름다운 교제요 즐거운 친교요 함께 주의 일을 해 나가는 축복된 동역이다. 그러한 모든 만남과 사역들은 은혜스러운 일들이지 부담스러운 빚이 결코 아니다. 그것들은 그저 얻어진 공짜와 같다.

 

II.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공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결국 그 값을 다 치르게 된다는 네가티브의 의미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공짜는 어떠한 것인가? 공짜를 제공하는 주체가 세상이 될 때 그 공짜는 가짜공짜이다. 세상은 결코 우리를 위해서 좋은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서 빼앗기 위해 제안하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공짜로 준다고 할 때는 공짜 기분이 들게 할 뿐이지 실제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한국에 마트에 가서 무엇을 사게 되면 “계산 도와드릴께요”라고 한다. 돕기는 뭘 돕는가? 돈 내라는 것이지. 특별 세일 한정품을 여러분들께 증정합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라고 하는데 무엇을 공짜로 주는가? 팔기 위한 것이지. 라면을 사도 +1을 주기도 하고 과자를 사도 +1을 주기도 한다. 우리에게 공짜로 주는 것 같지만 결국 진짜 고객을 위한 것은 아니다.

예)마켓뿐 아니라, 정치계에서도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무슨 뜻인가? 공짜를 사용하여 관심을 끌고 인기를 끄는 것을 말한다. 치를 값을 생각하지도 않고 표와 인기만을 생각해서 무모하게 행하는 선심을 말한다. 복지를 한다. 제도를 뜯어 고친다. 이것을 해주고 저것을 해주고 모든 것에 보상을 해주고... 그러나 결국 우리 주머니에서 우리가 부담하는 것인데 공짜라는 착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그러한 포퓰리즘의 정치인들은 우리에게 이익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서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부동산가면 집을 사라고 한다. 병원가면 수술하라고 한다. 변호사한테 가면 고소하라고 한다. 양복점 가면 옷을 사라고 한다. 작으면 몸에 딱 맞는 안성맞춤이라고 하고 크면 이렇게 편안하게 넉넉하게 입어야 한다고 한다. 한국 지하철에는 샾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지인을 기다리면서 눈에 띄는 샾이 있었다. 핸드폰 케이스를 판다. 들어가서 살펴보기가 무섭게 “아버님 뭘 도와드릴까요? 가지고 계신 기종이 뭐세요?”라고 한다. 핸드폰을 보더니 오래되셨네요라고 하면서 이 기종에는 빨간색 검정색 푸른색이 있는데 빨간색은 잘 안하시고... 그래서 저는 빨간색을 택해서 교체를 부탁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잘 어울린다고 하면서 2년은 더 쓰셔도 될 것이라고 한다. 정말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인가?


세상은 믿을 곳인가? 아니다. 우리를 위하는 것 같지만 결코 우리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는 좋게 말하여도 이미 속에 있는 의도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공짜로 주어 놓고는 “딱 걸렸어”라고 하면서 쾌재를 부른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거두어 가겠다는 것이다. 나를 투자 대상으로 여겨서 내 것을 가지고 가려고 하는 사람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세상에 가면 약점을 이용하고 그 갈급함을 이용하려고 할 뿐이지 참된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세상에게는 약하게 보이면 안된다. 정글과 밀림과 같이 우리의 약함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쉬라고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쾌락일 뿐이지 진정한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일시적인 통증을 제거해 주는 진통제일 뿐이지 치료가 되지는 못한다. 우리에게 맛나는 것을 줄 뿐이지 건강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하지 유익한 충고는 아니다. 결국 세상이 주는 공짜는 가짜 공짜이다. 즉 값을 하나도 치르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값을 톡톡히 치르게 한다.

 

III.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우리를 초청하고 계신다. 그러면서 쉼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세상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이용하고 그들로부터 뭔가를 챙기려고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공짜로 주시고자 하신다. 그런데 이 공짜는 특이한 공짜이다. 공짜는 공짜인데 값은 여전히 치르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오는 소비자 가격은 눌 즉 제로이다. 보통 무엇인가 값진 제품을 만들 때는 “디자인” “재료” “물류유통비” “인건비” “부가가치세” 등이 붙어서 소비자에게 올 때 원가보다 소비자 가격이 확실히 높다. 게다가 “서비스챠지”까지 붙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쉼을 주시고 제안하는 가격은 빵원 공짜이다. 하나님의 구속계획,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십자가를 지시는 인건비,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안식... 이 모든 것이 복음인데 그 값은 공짜라는 것이다. 그러니 복음이지. 축복은 노력의 댓가가 아닌 공짜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공짜는 값이 없는 것 같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싼 값을 치른 것이다.


