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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

모세가 죽은 후에 - 다음 선수 여호수아

작성자권순태|작성시간07.04.23|조회수158 목록 댓글 0
성경: 여호수아 1:1-4
제목: 모세가 죽은 후에
일시: 2007. 4. 22
장소: 라이프찌히 한인교회

I. 각자 자기의 부분이 있다.
운동경기 중에서 의외로 대단히 재미있는 경기가 릴레이, 계주경기이다. 트랙을 도는 선수들을 보라. 선수들이 격차를 서서히 줄여 나가거나 격차를 서서히 벌여나갈 때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또한 잘 달리다가 오바페이스를 해서 넘어져 역전을 당하기도 한다. 또한 바통을 놓치므로 해서 결정적으로 시간을 지체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매순간이 긴장의 순간들이다. 400미터 계주의 경우에는 100미터씩 달린다. 4명이 한 조를 이루는 이 선수들은 가장 효과적으로 계주를 하기 위해 작전을 짠다. 처음에 스타트가 좋은 사람, 그리고 그것을 이어받을 선수를 배치하고 마지막 스퍼트할 사람을 결정한다. 그리고 자기의 구간을 달리기 위해 긴장을 하면서 바톤을 이어받을 위치에 가서 자기의 선수를 기다린다. 네 사람 다 잘 달려야 한다. 한사람만 잘 달린다고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다 잘 달린다고 하더라도 효과적으로 경기하기 위해 팀웍이 맞아야 한다. 릴레이 경기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며 각 선수는 자기가 맡은 부분을 잘 감당해야 한다. 또한 바톤을 잘 넘겨주고 잘 받아서 달려야 한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에까지 오는 것도 계주와 같은 경기였다. 모세는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 광야 생활을 인도한 야전사령관이었다. 그는 가나안 동편 모압까지 진군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입성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세의 구간은 거기까지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보여주시면서 너의 역할은 여기까지였음을 말하고 있다.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신34:4). 이제 바톤을 이어받을 자가 나온다. 그가 여호수아이다. 모세가 죽은 후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미션이 주어진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여호수아는 모세로부터 바톤을 이어받고 이제 열심히 달려야 하는 것이다. 모세는 요단동편을 점령했고 여호수아는 요단서편 가나안을 점령하게 될 것이다. 자기의 구간이 있다.

II. 인생은 미완성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죽었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였다. 신명기 34장 10절 이하에서는 모세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 하지만, 이 위대한 모세도 자기 구간이 있었다. 비록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애굽을 나왔고 가나안을 목표로 달려왔건만 그는 가나안을 바라보았을 뿐 그 속에서 즐길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모세로서는 얼마나 아쉬울 것인가? 자신의 생각과 기대, 그리고 계획에 따라서는 그의 인생은 미완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거기까지였다. 모세는 거기까지이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하고 바톤을 여호수아에게 넘겨 주었다. 그러면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을 점령하는 그 일을 완성했는가? 여호수아 역시 그러하지 못했다. 여호수아 13장 1절을 보라.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라고 하신다. 모세와 같이 여호수아도 결국 나이 들었고 여전히 점령해야 할 땅은 많았다. 인생은 미완성인 것이다. 그러면 여호수아 이후에는 누가 그 미완성의 일을 계속해서 바톤을 이어받아 이루어가게 되는가? 사사들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결국 우리의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무슨 목표를 세워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한다. 우리는 Ziel을 정해서 그것을 점령하려고 한다. 우리의 가나안 땅이 있다. 하지만, 기억하라. 인생은 미완성이다. 우리는 노력하지만 그것을 완성하지 못한다. 어차피 인생은 미완성이기에 무엇인가를 완성하겠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완제품이 어디 있는가? 완제품은 없다. 만일 완제품이면 왜 신제품이 나오는가! 완성품이 있다면 왜 계속해서 신제품이 개발되는가? 그 말은 구제품에 어떠한 부족과 결함이 있는 불완전한 것이기에 그것을 극복하고 더 나은 것을 만든다는 것이다. 제품을 만들어내는 회사는 알고보면 현재 기술로 최상의 것을 지금 다 만들어 낼 수 있어도 기술을 조금씩 내어놓아 그것을 신제품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현혹한다고 한다. 즉, 기업은 언제나 미완성품을 만들어낸다. 미완성품을 만든다는 것은 그들의 상술이다.

