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 및 번역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학교로 만들겠습니다."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설립이사장 尹海水동문(72.전기.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학박사)의 포부이다.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는 지난 98년 학교법인 해광학원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2003년 3월 2년제 통역 · 번역전문대학원으로 개교했다. 그만큼 설립과 개교에 따른 어려움이 많았다. 개교 당시 한영통역번역학과 · 한일통역번역학과 · 한중통역번역학과 등 석사과정 3개학과 정원 50명으로 출발하여 현재는 모집정원 77명으로 늘어났다. 전임 12명을 비롯한 원어민 강사 등 40여의 교수진을 갖추고 있으며 강의는 원어와 한국어를 병행하고 있다. 2005년 1기 졸업생 32명 배출을 시작으로 지난해 2기생을 배출했다. 졸업생들은 대부분 관공서 · 언론사 · 기업체의 통역 · 번역사로, 또는 통역 프리랜서로 취업해 취업률 100%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지 모르지만 입학 경쟁률은 5대 1이 넘는다. 대부분의 대학원이 정원 채우기에 급급한 현실이고 보면 대단한 경쟁률이자 특화된 대학원임을 알 수 있다.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는 작지만 경쟁력 강한 대학, 소수 정예의 국제적 전문인재양성을 지향한다."는 尹이사장은 급격한 국제화, 정보화 사회에 외국어 전문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인식, 통역 · 번역 분야를 전문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단다.
"외국어로 특화된 제2의 카이스트, 포항공대로 성장 · 발전시키는 것이 꿈"이라는 尹이사장은 통역 · 번역 분야는 미개척분야이며 시장수요가 급증하는 있는 만큼, 향후 한러 · 한베트남학과 등 3개학과 신설 및 박사과정 개설, 외국어 중 통역 특화 학과의 학부 신설도 계획하고 있다며 경쟁력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학교로 키워나가겠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낸다.
"20대 때 꿈이었던 학교 설립의 뜻을 이루게 되어 보람을 느낀다."는 尹이사장의 이력은 참으로 다양하다. 공장 근로자, 외국 유학, 국회의원 출마, 공대 출신으로 정치학 교수, 학교 설립 등등...
尹이사장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정상적으로 공부만 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 것이 아니라 수 많은 경험과 어려움을 겪은 후에 정치학교수가 된 입지적인 인물이다. 17세 때 현대자동차 용접공으로 입사해 공장 근로자로 일하면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학창시절에는 공대 학생회장으로도 활동했으며, 대학교 2학년 때인 20대에 경산에서 IT대학 설립을 시도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포기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지난 81년, 약관 29세의 나이로 포항지역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2만여표를 획득하는 돌풍을 일으켰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84년에는 부인과 함께 단 돈 2백만원을 들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맞벌이로 유학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갓 돌 지난 첫째 아기는 미국에 데려가지도 못하고 노모에게 맡긴 채.
미국으로 유학간 尹이사장은 학부의 전공을 바꾸어 인디아나주립대에서 정치학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것도 학교 개교 이후 최단기인 11개월만에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코네티컷주립대에서 3년만에 정치학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콜럼비아대에서 1년간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미국 유학중에는 MBC 뉴욕특파원실 취재 보조로 활동하면서 인터뷰 등 각종 취재에 통역과 번역을 맡아 학비를 마련했고, 부인은 한인회에서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마련했다는 尹이사장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인 고르바초프의 미국 첫 방문시 취재에 동행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단다.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尹이사장은 90년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정치학박사출신 동문 중 서울 소재 대학교 교수로 부임하게 된 것은 尹이사장이 처음이다. 지방대 출신이 서울에서 정치학 교수를 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실력과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간사위원으로, 정책기획위원회 정책행정위원으로 활동했다. 96년 제15대 총선에서는 44세의 나이로 집권당인 신한국당 소속으로 포항 북구에 출마했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20대 후반과 40대에 국회의원에 출마한 이력 때문인지 지금도 선거철이 되면 주변에서 정치 권유가 많다는 尹이사장은 "정치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상태로,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기회가 주어지면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싶다는 솔직한 심정을 내비친다.
1952년 경북 영일출신인 尹이사장은 부인 서명임씨도 모교 기악과(75학번) 출신인 동문부부로 지난 82년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녀 인향씨는 숙명여고를 졸업, 국내 일반계고 출신으로는 최초로 미국 웨슬리대에 입학해 6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장남 영돈씨는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미국 카네기멜론대에 입학해 3년만인 12월 조기졸업을 앞두고 있다.
〈申在七 편집부장, jclucky@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