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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그림 이야기.

우키요에와 인상파, 그리고 한국 VI - 그림의 주제를 해체한 마네 (박정자)

작성자지킴이|작성시간19.07.10|조회수632 목록 댓글 1

우키요에와 인상파, 그리고 한국 VI
- 그림의 주제를 해체한 마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
나라의 체제가 마구 흔들리는 이 시대에 웬 미술 이야기?
그러나 이건 먼 지평선을 바라보는, (거창하게 얘기하면) 대중 교육의 차원.
반일이 좌파 이데올로기이고,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일 때,
일본에 대한 무지를 일깨우는 것은 가장 강력한 우파 전략이므로.]

금빛 일본 병풍과 사무라이 그림으로 배경을 채운 ‘에밀 졸라의 초상’(Portrait d'Emil Zola, 1868)은 마네가 일본미술의 영향을 얼마나 강하게 받았는지를 짐작케 한다. '뱃놀이’ 또는 ‘아르장퇴이유'의 코발트빛 강물도 히로시게의 그림들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강물을 주제로 삼았다는 것 자체가 우키요에의 영향이다 '명소 에도 백경’(名所江戶百景)에는 거의 빠짐없이 파란 강물 혹은 바닷물이 나온다.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눈앞의 사물을 크게 그리고 핵심 주제를 작게 그리는 히로시게의 다이내믹한 구도가 마네에게 끼친 영향이다.

예컨대 히로시게의 그림 ‘하네다의 나룻배와 변천사’(はねだのわだし辯天の社)에서 중심 주제는 하네다의 바다와 멀리 보이는 신사(神社)인데, 노 젓는 사공의 팔과 다리가 크게 전경(前景)을 차지하고 있다.
'스루가 전망대에서 바라본 수도교'(水道橋駿河臺)도 주제는 수도교인데, 주제인 다리는 배경으로 작게 처리되고, 고이노보리 명절의 종이잉어가 마치 그림의 주제인양 전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히로시게 특유의 기법이다.
강과 산의 풍경을 그리면서 화가의 바로 옆에 있는 벗 꽃 나무를 마치 그림을 가리는 휘장인 양, 화면의 오른쪽과 위쪽에 크게 배치한다든가, 아사쿠사(淺草)의 절을 그리면서 화가의 바로 옆에 걸린 둥근 종이등을 화면 위쪽에 크게 그린다든가 요쓰야(四つ谷)거리의 여관을 그리면서 여관 앞을 지나고 있는 말들의 다리와 발굽을 크게 강조해 그린다든가 하는 식이다.

우리는 야외에서 가족이나 친구의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 앞에 일체의 방해물이 없는 탁 트인 공간에 서서, 만약 앞에 행인이 있으면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찍는다. 아주 사적이고 하찮은 최소한의 재현 행위에서조차 우리는 대상의 순수성을 엄격하게 고수한다.

화가도 마찬가지다. 인물화 또는 풍경화를 그릴 때 화가의 눈앞에 시야를 가리고 있는 나무나 동물이나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치우고 그린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작품을 정의한, 폐쇄성, 완결성, 독자성이다.
르네상스 이래 19세기 사실주의에 이르기까지 서양회화는 언제나 하나의 완결된 세계였다. 중심적 주제가 한 가운데에 있고, 그 주위로 중심 주제를 떠받쳐주는 배경들이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액자 안의 화면은 하나의 완결되고 독립적인 세계로 화면 밖의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그런데 히로시게는 마치 렌즈를 가리는 물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셔터를 누르는 서투른 사진사 같다. 그의 그림은, 관광지에서 배를 타고 앞의 경치를 찍었는데 사진 한 귀퉁이에 노 젓는 뱃사공의 팔뚝이 크게 찍혀 있는, 그런 사진 같다.

피터 그린어웨이의 영화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에서 대저택의 건물과 경치를 12장 그리기로 계약을 맺은 17세기의 떠돌이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대상물 앞에 아무런 장애물도 나타나지 않게 하라는 것을 계약 조건중의 하나로 제시한다. 이것이 서양 회화의 전통이었다. 그런데 화가가 저택 앞에 걸린 흰 빨래를 그대로 그림에 그려 넣었을 때, 그것은 벌써 전통회화의 견고한 규범이 미세하게 와해되고 있다는 조짐이었다.

