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우리나라
이기철
제비꽃 피는 걸 본 뒤로는
누더기 같은 내 나라가 좋아졌어
겨울 이긴 풀잎들에 초록물이 드는 걸 본 뒤로는
나는 제비꽃에 편애를 가진 셈이야
진홍들이 불쑥불쑥 맨몸뚱이로 뛰어나오는 봄 날
깨진 단추처럼 숨어서 피는 제비꽃
생각해 봐, 내가 저를 불러주지 않으면 저 제비꽃은, 제비꽃에 날아오는 노랑나비는
어찌해, 듣기 전에 울컥 가슴이 미어지는 사투리는 어찌해
제비꽃이라 불리는 저 이름은 어찌해
삶은 몽상이 아니야
출렁이는 거야 파도처럼 갈아엎는 거야 욱신거리는 거야
나무들이 일년 치의 잎사귀를 모두 떨어뜨리고도 굳건히 겨울을 건너온 걸 봐
황소들은 삭풍을 이기고 개미들과 말벌들도 오래 견디며
제비꽃에 입 맞추려고 뛰어나오고 있어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도마뱀이 저리도 맑은 눈을 뜨고 하늘을 쳐다보겠어
도마뱀의 빠른 발을 봐, 아니 다람쥐의 가벼운 몸은
종이가 나무를 삼킨 사무실과 교실에 앉아
푸른 나무가 재로 변한 온돌방에 앉아
이런 이야기를 시로 써서도 안돼
밭이 초록 옷 갈아입고 일어서는 걸 봐
나비가 설화 속 계집아이처럼 날아 나오는 걸 봐
민들레가 차가운 돌멩이를 들어올리는 걸 봐
제비꽃이 피는 걸 본 뒤로는
나는 내 나라가 좋아졌어
나는 오래 이 돌멩이 위에 앉아
제비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겠어
누더기 같은 내 나라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겠어
내생이 있는 줄도 모르고 피어나는
제비꽃을 본 뒤
(서정시학 2007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