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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보내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 - 고선경

작성자이랑 최범석|작성시간26.06.16|조회수18 목록 댓글 0

 

 답장을 보내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 
                                                           고선경


 나는 슬픔에게 청혼하는 것 같아 금방이라도 장대비 쏟아 낼 듯 새카만 구름 보면 중학교 때 화장실에서 빨던 대걸레 냄새가 떠올라  엄마는 화장품을 팔았고 가게에 든 도둑을 잡고 보니 내 친구였던 일은 아마 잊지 못할 것 같아 그맘 때 부끄러움은 깨진 유리창처럼 반짝이면서 살갗까지 아프게 하는 것 같아 비 내리는 오전의 꽃집은 왜 이렇게 환한지 모든 추운 별들이 파르르 몸을 떨고 있는 것 같아 등꾯길 덜 마른 머리카락을 얼리던 한겨울은 영영 가버린 것 같아 치맛단을 줄일지 말지 고민하던 봄방학이 서른살에 도착한 것같아 세계는 텅 빈 교실 같아 질 나쁜 동급생이 집에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활활 타오르던 무렵 다 자란 척해도 다정한 선생님 앞에만 서면 눈물이 날 것같아 엄마가 가게를 비운 사이에도 팔리지 않는 화장품 틈바구니에서 나는 그냥 친구랑 놀고 싶었던 것 같아 시내에서 막상 친구를 만나면 때 탄 동전 지갑처럼 헐렁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 화병에 꽃아두고 싶은 건 튤립이나 히아신스가 아니라 그저 그런 이 하루인 것 같아 슬픔은 운동장 골대의 찢어진 그물이 아니고 그물을 찢은 공의 기나긴 하품 같아 꽃 한 다발 사서 집에 돌아왔을 뿐인데 졸린 눈 느리게 깜빡일 때 세탁기에서 경쾌한 멜로디가 흘러나올 것 같아 어젯밤 누군가 잘못 보낸 문자 메시지에는 '사랑해'가 적혀 있었고 이 시는 중학생 때 좋아한 선배의 결혼 소식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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