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창세기 26 : 1 - 5
제목: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일시: 2018. 6. 17
장소: 라이프찌히 한인교회
I. 어느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면서 재미난 얘기를 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너에게 어느 땅을 약속의 땅으로 줄까?”라고 했더니 아브라함이 “카나다”(Canada)를 받을 욕심에 너무 흥분해서 “카카카”라고 하면서 그만 말을 더듬고 말았다. 이때 하나님께서 덥석 “아하 카나안? (Canaan)이라고 하면서 카나다 대신 카나안을 약속의 땅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우스개소리로 만들어낸 이야기이지만 참 의미가 있다. 인간적으로 카나다는 카나안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곳이고 카나안은 불모지와 같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이기 때문이다. 비록 오늘 말씀처럼 반복적인 흉년이 있어도 말이다.
II. “흉년” 때문에 생기는 생각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다가 어려움이 있게 되면 종종 하나님의 뜻이 의심스러워지고 믿었던 약속이 희미해질 때가 있다. 약속의 땅을 향해가던 순례자의 삶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난민과 같이 삶이 흔들리기도 한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비록 약속의 땅에 머물렀지만 그 땅에 흉년이 들자 마음이 흔들렸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그 흉년으로 인해서 가나안이 약속의 땅이라는 사실을 잊고 떠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 약속의 땅이 사실 어떠한 땅인데 말이다. 그 땅은 아브라함이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어렵게 찾아온 곳 아닌가! 하지만 흉년이라고 하는 시련이 찾아오자 하나님의 약속은 희미해지고 인간적인 생각이 슬그머니 들어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어떠한 생각을 가질 줄 아시고 애굽에 내려가지 말라고 하신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고 하신다. 버티라는 것이다.
애굽은 참 묘한 곳이다. 애굽은 이스라엘에게 문제가 있을 때마다 늘 대안으로 떠오른 곳이었다. 애굽은 이스라엘이 숨겨놓은 쌈지돈 같은 곳이고 조금만 힘들어도 늘 유혹의 손짓을 보내는 곳이었다. 그곳은 뭔가 풍요로움이 있어 보이는 곳이다. 화려해보이고 모든 것이 갖추어져 보이는 곳이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에게 있어 그곳의 삶은 “종살이”의 삶일 뿐이지 “시민”으로서의 삶이 아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의 코를 꿰는 노예 삼는 곳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얼마나 중독되어 있는지 모세의 인도 아래 애굽을 탈줄하여 광야를 걷게 될 때, 조금만 힘든 시련이 와도 자꾸 애굽 생각을 하게 된다. 마늘과 부추와 삶은 고기가 생각이 나는 것이다. 가나안땅이라는 약속의 땅 목적지를 향해 순례의 삶을 걸어갈 때 애굽은 계속 쭈릭하라고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순례자는 “외도”를 해서는 안된다. “정도”를 걸어야 한다. 약속의 땅에 흉년이 와도 그 땅에 버티고 거주하여야 한다. 지금 당장은 애굽이 더 편하고 안전해 보여도 언제나 부작용이 따른다.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라함은 무슨 일을 당하게 되는가?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서 당장 눈앞에 있는 기근이라는 문제는 해결했을 수 있지만 그에게 엉뚱한 문제가 발생한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바로왕에게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야 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또한 애굽여인 하갈을 종으로 데려온 것이 이후 아브라함 가문에 분쟁의 불씨가 된다. 즉 아브라함과 하갈을 통해서 낳은 아들 이스마엘이 이스라엘과 갈등과 분쟁을 일으킨다. 이스마엘은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열매이다. 하나님께서는 흉년이 들자 그랄로 내려간 이삭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미리 경고하고 계신 것이다.
“약속의 땅”은 그 땅의 토질과 기후와 지형 등을 고려해서 결정된 것이 아니다. “약속”은 내용을 믿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는 사람”을 신뢰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삭이 약속을 받아 누리게 될 축복을 주는 주체는 그 땅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내용을 볼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분을 믿고 거류해야 한다. “약속”은 언제 하는가? 쉬운 것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것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약속은 누가 하는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는 것이다. 단지 우리는 그 약속에 대해서 믿음으로 응답하면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 약속의 내용을 보면 숨이 가빠올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지?”라고. “약속의 땅이라고 하는 이 땅에 이미 있는 거인족 아낙 후손들을 어떻게 처리하지?” “빈번히 오는 흉년을 어떻게 견뎌내지?” “약속의 아들을 주신다고 하지만 이미 아들을 얻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데 어떻게 약속의 자녀를 얻지?” 그러나 우리는 약속의 내용을 볼 필요가 없다. “약속의 땅을 주신다면 알아서 주시겠지” “약속의 자녀를 주신다면 알아서 주시겠지”라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이 필요할 뿐이다. 약속 자체에는 손댈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 수준에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수준에서 생각하면 된다. 흉년이 있다고 해도 약속의 땅이면 버티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약속하신 하나님은 길까지 마련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게 생각하신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55:9). 이삭이 해야 할 일은 딱 하나였다. “이 땅에 거류하면”이다. 다시 말하면 “약속을 믿고 약속 안에 거하면”이다. 약속의 땅에 흉년이 들어도 내려가지 말고 거주하라. 이 땅 즉 약속 안에 머물기만 하면 일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흉년을 보지 말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보라는 것이다.