미완성을 슬퍼하지 말라. 모세는 자신이 달려야할 구간을 알았다. 물론 가나안 땅을 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의 손자의 자식이 그곳에서 뛰어노는 것을 보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모세는 거기까지였다. 어차피 우리의 인생은 미완성이다.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면 완벽주의자가 되어버린다. 그때부터 인생은 피곤하게 된다. 그러므로 무엇을 목표로 삼아 자신을 괴롭게 말라. 목표를 위해 사는 것인지 목표가 나를 위해 있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를 않는다.
오히려 미완성의 인생을 즐기라. 즉, 내가 달려야 할 구간을 즐기라는 것이다.
미완성은 불만족의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움이고 소망과 기대이다. 그것을 너무 슬퍼하지 말라. 꽃도 다 핀 것보다 피려고 할 때가 이쁜 것이다. 봄에 피어나는 꽃 가운데 목련화를 슬퍼한다. 가장 그 목련을 즐길 때는 활짝 피어난 때가 아니라, 꽃을 터뜨리려고 할 때이다. 그리고 활짝 피게 되면 벌써 봄비로 처절하게 떨어질 꽃이 슬프다. 결혼하는 것보다 그 직전인 연애할 때가 더욱 낫지 않는가? 이전에 처음 아내와 만났을 때는 길을 가면서 몸이 살짝만 부딪혀도 얼른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고 그러다가 다시 붙고 싶어 가까워지고... 이렇게 붙었다 떨어졌다할 때가 짜릿하지 않는가! 지금은 매력이 다 없어져 버렸다. 요즘은 아내와 손잡고 가지도 않는다. 손을 잡고 팔짱을 낄려고 하면 괜히 객기처럼 여겨지고 오히려 웃기다. 시간이 더 지나 나이가 들면 영감은 뒷짐 지고 할마이는 뒤에서 걸어오고 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모습이 될른지 모른다. 우리가 아직 미완성일 때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고 거기에 의지가 있다. 완전하신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는가! 가득 차 있는 것은 넘칠 수 밖에 없지만, 아직 차이지 않은 것은 긴장이 있고 소망이 있다.


III. 인생은 미완성이고 어차피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바톤을 잘 받고 줄 줄 알아야 한다. 경기는 함께 하는 것이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로서는 미완성이지만 함께로서는 완성이다.
예)옛날에는 하늘에 달이 없고 원래 태양이 둘이 있었다고 한다. 24시간 내내 인간들이 너무 덥고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의견을 내어서 태양을 하나 쏘아 떨어뜨리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하나 택해 보내는데 아이를 업혀서 보냈다고 한다. 그들은 먼 여정을 떠난다. 마침내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 태양 하나가 시들해졌고 사람들은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달이란다. 어느 날 이 인간마을에 아주 나이든 노인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그 노인을 영접했는데 바로 70여년 전 그 활 쏘는 이의 등에 업혀갔던 아기였던 것이다. 태양을 달로 만든 것은 청년과 아기의 합작품이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등에 업고 가나안까지 간 것이다. 이전에 기저귀차고 개구쟁이처럼 뛰놀던 철없는 여호수아는 어느덧 이스라엘의 용사가 되어 있었고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는 자가 되었다. 모세는 애굽을 스타트로 해서 광야구간을 달린 선수라면 여호수아는 가나안땅 함락이라는 구간을 달리게 된 것이다. 400미터 릴레이 경기에서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순간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바톤을 잘 주고 받는 것이다.
모세는 어떻게 여호수아에게 바톤을 넘겨주는가? 신명기 34장 9절을 보라.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한 대로 여오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고 한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확실하게 밀어주고 있다. 자신은 썩은 낙옆과 같이 믿거름이 되어 이제 돋아날 새싹에게 영양분을 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미완성품을 넘겨주면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그에게 전수하고 있다. 모든 힘을 소진한 모세는 죽음으로 여호수아를 밀어준다.
이제 바톤을 받은 여호수아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구간을 달린다. 계주를 할 때 바톤을 이어받는 사람은 내내 앞을 보면서 자신의 트랙을 지켜본다. 받는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 전에 달리던 선수가 얼마나 달렸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과거를 보지 않는다. 모세가 죽은 것 같이 여호수아는 더 이상 죽은 모세를 보지 않는다. 모세는 이렇게 여호수아에게 바톤을 전해주었고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이렇게 바톤을 이어 받았다.

