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믿음의 근육
근육은 신기하다.
젊을 때는 그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한다.
계단을 오르는 것도 당연하고, 무거운 짐을 드는 것도 대수롭지 않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달라진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들이 점점 버거워진다.
그래서 의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근육을 키우십시오.“
근육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힘이 아니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힘이고, 아플 때 회복하는 힘이며, 삶을 버텨내는 힘이다.
생각해 보면 신앙에도 근육이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근육이다.
그것은 믿음의 근육이다.
많은 사람들은 믿음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믿음은 문제를 없애는 능력이라기보다 문제를 견디게 하는 힘에 가깝다.
폭풍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힘.
어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걸어갈 수 있는 힘.
눈물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면서도 소망을 붙드는 힘.
그것이 믿음이다.
근육의 힘은 상대적이다.
같은 무게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무겁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볍다.
짐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힘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인생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작은 일에도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큰 어려움 속에서도 담담하다.
상황이 달라서만은 아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믿음의 근육이 다르기 때문이다.
믿음의 근육은 편안함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운동이 저항을 통해 근육을 키우듯 믿음도 인생의 저항을 통과하며 자란다.
기다림, 실패, 상실, 눈물, 외로움, 설명되지 않는 시간들.
우리는 그런 것들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돌아보면 믿음은 늘 그 자리에서 조금씩 단단해졌다.
광야를 지나지 않은 갈렙은 없었다.
골리앗을 만나지 않은 다윗은 없었다.
육체의 가시가 없었던 바울도 없었다.
그들은 어려움이 없어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놓지 않았기에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믿음은 감정이 아니다.
기분이 좋을 때만 생기는 낙관도 아니다.
믿음은 선택이다.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선택하는 것.
설명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붙들기로 선택하는 것.
끝이 보이지 않아도 한 걸음 더 걸어가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자기 몫의 짐을 만나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무게가 어깨 위에 올려질 때도 있다.
그 순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짐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짐을 없애시는 것보다 먼저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문제가 작아진 것이 아니다.
믿음이 커진 것이다.
짐이 가벼워진 것이 아니다.
근육이 강해진 것이다.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비결이 아니다.
말씀 한 구절.
기도 한 마디.
감사 한 번.
그리고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
그 작은 반복들이 쌓여 어느 날 믿음의 근육이 된다.
그리고 문득 뒤돌아보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아, 내가 강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구나."
"하나님께서 믿음의 근육을 키워 주셔서 여기까지 왔구나.“
2026.6.6.
푸른숲참기쁨교회 원응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