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오스가 가르쳐 준 삶의 지혜
- 빨리빨리와 천천히 천천히 (짜이옌옌)
우리 한국 사람들은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하다. 무엇이든 신속하게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고, 속도가 곧 능력과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행기로 몇 시간 떨어진 이곳 라오스에 발을 디디면, 전혀 다른 속도의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느림의 미학이 살아 숨 쉬는 이곳의 시간은 한국보다 훨씬 여유롭게 흐른다. 관공서나 은행 업무는 물론이고 식당이나 마트에서도 사람들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처음 라오스를 찾은 한국인들은 종종 원인 모를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철저한 시간 관리와 효율성을 미덕으로 삼아온 우리에게, 이들의 느긋함은 낯설다 못해 때로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조바심이 나고, 기다림 자체가 힘겨운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계절을 보내고, 세월을 살아가다 보면 조금씩 깨닫게 된다. 이들이 결코 게으른 것이 아니라는 소중한 사실을 말이다.
라오스 사람들은 오랜 세월 뜨거운 기후와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오며 자신들만의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 이른 아침 시원한 공기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볕이 가장 뜨거운 낮 시간엔 잠시 멈추어 쉬어갈 줄 안다. 철저히 자연의 리듬에 호흡을 맞추며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라오스 사람들은 효율성보다는 관계를, 경쟁보다는 조화를, 성과보다는 마음의 평안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그들의 삶에는 늘 '짜이옌옌(Jai Yen Yen)'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 직역하면 "마음을 시원하게 하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화를 내지 말고 여유를 가지라"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만약 이 뜨거운 기후와 환경 속에서 한국식 속도전만을 고집했다간, 이내 몸과 마음이 먼저 지쳐 부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라오스에 와서 한국의 기준만으로 이들의 삶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일 뿐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옛말처럼, 라오스에 왔다면 라오스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의 호흡에 우리의 걸음을 맞춰볼 필요가 있다.
라오스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자주 말한다.
"보펜냥(Bor Pen Nyang)."
"괜찮습니다." "문제없습니다."
물론 모든 일을 대충 넘기자는 방종의 말이 아니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조차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으려는 삶의 지혜가 담긴 응원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야말로 이러한 여유가 진정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이곳 라오스에서 마주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도로와 건물, 경제 발전의 현장만이 아니다. 우리는 그 이면에서 천천히 걷는 법을 배우고, 사람을 기다리는 품을 배우며, 영혼의 여유를 채워간다. '빨리빨리'라는 마음의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라오스의 느림을 품어 안을 때, 비로소 새로운 평안이 찾아온다.
이제는 은행 창구 앞에서도, 식당에서 음식이 조금 늦게 나와도, 약속 시간이 더디 흘러도 예전처럼 마음이 조급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라오스가 나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께서 '라오스'라는 이름의 학교를 통해 나를 조금씩 다듬고 빚어오셨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반드시 빨라야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때로는 천천히 걸을 때에야 비로소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이 보이고, 곁에 서 있는 이웃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며, 내 영혼의 깊은 울림을 들을 수 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 라오스라는 거울을 통해, 늘 서두르기만 하던 내게 나지막이 말씀하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잠잠히 기다리며 나를 신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