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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

마게도냐 교회에 주신 풍성한 은혜

작성자권순태목사|작성시간19.10.22|조회수357 목록 댓글 0

성경: 고린도 후서 8: 1- 6

제목: 마게도냐 교회의 풍성한 은혜 들에게 주신 은혜를 알리노니

일시: 2019. 9. 8(라이프찌히 교회와 중국인교회) (2019. 11. 3베를린늘푸른교회)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은혜”라는 말을 쓸 때 보통 앞에 붙는 수식어가 하나 있다. “풍성한”이라는 형용사이다. 은혜치고 인색한 은혜 없고 삐쩍 마른 은혜 없다. “은혜가 조금 있다”라고 하는 표현은 어색하다. “은혜가 떨어졌다”느니 “은혜가 부족하다”라는 말은 “은혜가 조금 남아 있다”란 말이 아니고 “은혜가 없다”는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게도냐교회는 은혜는 있었는데 생색을 내거나 연명하는 듯한 은혜가 아니요 풍성하고 넘쳐나는 은혜로 소문이 나 있었다. 바울은 마게도냐의 은혜를 고린도교회들에게 알리며 고린도교회도 그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마게도냐교회가 어떠했기에 은혜가 풍성하다는 소문이 났을까? 이 마게도냐의 풍성한 은혜를 우리 삶에서도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II. 세상의 상식에서 벗어나 역방향으로 갈 때 은혜는 더욱 풍성하게 된다.

오늘 말씀에 대조가 되는 단어들이 있다. “환난 혹은 시련”이라는 단어와 “기쁨”이라는 단어이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세상의 상식은 환난과 시련이 있으면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좌절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게도냐교인들은 오히려 기뻐했다. 또한 “가난” 이라는 단어와 “연보”라는 단어가 있다. 이 역시 서로 거리가 먼 단어들이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가난하면 연보할 여력도 없고 남을 위해 슈펜데를 할 여유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게도냐교인들은 그러한 가난 속에서도 기꺼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적은 물질도 함께 나누었다. 여기에 은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은혜”를 “풍성한” 은혜로 만드는 것은 그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 앞에 붙어 있는 형용사들이다. 시련도 그냥 시련이 아니라 “많은” 시련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기뻐하였다고 하는데 그 기쁨은 보통 기쁨이 아니라, “넘치는” 기쁨이었다. 또한 그들이 가난하였는데 보통 가난한 것이 아니라 “극심한” 가난 속에 있었다. 그러나 그런 형편 속에서도 연보를 했는데 그 연보는 “풍성한” 연보였다. 현실의 세계와 마게도냐교인들의 반응은 하늘과 땅과 같이 큰 간극을 가지고 있었다. 동에서 서가 먼 것과 같이 그 거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멀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거리가 은혜의 깊이와 넓이이다. 그 간격이 은혜의 범위이다. 거짓이 난무하는 곳에 진리가 더욱 뚜렷하고 어둠이 짙을수록 작은 불빛 하나가 더욱 밝게 보이듯이 이러한 차이에서 은혜가 더욱 풍성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은혜가 풍성하다고 할 때는 그 무언가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다소의 문제가 아니라 마게도냐교인들과 같이 믿음으로 세상의 상식과 가치를 극복해 낼 때 은혜가 넘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역방향으로 나가는 믿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은혜를 가져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신할 때 풍성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이라면 풍성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 언제인지 안다. 언제가 효과만점의 은혜를 끼칠 수 있는 때인지를 안다. 시련의 시기는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다. 조금만 기쁨을 표현해도 그 기쁨은 무척 돋보이게 될 것이다. 지극히 가난함 속에서 오히려 이웃을 도와보라. 그 도움은 놀라운 감동과 은혜를 줄 것이다. 바쁠 때 오히려 시간을 내어주어라. 얼마나 그 시간들이 값진가? 불평거리와 어려움이 있을 때 그럼에도 감사해 보라. 그 감사는 더욱 풍성한 감사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5:8). 내 자녀를 사랑하고, 내 교인을 위해 봉사하고, 내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가치가 있지만 원수를 사랑할 때 사랑이 증명되는 것이다. 죽으실 필요가 없을 때 죽어주신 것은 참된 희생이 되는 것이다.

