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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진정으로 잘 사는 길: 어느 실존적 물음에 대한 응답

작성자원목사|작성시간26.01.06|조회수25 목록 댓글 0

2026. 1. 4 주일칼럼

 

[칼럼] 진정으로 잘 사는 길: 어느 실존적 물음에 대한 응답

 

대학 시절, 철학 수업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앞뒤 재지 않고 손을 들어 교수님께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교수님, 자식을 낳을 권리가 과연 부모에게 있을까요?”

강의실엔 잠시 정적이 흘렀고, 어떤 친구들은 “뭐 저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나” 싶어 낄낄거리며 웃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 달변이시던 교수님은 그날 대답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아니, 어쩌면 안 하신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질문이 품고 있는 무게가, 단순히 논리나 지식으로 답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분은 직감하셨던 모양입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저는 다시 그 질문 앞에 서 봅니다.

이제는 자식을 키워본 부모의 입장에서, 그리고 한 사람의 남편이자 누군가의 이웃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리고 여전히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정말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

 

결혼해서 살다 보면 영화 속 달콤한 로맨스는 금세 휘발됩니다.

남는 건 ‘있는 꼴 없는 꼴’ 다 보며 쌓여가는 애증의 세월이죠.

사랑하면 헤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건 윤리적인 당위 이전에, 내 삶의 뿌리가 상대방과 뒤엉켜버린 실존의 문제입니다.

꼴 보기 싫다가도 아프면 마음이 저리고, 지긋지긋하다가도 없으면 내 존재의 절반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그 끈끈하고 투박한 감정, 그것이 진짜 삶의 얼굴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잘 사는 것’을 성공이나 안락함에서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뜻밖의 답을 내놓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이 구절은 단순히 참을 인(忍) 자 세 번 쓰며 억지로 버티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들이, 서로의 상처와 모순을 껴안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거룩한 고집’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대학 시절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부모에게 자식을 낳을 권리가 있는가?

냉정히 말해, 고통이 가득한 이 세상에 생명을 초대하는 것은 부모의 오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태어난 생명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하고도 위대한 답은,

그 아이가 한 인간으로서 겪을 모든 풍파를 함께 겪으며 “네가 어떤 모습이든 나는 끝까지 네 곁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잘 사는 길은 어쩌면 화려한 곳에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선택했다면,

그 사랑이 ‘애증’으로 변하는 순간조차도 도망가지 않는 것.

상대방의 허물을 내 허물로 받아들이며 삶이라는 긴 터널을 함께 걷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실존적 결단입니다.

 

특히 병상에서 고통받는 환우들이나, 그 곁을 지키며 진이 다 빠져버린 가족들에게 ‘잘 사는 길’은 너무나 가혹한 숙제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는가” 묻고 싶을 때, 우리는 다시 ‘오래 참음’이라는 진리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 그 고통조차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오늘 하루를 견뎌내는 것. 그것이 바로 승리하는 삶입니다.

 

라라랜드 같은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진흙탕 같은 삶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습니다.

헤어지면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끝까지 곁에 있어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의 완성입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여전히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우리가 서로를 향해 ‘오래 참는’ 그 시간 속에 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윤리적인 의무감을 넘어, 내 존재의 뿌리를 상대방에게 내어주는 그 치열한 사랑 말입니다.

 

오늘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한번 슬쩍 잡아보십시오.

있는 꼴 없는 꼴 다 본 그 손이, 사실은 나를 지금까지 버티게 해준 생명줄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잘 사는 길에 들어선 것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여전히 힘들고 아프지만, 성경이 말하는 그 진리,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딘다는 그 말씀을 등불 삼아 오늘도 묵묵히 걸어가 보려 합니다.

 

 

푸른숲참기쁨교회 원응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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