문제는 바통을 넘겨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 내가 다 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 400미터 계주를 어찌 나 혼자하려고 하는가? 혼자 달릴 수 없는 것이고 내가 완성할 수 없는 일이다. 함께 달리려고 해야 한다. 어떤 일은 내가 시작할 수 있고 어떤 일은 내가 진행시킬 수 있고 어떤 일은 내가 종결지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할 때 팀웍은 깨지고 일은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예)정부가 10년 이상 계획을 지금 1년 안에 다 하려고 한다고 하는 사설을 읽었다. 공감이 간다. 모든 그 프로그램이 수 조원, 혹은 수십 조원이 들어가는 큰 계획이다. 병역단축, 학제개편, 임대주택 340만호 건설, 임신에서 노후까지 복지 등 노무현대통령말기에 그 많은 프로젝트들을 다 내어 놓는 것이다. 어떤 것은 지금 시작할 것이 있고 어떤 것은 내가 진행시켜야 할 것이 있고 어떤 것은 내가 마무리해야 할 것이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내가 시작하고자 한다. 설익은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내어 놓으려고 하니 문제가 생긴다.
이전에 북방외교라고 해서 노태우대통령이 중국과 외교를 맺을 때도 여전히 설익은 시대였다. 대만은 자신들의 지하철 공사권을 주겠다고 했다. 나라의 큰 프로젝트들을 우리에게 주겠노라고 했다. 그러다가 옛친구를 버리고 혼자 잘 살수 있느냐고 하면서 우리를 비난했다. 대만에 있는 한국사람들이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일은 자연스럽게 바톤체인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내가 남의 구간에서 달리겠다고 하는데 문제가 된다.
고린도교회에서 사람들이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라고 주장하면서 분열이 되었을 때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말씀하신다. 바울과 아볼로 각각 역할이 다른 것이다.

우리가 일하는 것은 함께 해야 하는 것이고 비록 나의 구간이 미완성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연결시켜 완성하신다.
예)교회의 공간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금 계속 잘 진행 중에 있다. 이 시작을 6년 전에 했었다. 비젼센터처럼 우리가 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제직들이 교회의 공간을 빌리자고 한다. 그 중 어떤 제직이 이런 말을 한다. “목사님 빌릴 바에야 아예 10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좀 큰 공간을 빌리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한다. 그래서 알아보다가 또 어떤 제직이 이렇게 말한다. “빌릴 바에야 아예 사는 것이 어떻습니까? 여기서는 미테를 내는 돈으로 장기적으로 살 수 있는데...” 그래서 건물을 보았다. 교회건물은 가장 까다로운 조건을 가진 건물이다. 값이 싸야 한다. 공간홀이 나와야 한다. 교통이 좋아야 한다. 소리를 내도 되야 한다. 주차장이 있어야 한다. 정부에서 보조받을 수 있는 건물이어야 한다 등등... 당시에 이렇게 하자고 한 사람들은 다 가버렸다. 그리고 약 3년 전에 건물을 샀다. 건물주가 2만유로를 깍아준다고 한다. 그리고 월드컵을 앞에 두고 있지 2012년 올림픽후보지로 라이프지히가 독일에서 선정되었지 해서 무드가 한참 올랐었다. 그리고 이름도 노이에스타트 아닌가! 시에게 개발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지역이다. 그때 우리 제직들이 기도하면서 사기를 결정했다. 그런데 그렇게 결정하고 구입하고는 많이들 한국에 가버렸다. 무책임하게끔 일을 벌려 놓고 한국에 가버린 것이다. 일은 우리에게 떨어졌다. 그러니 지금 광부들처럼 석탄을 뒤집어쓰고 일을 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30년은 갚아나가야 하는데 이 일을 시작할 때 10년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때가면 교회식구들이 계속 있을지, 수년이 지나면 다들 한국가고 없을텐데 하면서 미래가 불분명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전면에서 일하시는 분은 최집사님이신데 돈을 완불하는 30년 후는 95세이다. 저는 75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알 것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구간을 달릴 뿐이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우리 교회를 30년 동안 책임질 필요가 없다. 지금 이 구간을 달릴 때 책임을 지면되는 것이다. 지금 집사님들이 일한다. 그러면 10년 후에는 누가 일하지? 그때에는 이철호씨가 일할 것이다. 박상균씨가 일할 것이다. 오미자자매가 함께 일할 것이다. 최경자씨가 일할 수 있다. 우리는 익명의 라이프찌히 교인을 기대하고 있다.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를 어찌 알 수 있을 것인가? 지금 것이나 잘하면 되지 내일 것을 신경쓰지 말라. 어차피 인생은 미완성이고 하나님께서는 계주를 경주시키고 계시니까... 우리는 우리의 토막을 잘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붙여주시고 하나님께서 계주를 시키실 것이다.