우리 표현 중에 “어차피”라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간격을 넓히는 용어이기에 풍성한 은혜를 주지만 “어차피”라는 생각과 표현은 같은 방향이라서 별로 은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실제적으로 “어차피”라고 해도 내겐 그 말은 금기어와 같다. 어차피 남을 것이니 주는 것을 싫어한다, 어차피 너무 많아 썩을 것이니 준다? 어차피 시간이 남아 돕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를 만날 때 어차피 이쪽으로 올 일이 있어서 들렀다고 하지 마라. 오늘 중국교회에 말씀을 전하러 간다. 어차피 주일 말씀을 전해야 하니 라이프찌히 교회 말씀을 준비하다가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곳 말씀을 전하려다 우리 교회도 전한다.(중국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어차피 주일 오후에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는 축구를 희생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풍성한 은혜가 되는 것은 어차피 주님도 죽으셔야 할 정도로 죄를 지었고 어차피 주님도 연로하고 병들어 오래 못사실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부러 죽으셨기에 은혜가 넘치는 것이다. 세상의 상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요 믿음의 승리로 결단해 보라. 세상이 말하는 방향이 아니라 역방향으로 나가보라. “어차피”가 아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보라. 그 속에서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III. “넘치도록”하고 “힘에 지나도록” 하는 것이 풍성한 은혜의 비결이다.

“풍성하다”라는 말의 개념정리를 하고 싶다. 풍성하다는 것은 “남는다”라는 것이 아니다. 풍성하다는 것은 “아껴쓴다”는 것이 아니다. 풍성하다는 것은 남김없이 다 쓴다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풍성하다고 할 때는 흑자가 생기고 여유가 있고 남는 것이다. 하지만 마게도냐교인들을 볼 때, 그들이 “풍성한 은혜”의 쭘바이슈필이 되었던 것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 소진했기 때문이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우리의 인생을 살아갈 때 매 순간마다 풍성하게 사는 것은 있을 때 남기지 말고 다 쓰는 것이다. 그것은 가진 모든 것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20대에 쓸 것을 다 써야 풍성하게 쓰는 것이지 남는 것이 있다면 풍성하게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쓸 것을 다 쓰지 못하면 후회와 아쉬움이 있다. 그때 그럴 껄 하면서. 하루 24시간이 있다. 그 시간이 그냥 흘러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하여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하루의 모든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하면 잘 산 것이고 풍성하게 쓴 것이다. 그 빈 시간을 남겨두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 하루를 살면서 흑자를 보는 인생은 시간을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다 쓰는 것이다. 돈이 있을 때 흑자는 그 돈을 잘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잘 쓰는 것이다. 있을 때 잘 쓰라.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말과 같이 시즌을 지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손에서 내려 놓아야 하는 때가 있고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한다. 이가 좋을 때 딱딱한 것을 즐기라. 입을 수 있을 때 입고 맵시를 내야 한다. 도전해 볼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배울 때가 있다. 공부할 때이기에 유학을 나온 것이다. 눈 보일 때 책을 읽는 것이다. 시간 지나면 감각도 무디어지고 노안이 와서 어렵다. 눈 좋을 때 일도 열심히 하라. 드라이바를 가지고 나사를 돌리는데도 쉽지 않다. 다리가 떨릴 때 움직이지 못하고 가슴이 떨릴 때 움직여라. 설레임이 있을 때이다. 다닐 수 있을 때 다니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놀지 못한다. 있을 때 열심히 사용하는 것이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이다.

