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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역사공부 좀 합시다.

작성자정우|작성시간26.06.05|조회수0 목록 댓글 0

서기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압록강을 건넌 청나라 군은 임진왜란때와는 달리

불과 5만여명의 군사로 변변한 저항 한번 받지 않고 진격했고

불과 6일만에 인조는 남한산성에 갇혀 꼼짝을 못하다가

결국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당시 건국초기인 청나라는  만주를 벗어나지 못했고

인구도 2~3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반면 조선은  인구 1,000만여명에 10만의 군사가 있었지만

제대로 전투 한번 치르지 못하고 굴복을 했다.

 

왜 그랫을까?

 

역사학자들은 '이괄의 난' 여파를  꼽는다.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의 공신인 도원수 이괄이

북방 주력군을 이끌고  반란을 꾀했지만  결국 진압되었다.

 

그때 인조와 집권세력은  이괄과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장수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오히려 반란을 진압한 장군들까지 한직으로 내몰았다.

 

반란의 싹을 자른다며 훈련조차도 못하게 감시했다.

 

정묘호란때 평안도 안주에서 남이흥장군이

후금( 훗날 청나라) 군대와 맞섰지만 중과부적으로 패했다.

 

그때 그가 "내가 지휘관이 돼 진 치는 훈련 한번 못하고 죽는 것이 애통하다" 는

유언을 남기고 자폭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9년뒤 병자호란이 터졌고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이다.

 

계엄가담으로 수사의뢰한 공무원이 110명인데

그중에 군인이 108명이란다.

 

징계 받거나 파면당한 군인들은 모든 것을 다 잃는다.

명예도 잃고 연금도 잃고 평생 '내란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한다

 

물론 불법계엄에 가담한 사람은 처벌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 계엄은 윤석렬과 김용현 국방장관등

극소수가 주도한 것이고 나머지 군인들은 무슨 명련인줄도 모르고

계엄버스에 올라 탄 사람들이다.

 

유능한 군인이 정치적 이유로

줄줄이 화를 입는다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훈련 한번 안한 군대가 나라를 지켰다는

역사적 기록은 본적이 없다.

 

지나간 역사에서 병자호란의 치욕도

'내란 누명' 군(軍) 숙청이 불러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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