피터 그린어웨이의 빨래그림처럼 히로시게는 그 방해물을 의식적으로 그림의 전면에 가장 크게 그려 넣었다. 이것은 어쩌면 ‘흔들리는 세상’의 그림이라는 우키요에의 말뜻과 가장 잘 어울리는 기법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덧없고 허무한, 그러나 동시에 황홀한 이 세상의 사물에 대한 감각을 순간적으로 포착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네다의 나룻배와 변천사‘에서 아예 사공의 몸 전체를 프레임 안에 넣어 그렸다면 그림은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풍속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액자의 경계선에서 난폭하게 절단된 대상을 부분만 보여줄 때 거기서 고도의 미학적 감흥이 발생한다.

그림의 주제를 가리는 장애물을 화면의 전경에 배치하는 것, 또는 그림의 주제를 화면 중심에 놓지 않고 프레임에서 절단하는 것, 이런 우키요에의 기법에 마네는 매료되었다.
마네는 이것을 2층 발코니 난간에서 흔들거리는 다리가 프레임의 윗부분에서 잘려 있거나, 여가수의 팔과 드레스만 화면의 왼쪽 위 부분에 조금 보이게 하는 식으로 ‘오페라 극장의 가면무도회’와 ‘맥주홀의 여급’에서 자기 나름으로 인용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2335950696496714&id=100002454183645



우키요에와 인상파, 그리고 한국 VII
- 원근법의 붕괴

흔히 서양 회화라면 화려한 색채를 연상한다. 그러나 그건 인상파 그림만을 서양회화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상파 이전까지의 서양 전통 회화는 거의가 짙고 어두운 색깔로 두텁게 칠해져 있었다. 벨라스케즈의 유명한 그림 '시녀들'을 보고 “아니 그림이 왜 이렇게 어둡냐?”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19세기 유럽의 화가들이 놀라운 눈빛으로 우키요에를 본 것은 우선 그 화려한 색깔 때문이었다. 히로시게의 그림에서 강물은 코발트를 풀어놓은 듯 투명한 푸른색이고 물위의 정자(亭子)는 순수한 빨간색이다. 이때까지 어두컴컴한 화면에만 익숙해 있던 유럽의 화가들은 전통 회화 속 세계와는 달리 실제 세상은 달콤하고 화사한 색채로 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야외로 나가 빛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사물의 느낌과 색깔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반 고흐의 화사한 색깔,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따라 다채롭게 변하는 모네의 수련 그림들이 모두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세잔이 생트 빅투아르 산에 매일 나가 관찰하면서 수 십 점의 산 그림을 남긴 것도 호쿠사이의 후지산 그림 창작 과정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화려한 색채보다 더 강렬한 충격은 우키요에의 평면성이었다. 단순 명료한 선 몇 개로 인체의 움직임을 소박하게 표현하는 우키요에의 순진한 단순성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들은 평면성을 추구하였다. 평면성의 추구란 원근법의 부정을 의미한다. 물론 인상파 화가들이 즉각 원근법을 버리고 완전한 평면성을 채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원근법을 부정하는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원근법은 르네상스 이래 19세기까지 4백년 간 서양 회화를 지배했던 회화의 관습이었다.

그럼 평면성은 무엇이고, 원근법은 또 무엇인가?
미켈란젤로의 ‘아테네 학당’ 앞에서 우리는 대리석 계단을 올라 저 멀리 푸른 하늘과 구름이 보이는 건물 뒷문으로 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 앞에서는 마치 우리도 광활한 초원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캔버스는 어디까지나 2차원의 평평한 평면일 뿐인데 어떻게 이런 3차원의 세계가 펼쳐질 수 있는가? 우리 눈을 속이는 트릭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런 그림을 환영(幻影)주의(illusionism)라고 부른다. 2차원의 평면을 마치 3차원인 양 만들어 주는, 즉 환상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기법이라는 뜻이다.