쓰기는 쓰는데 가지고 있는 만큼 정도가 아니라, 넘치도록 사용하는 것이 풍성한 삶이다. 은혜는 “넘치도록” 하고 “힘에 지나도록” 할 때 나오는 것이다. 그 말은 내가 할 수 있는 극대화의 선에서 한발자국만 더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극대화의 선은 갈등의 선이고 긴장의 선이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풍성함을 맛볼 수 있다. 갈등과 긴장을 잠재울 수 있다. 빠듯하지 않게 조금 더 플러스알파의 삶을 살면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예)이제 깻잎도 서서히 제철이 지나가려고 한다. 이제 말하지 않고도 열심히 따서 드시라. 지난 2-3개월간 깻잎을 달라고 했다. 그 재미로 깻잎을 키운 것이다. 그리고 요청이 있을 때마다 늘 플러스로 주었다. 요청한 것보다 5~10장 이상을 더 가져가라고 한다. 이 얼마나 풍성한가?(혼자만 그렇게 대견스레 생각하는가?) 어떨 때 은혜가 풍성하게 느껴지는가? “조금 더” 하는 것이다. 플러스알파면 되는 것이다.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때 풍성함을 경험하는 것이다. 작은 플러스알파에 기쁨이 있고 즐거움과 행복이 있다.

예)우워라우프를 가게 되면 풍성함을 경험하고 싶어한다. 풍성함을 경험하기 원하면 다음과 같은 작은 것에서 해방되라. * 한국 사람은 화장실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돈을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50~70센트 투자하라. 속 편하게 다닐 수 있다. *한국사람은 물 마시는데 아까워한다. 음료수를 시킬지 말지를 가지고 레스토랑 종업원과 긴장관계를 갖게 된다. 식사 중 물을 마시는 것이 소화에 안 좋으니 먹을 때는 안 시킨다는 이론을 가지고 나중에 시킨다고 하기도 한다. 내 차에 가면 물이 있는데 굳이 사 마셔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물시키는 것에서 해방되면 자신이 있다. 그날 외식이 풍성해진다. *팁을 놓는 것도 그렇다. 몇 퍼센트 놓아야 하는가? 그러나 놓으려고 작정하면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다. *차량도 시간을 넉넉하게 하니 가슴 졸이지 않고 좋다. 너무 빠듯하게 시간 계산해서 주차표를 끊자니 갈등의 경계선에서 풍성하지를 못한다. *거리에서 버스킹하는 연주자에게 기부해 주어라. 그러면 음악감상도 떳떳하게 할 수 있더라. 풍성하게 사는 것은 플러스 알파 즉 넘치도록 힘에 지나도록 하는 것이다. 마게도냐 교인들은 넘치도록 하고 힘에 지나도록 하기에 은혜가 풍성했던 것이다.

 

IV. 형식적으로 게발놀리듯이 부득이 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원하여 “간절히” 바랄 때 풍성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 마게도냐교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빌립보의 부호 자색옷감장사 루디아가 나온다. 사도바울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는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와서 만난 사람이 루디아이다. 루디아는 자원하여 자신의 집을 오픈하고 가족들을 초청하여 함께 예배장소로 썼다. 이런 루디아의 전통이 마게도냐교인들의 특성이 되었다. 그러한 교회분위기가 여전하여 마게도냐 교인들은 기쁨이 넘치고 풍성한 연보를 하였다. 그리고 성도를 섬기는 일에 인색하지 않고 모든 일에 넘치게 하고 힘에 지나도록 풍성하게 하였다. 그들은 어떠한 “규정”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법”으로 정해 놓은 그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자원”하여 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은혜가 있는 것이다. 은혜가 풍성하다는 것은 규정과 법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도 않고도 자발적으로 알아서 한다는 말이다.

