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역사 교육 - 임진왜란
한국사 교육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기인데,
임진왜란이 심하다.
북한은 아예 임진조국전쟁이라하여 러시아 역사 용어를 표절하고 있다.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조국 전쟁이라 하고
히틀러의 소련 침공을 ‘대 조국 전쟁’이라 한다.
인진왜란에서 알아야 할 것은 이순신 장군의 활약 이외에 당시 민심의 동향이다.
다른 나라에 쳐들어갈 때 그 나라 지배층이 아닌
일반 주민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매우 중요하다.
주민이 수탈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해방군을 자처하면 환영 받는다.
일본은 삼포에 거주하는 일본 상인을 통해
조선 백성이 세상이 망하기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리하여 상륙하자
해방군을 자처하여 호응을 얻었다.
사기 역사 교육으로
온 백성이 의병 활동에 나서고
일본에 저항한 줄 안다.
일본 점령 지역 주민은
이조가 부과하던 지나친 세금을 내지 않게 되어
살기 좋아졌다.
일본이 노량해전 이후 철군할 때 많은 조선 주민이
따라갔다.
북한 주민이 미군이 흥남 철수할 때 따라온 것처럼.
왜냐하면 이조 지배층의 처벌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부역했다고 노비가 될 것이었다.
실제로 사명당이 일본에서 포로로 끌려간
조선 백성을 데려오니(일본에 남기로 선택한 백성이 더 많았고 향수에 젖은 소수가 귀국을 선택했다.)
이조는 남자는 노비로 삼고
여자는 나누어 가졌다.
완전 노예시장의 한 판 벌어진 것이다.
이조가 얼마나 끔찍했는지는
포로 가운데 왕족이 있었는데,
그가 일본에 남기로 선택한 것에서
입증이 된다.
왕족 대우는 왕의 5대손까지이다.
왕의 아들은 군 또는 대군이 되는데 그 자식은,
그러니까 왕의 손자는 대개 正(정)이 된다.
지명을 앞에 붙이는데
세종 이도의 17남인 이장은
경상도 지명 영해를 따서 영해군이라 했다.
영해군의 둘째 아들 李義(이의)는
지명 길안을 따서 길안정 吉安正이라 했다.
길안정 이의는 아들이 이종숙인데
그의 칭호가 벽계수이다.
君(군) – 正(정) – 守(수) – 令(영) – 監(감)이다.
이후에는 더 이상 종친부에 오르지 않고
녹봉도 없고 과거 시험쳐서 먹고 살아야 한다.
노력하면 성취가 가능한 일본 사회를 보고
포로가 되어 끌려간 왕족마저도
일본에 귀화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한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일본 상인은 이른바 삼포라고 하여
조선에 집단으로 거주했는데
왜 조선 상인은 일본에 거주하지 않았는가?
조선 일본 관계는 대등관계로
상호주의 원칙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이조가 요구했으면 가능했다.
왜 이조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는가?
한 마디로 말해 도둑이 제발 저려서이다.
이조 지배층은 조선 상인이 일본에 거류하면
일본에 붙어 주요 정보를 알려주고
일본이 침략하면 길잡이가 될까 두려워했다.
일본 조정은 이런 걱정을 하지 않는데
왜 이조는
자기네 백성을 잠정적인 간첩으로 보았을까?
그저 백성을 수탈하고 학대만 해서이다.
백성의 원성을 뻔히 알았지만
그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수탈을 그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도 국민의 원성,
불만을 잘 알지만 무시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일본에 조선 상인이 거주하면
일본에 붙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임진왜란에서 전투만 기억하지 말고
당시의 민심을 알아야 한다.
(이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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