이 환영주의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원근법이다. 그 방법은, 화면을 대각선으로 분할하여 전경은 크게 후경은 작게 그린다든가, 빛과 그림자를 설정하여 음영(陰影)을 만든다든가, 색깔을 차례로 서서히 짙거나 연하게 칠하는 그라데이션 기법을 쓴다든가, 만일 인체의 한 부분이라면 높은 쪽은 엷은 색, 낮은 쪽은 짙은 색으로 처리하여 볼륨감을 준다든가, 누워있는 사람을 그릴 때는 얼굴은 크게, 몸은 짧게 하여 우리가 마치 그 인물의 발끝에서 얼굴을 바라보는 듯이 그린다든가, 등등의 방식이다.

이처럼 화면을 X선으로 분할하는 방식을 선(線)원근법이라 하고, 산과 하늘을 그릴 때 가까운 부분은 짙은 색깔, 먼 부분은 엷은 색깔로 칠하는 것을 대기(大氣)원근법이라 하며, 인체나 사물을 수축된 듯이 그려 특정의 자세를 묘사하는 것을 단축 원근법이라 한다. 이렇게 원근법을 사용한 그림은 화면 전체가 마치 캔버스 속으로 쑥 들어간 듯한 깊이가 있고, 인물과 사물은 볼륨감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의 실제 세계를 방불케 한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이런 원근법의 방식을, 마치 캔버스에 공동(空洞)을 뚫기라도 하는 듯한 기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엄연히 2차원의 평면인데 거기에 굳이 3차원의 가짜 세계를 만들 필요가 있는가? 그냥 정직하게 2차원의 평면을 드러내는 것이 미술의 목적에 더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 19세기 화가들은 이런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고, 여기에 답을 준 것이 바로 우키요에였다. 온갖 광학 이론과 빛의 효과에 강박적으로 매달려 왔던 당대 서구의 젊은 화가들은 일본 그림의 명료하고 섬세한 예술에 놀라움과 매혹을 느꼈다. 그들은 겸손하게 동양의 미술을 배웠고, 새로운 그림의 문법을 찾아냈으니, 그것이 바로 평면성이었다.

평면성이란 그러니까 입체의 그림을 만들려는 기교를 쓰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원근법의 관습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에 짙고 옅은 농담(濃淡)의 색채를 쓰지 않아 빛과 그림자의 음영을 주지 않고, 대상을 인위적으로 크고 작게 그리지 않으면 입체감, 볼륨감, 깊이, 원근감은 다 사라질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순수한 색채를 쓰는 것이다. 이때 ‘순수한’이란 도덕적 의미가 아니라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한 가지 색깔을 고르게 칠한다’라는 뜻이다. 불어로는 aplat, 영어로는 color field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이 순수한 색채를 우키요에에서 발견했다.

선 원근법에서 대각선이 마주치는 지점을 소실점이라고 한다. 양쪽 가로수가 저 멀리 한 점에서 만나는 지점이 바로 소실점이다. 그러나 이 중심은 임의적으로 설정된 허구적인 초점이다. 대상의 자리가 고정되어 있고, 화가의 자리도 고정되어 있으며, 화가의 시점도 고정되어 있다. 조화와 비례가 완벽하여 겉보기에 견고하기 그지없는 원근법의 세계는, 그러나 주체와 대상의 자리가 조금만 바뀌어도 단숨에 흐트러지고 만다.

사유도 마찬가지다. 모든 철학적 인식, 학문적 이론도 마찬가지다. 인류 역사상 미술과 사유는 언제나 나란히 갔다. 대상 세계를 해석하고 판단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는 결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고, 한없이 불안한 허구적 존재이다. 주체가 조금만 자리를 바꿔도, 대상이 조금만 위치가 바뀌어도 그리고 주체의 시점이 조금만 흔들려도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온다. 세계사적 인식의 전환에 이처럼 일본 문화가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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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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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루 | 작성시간 19.07.10 그림 감상 잘했습니다
    이런 여유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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