100여 년 전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이 시작되었다. 커피를 주문할 때 자신의 커피값 외에 다른 사람을 위한 커피값까지 미리 지불하면 나중에 노숙인 등 형편이 어려운 이웃이 카페에 들러 마실 수 있도록 한 기부 운동이었다. 서스펜디드 커피가 한국식 기부 형태로 바뀐 것이 “미리내 가게”이다. '미리내 가게'는 이름 그대로 돈을 미리 내는 가게다. 어려운 이웃이 무료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먼저 온 손님이 돈을 기부해 놓는 방식이다. 손님들이 자신이 먹은 음식을 계산할 때 조금이라도 더 돈을 지불하면(미리 내면) 그 차액이 기부금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음식 값이 1만원인데 1만5000원을 내고 가면 5000원은 소머리국밥 쿠폰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모인 쿠폰을 틈나는 대로 식당 안 알림판에 “무료로 먹을 수 있는 국밥 수”를 써 놓는다. 그 알림판을 보고 홀로 사는 어르신이나 인근 학교의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와서 먹고 간다. 일부 어르신은 내게 '미안하다'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기부한(미리 낸) 사람이 '손님'이란 설명을 듣곤 오히려 더 큰 감동을 받는다. 2013년 5월 '미리내 가게 운동본부'가 본격적으로 홍보에 나선 뒤 현재 전국 200여 곳이 동참하고 있다.


주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 미리사랑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도 말이다. 주님은 우리를 이미 용서하셨다. 미리 용서이다. 우리가 내일 지을 죄도 내년에 지을 죄도 미리 다 용서하신 것이다. 우리는 마치 뒤에 와서 무료로 국밥을 먹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국밥의 값을 이미 십자가에서 다 지불해 주신 것이다. 우리가 그 초청에 응해서 가서 먹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공짜이지 주님은 이미 그 값과 그 희생을 치루신 것이다.


우리의 부모님이 값을 치르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설 수 있는 것이다. 자녀들이 있다. 독일어를 하고 한국어를 한다. 한국어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아는가? 둘째 아이의 경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꼭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쳤다. 그리고 12년 동안 한글학교를 꼬박 하도록 했다. 영어는 어떠한가? 많은 수고와 땀을 들였다. 에너지가 들어갔다. 

논문 쓰는 일 년간 내가 설주를 데리고 있었다. 영어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 아침식사 준비하는 6시에 카툰만화영화를 틀어 놓는다. 그리고 일어난 기색이 들면 영어로 말을 붙인다. 나로부터 배우라는 것보다 영어에 빠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전에 학교 하나 오후에 학교 하나 두 군데를 보내었다. 그리고 피아노도 영어하는 현지인에게 보내고 저녁에는 미국인교수 아이들과 놀게 만들었다. 이후 미국으로 일 년간 교환학생으로 보내었다. 돈도 드는 일이다. 지금 와서 화나는 것은 무엇인지 아는가? 자기들이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안다. 뭐 어디 가서 독일어로 네가 말하라고 하면 아직까지 엄마아빠는 그것도 제대로 못하냐는 식이다. 어느날엔가 “아빠 독일 오신지 몇 년이 되셨어요”라고 하는데 정말 서럽고 더럽고 화가날 정도였다. 그들에게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얼마나 철저히 계획하고 수고의 땀과 투자가 있었는지 아는가? 그러나 그거 다 돌려 달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면 늘 하는 얘기로 더러워서라고 말을 한다.

세상은 값을 치르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청구하지 아니하시는 것은 아비의 사랑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공짜로 주어야지 그것을 값을 치르라고 하면 결코 우리가 구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것을 드릴 만한 것이 없고 파산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우리를 초청하실 때 자격요건은 없다. 누구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다. 그 값은 비싸지만 우리에게는 무료로 제공되었다. 주님은 미리내 경영을 하셨다. 미리내 경영은 사랑이 있어야 한다. 미리내 경영은 희생의 헌신이 있어야 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공짜는 특이한 계산법으로 지불된 공짜이다. 잔뜩 항목을 기록한 이후에 따라서 우리의 영수증에는 “Paid" "Bezahlt" 라고 기록된 것이다.

 

IV.사람들은 “목사님 바쁘게 다니고 힘이 많이 들텐데 건강하게 모든 일 잘 감당하세요” 라는 인사를 종종하곤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러한 바쁨과 애씀은 물리치거나 거절할 일이 아니라 즐거움이지요”라고 고백하곤 한다. 왜 그런가? 그것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은혜와 축복을 나누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 빚을 지고 빚을 갚은 일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세상이 지고 갚는 빚이 아니라 은혜를 얻고 베푸는 은헤의 빚이요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사랑의 빚이었다. 그 빚은 give and take 나 buy and sell에서 나오는 빚이 아니요 희생이라는 sacrifice 와 은혜라는 grace에서 나오는 빚이다. 이제 3월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라이프찌히에 속한 모든 교우들과 지체들에게 그런 진짜 공짜의 은혜와 축복을 드리고 싶다.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주님을 편리한 주님이 아닌 편한 주님으로 함께 섬기며 신앙생활을 해나갈 것이다. 값을 따져서 사는 싸구려 값싼 인생이 아니요 이미 지불한 미리내 사랑의 은혜와 축복으로 명품인생으로 함께 살아가기를 바란다. 결국 값을 내는 가짜 공짜가 아니요 값을 내지 않아도 비싼 것을 얻을 수 있는 진짜 공짜의 신앙생활을 함께 해 나가기를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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