III. “흉년” 때문에 얻게 되는 유익
인간적으로 보면 이삭에게 흉년은 위기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만나게 되는 위기는 알고 보면 기회이다. 약속의 땅을 향해 걷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광야는 쓸데없이 시간낭비하고 무의미하게 고생만 하는 그런 시간이었는가? 하나님의 선한 계획에 따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그 길, 광야의 경험은 유익한 순례자의 길이었다. 그 시련의 과정을 통해서 “약속의 내용”보다 “약속하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되고 교제하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기근과 흉년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된다. 모세는 홍해를 만나고 광야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된다. 이스라엘백성들도 길도 없는 광야에서 불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도 약속의 땅에서 첫성 여리고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고 그 싸움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알게 된다. 비가 온 다음에 더욱 더 땅이 단단해지는 것처럼 인생의 “흉년”은 사람사이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없이 확고하게 한다. 위기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맛보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을 하게 된다.
오늘 할레교회 역사출현 창립 17주년예배를 드린다. 말씀을 전하러 간다. 할레교회는 처음에 라이프찌히교회 가족들이었는데 그곳 식구들이 많아지니 분리개척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축하예배에 함께 있어야 할 김상준목사님이 지난 목요일 급하게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유는 부모님이 사시는 집이 화재가 나서 전소했기 때문이다. 불이 난 시골집은 산자락에 있는 곳으로 소방차가 들어가지도 못하고 80이 가까운 노인 두분이 20년 전에 집을 짓고 사셨던 보금자리이다. 무허가 건물이기에 관공서에 도움요청도 어렵고 두 아들은 이곳 할레와 이태리 로마에서 살고 있고 한국의 몸담고 있는 교회는 별로 도움이 되지를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제가 두주간 말씀을 전하고 한주간은 김희중전도사가 전하고 3주동안 김상준목사는 그곳에서 부모님의 집을 허스름한 블록집이라도 지으려고 한다고 한다. 그래서 유한침위기관리기금에 요청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돕자고 했다. 유한침 회원들의 전체 카톡방이 걱정과 관심 사랑으로 뜨겁게 대화가 오고 갔다. 오히려 전화위복되어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남은 생애 동안 더 좋은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사랑을 나눔으로 지체동역자들이 더 뜨거운 사랑과 마음을 나누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혹시나 싶은 애굽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꼭 찍어 “내려가지 말고”라고 하시니 애굽의 끈을 싹 잘라버리신 것이다. 한가닥 믿었던 구석도 폐기처분하시니 끈 떨어진 연과 같을 것이다. 게다가 다시 꼭 찍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고 하시니 이삭은 이제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잘라 버리기도 하신다. 하지만 그때 길이 열리는 것이다.
할아버지 권혁봉목사님이 궁통(窮通)이라는 단어를 써서 손주들에게 주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다. 영어로 하면 “Difficulties open the way forward”이다. 어려움 시련들이 우리의 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나가는 길을 연다는 것이다. 독일에 살면서 독일 사람들의 대단함과 한국인의 긍지를 동시에 갖게 된다. 독일 사람들은 힘들게 일을 못한다. 힘든 것을 잘 참지 못하는 것 같다. 농담조로 말을 하면 독일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쉽고 편리하게 할까 하여 모든 것을 연구하고 개발한다. 힘들고 불편한 것을 흉년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기계를 만드는데 세계 최강이다. 독일이 철강기계로 먹고 사는 나라이다. 역으로 한국은 워낙 어려운 나라였다. 그러다 보니 살기 위해서 그 경쟁 속에서 별 노력을 다한다. 한국 사람들은 한이 많고 고통이 많아서 인내할 줄 알고 투지가 있고 어려움을 잘 참는다. 나라가 책임을 지지 못해 왔으니 각 개인이 근성을 갖고 인내한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무모하리만큼 무식하게 밀고 나간다. 그러나 한국과 독일의 공통적인 것은 “궁통”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으니 통하는 묘수가 나온다는 것이다. 내일 월드컵에서 스웨덴과 붙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 더 센 멕시코와 마지막 예선에는 세계1위 독일과 붙는다. 이에 비해 우리는 너무 약체이다. 그들은 너무 강팀이다. 그래서 손해 볼 것 없다. 어차피 다들 힘들 상대들인데 강한 놈들하고 붙었으니...
궁하면 막히는 것 같지만 통하게 된다. 인간적으로 볼 때 애굽으로 가는 길은 통하는 길 같다. 하지만 그 길은 파멸로 이끌고 약속을 파기하는 길이다. 또한 그 길은 정도가 아니요 외도가 되는 것이고 다시 난민과 같이 애굽의 종살이로 돌아가는 것이다. 약속의 땅을 향해 가는 길은 광야의 길이요 약속의 땅에 거류하는 것은 흉년을 감수하는 일이어서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궁통하게 된다. 그 통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눙 즉 해결사요 답이 되기 때문이다.
IV. 우리의 삶에는 흉년이 늘 들기도 한다. 아브라함 때에 있던 흉년이 이삭 때 대를 이어서 있기도 하다. 그때 약속의 땅에 대해 의심스러워한다. 그리고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하나님을 잊고 애굽을 떠올리기도 한다.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흉년과 홍해와 광야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뒤를 돌아가서는 안 되고 우리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약속의 땅에 거주하여야 한다.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 약속의 내용이 아니라 약속하신 분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믿음이요 그러한 것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이다. “거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는 이삭은 거부가 되게 된다. 기근의 땅이 변하여 대풍의 장소가 된다. 이 스토리에 대한 에필로그가 창세기 26장 12,13절에 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흉년이 있어도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 나의 애굽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라. 약속의 말씀이 있다면 그 안에 거하라. 믿음으로 버팅긴 이삭의 축복이 지체들의 삶에 현장에서 체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