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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소를 모르기 때문에/양안다

작성자김정훈|작성시간21.06.23|조회수304 목록 댓글 0

친구, 나는 지금도 병실입니다

여름이면 여전히 온몸이 서늘하고 방 안 가득 그림자가

쏟아집니다

머리속엔 온통 영상뿐입니다 최근에는 쪽가의로 의사의

목을 찌른 뒤

트렁크에 쇠붙이를 잔뜩 싣고 떠나는----

책은 종종 읽고 있습니다 제목에 천국이나 지옥이 있

다면

언제나 사랑과 죽음의 서사가 적혀 있습니다

저녁이면 천장에 햇빛이 일렁이더군요 친구, 너와 함께

물속에 잠겨 있던 계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표정은 모두 똑같더구나---- 그 음성이 귓가에서

찰랑거리는 겁니다

어제는 퇴원을 권유받았지만 친구, 나는 앞으로도 병실

에서 지낼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옆방 환자는 고함을 지를 예정이지요

울며

짖으며 

미치지 않았다---- 사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곳은 밤이고

친구, 이런 밤이면

너와 영화 한 편을 감상해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과수

원에서 죽어 가는 두 인물, 주위에는 피보다 붉은 사과가 사

방으로 매달려 있다 그 사이에 누워 서로의 유언을 받아

적는다

누군가가 나를 간호하듯이

창밖으로 앙상한 개를 바라보는 것이 취미입니다

선명한 갈비뼈를 바라보고 있자면

머릿속에 기타가 떠오르고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이런 영상이 지속되는데도

이곳에선 누구도 내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친구,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답장이 아니라 쇠붙이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도 이해하려 들지 않으면서

약 기운이 발끝까지 맴도는 걸 느끼고 나면

나는 물속을 허우적거릴 뿐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들이 날 바라보는 표정은 모두

똑같다고----

 

창밖의 개는 오늘도 졸기 시작하고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는데

저 개는 나의 유일한 영화, 언젠가 기타가 되어 누울 것

입니다 나의 머릿속에서

음악이 흐르고

살인도 없이 내내 잠에 빠질 것입니다

사랑도 없이 이별을 준비하며

누군가가 이 세계에서 나를 제외시켰다는 영상이 시작

됩니다, 남자는 서재를 서성인다 검지로 책을 훑어 가다가 무

심코 한 권을 뽑아 든다 그 순간 환자는 온몸이 서늘해진다

그림자가 드리우고 기타 선율이 들린다 남자는 책을 펼친다

천국이나 지옥, 환자는 눈을 감는다

친구, 바짵에선 다들 내가 죽었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퇴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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