예)정계의 사람들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 문제가 있으면 흔히 하는 이야기가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말을 한다. 도의적인 책임이 있을 수 있어도 법적인 하자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법의 경계선에서 사는 사람이 과연 풍성하게 사는 사람이고 제대로 된 사람인가? 우리는 법을 거론하지 않고 살고 있다. 법적인 하자가 없이 산다고 한다. 사회지도자가 될 때는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것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일반시민들도 법적으로 사는 것보다 법 없이도 산다. 우리는 법과 규정에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에 따라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억지로 부득이하게 하는 것과 간절히 자원하게 될 때는 그 분위기가 달라진다. 법과 규정이 아니라 은혜로 살 때 삶의 양과 질이 달라질 것이다. 부득이 하게 할 때는 짜증이 있지만 자원할 때는 기쁨이 있다. 부득이 하게 할 때는 함량미달이지만 자원할 때는 넉넉함이 있다. 부득이 하게 할 때는 별 의미 없지만 자원하여 할 때는 가치와 의미가 있다. 부득이 하게 할 때는 부자연스럽게 게발놀리듯이 움직이지만 자원할 때는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이 있다. 부득이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사는 사람은 은혜가 풍성하게 사는 사람이다.

예)퀄리티가 달라진다. 아내와 함께 쇼핑가는 것은 쉽지 않다. 쇼핑을 하다가 10분이 채 안되어 장바구니차를 기대어 무척 힘든 모습을 한다. 하지만 축구는 서너 시간해도 그저 즐겁다. 사실 어느 것이 더 힘이 들고 땀이 많이 나는가? 운동은 안하면 몸이 쑤시지만 쇼핑은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쑤신다. 결국 마음의 문제이다. 자원하는가? 부득히 함으로 하는가? 부득이 하는 마음이 있으면 해가 나면 뜨거워서 못하고 비가 오면 운동장이 질퍽거려서 못한다. 그러나 자원하면 비가 안 오면 화창해서 하고 비가 와서 땅이 질퍽거려도 즐겁게 하고 심지어 눈이 펄펄내리는 눈밭에서도 강아지처럼 뛸 수 있는 것이다.

예)퀀티티가 달라진다. 넉넉함이 있다. 은혜는 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사는 것이다. 법은 미니멈이다. 그러나 은혜는 맥시멈으로 풍성해야 하는 것이다. 법은 언제나 최소한이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언어를 한다. 학교와 전공에 따라 언어 요구가 다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B2까지 요구하니 그렇게 한다고 한다. 그것은 최소한을 말하는 것이다. Be 2했다고 잘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최소한이다. C를 다 하든지 해야하지. 미니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맥시멈으로 살아야 풍성한 삶이 아니겠는가? 언어도 다양한 표현으로 해야 대화가 풍성해질 것이다. 비겟에스이넨? 야 굿!만 하면 재미없다.

 

V. 이번 주는 추석이다. 추석은 풍성한 결실을 축하하는 가을 축제이다. 우리 모든 교우들의 삶이 삐쩍 마른 삶이 아니요 풍성한 삶이 되기를 바란다.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풍성한 가정이 되고, 풍성한 직장이 되고, 풍성한 교회가 되고, 풍성한 대한민국이 되고 풍성한 독일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기왕에 부탁받은 것 시원하게 들어 주라. 기왕에 사업한 것 겨우 사업을 유지하지 말고 풍성하게 하라! 기왕에 연주할 것 겨우 해내는 것으로 만족치 말고 영감 있는 연주 멋지게 하라! 기왕에 비젼을 갖고 시작한 공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아라! 기왕에 결혼한 것 마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재미나고 깨 쏟아지게 살아라! 우리 주님은 은혜가 풍성하신 주님이시다. 은혜가 풍성했던 마게도냐 교회, 그리고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그 풍성한 은혜를 입으라는 바울의 권고가 가을을 맞으며 새롭게 시작하는 라이프찌히 교회 모든 성도들의 삶에도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모든 이들이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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