IV. 현재 맡겨져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
여호수아가 할 일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었다. 2절을 보라.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일어나 가는 것이 여호수아가 할 일이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구간을 열심히 달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전임자 모세를 위하는 것이고 이스라엘백성을 위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었다. 현재를 살라!!! 모세는 그의 시대를 살았다. 여호수아는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를 달리면 되는 것이었다. 과거도 중요하고 미래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타치할 수 있는 때는 바로 오늘이다. 오늘이라는 트랙을 잘 달리면 내일이라는 트랙에 우리의 바톤을 성공적으로 넘겨주게 될 것이다. 오늘이라는 토막을 갖다 붙이면 우리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오늘은 내일에게 바톤 터치를 잘 해 주어야 한다. 오늘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Present이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듯이 일어나라 그리고 가라!!!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내게 주어진 트랙을 최선을 다해 달려라.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오늘 주어진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은 선물이 되게 되어 있다. 오늘을 하나님의 약속의 선물로 만들라.
예) 지금 주어진 것에서 성공하라. 플라츠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우리 유학생들도 플라츠와의 싸움을 벌인다. 직장을 잡는 것도 플라츠이다. 극장에서 오케스트라에서 플라츠를 구한다. 그와 같이 목회자도 플라츠를 구한다(비밀스러운 이야기일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물론 아무 염려없고 어디든 예배드리고 교회를 시작하면 되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목회자도 플라츠를 필요로 한다. 당연히 좋은 플라츠를 원할 것이다. 물론 좋고 나쁘고는 또 다르게 정의할 문제이지만... 플라츠가 있으니 오라고 하는 교회나 학교나 기관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가 초대될 것인가? 바로 오늘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교회가 목회자들을 초청한다. 보통 청빙한다고 한다. 그런데 청빙이라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선정작업인 것 같다. 어찌됬거나 어떠한 사람을 선정하는가? 어떠한 목회자를 원하는가? 재미난 사실은 노는 목사를 뽑는 것이 아니다. 바쁜 목사를 뽑고 있다. 미국 L.A.에는 노는(?)목사님들이 천명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다 사정이 있고 계획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시간이 있고 지금 여유가 있다고 초청되지는 않는다. 초청되는 사람은 지금있는데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지금 있는 플라츠에서 성실히 일하라. 최선을 다하라. 일어나 가라. 약속을 의지하고 달려라. 하나님이 스카웃하실 것이다. 당신의 계주팀에 넣으실 것이다.

우리는 릴레이를 뛰는 선수와 같이 한 트랙만을 뛰는 미완성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의 계획으로는 미완성이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기로 작정한 그만큼이 완성이라면 우리는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더불어 함께 일하신다. 일할 사람을 붙여주신다. 모세를 한 시대에 주셨던 것처럼 이제 여호수아를 주신다. 주님의 릴레이팀이 되어 주님의 일을 이루라.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네 너는 이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내가 네 개 주는 땅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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