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파도가 지나간 기억]
스리랑카의 바다는 아름답다.
사진 속 바다는 믿기 어려울 만큼 푸르고,
황금빛 모래는 엽서보다 더 평화롭다.
햇빛은 눈부시고 야자수는 한가하며,
나무늘보처럼 시간은 게으르다.
그 해변에,
달리던 열 두 량 기차가 아이 장난감처럼 무심히 내 던져졌다.
수평선이 일어나 육지를 덮쳤다.
그 안에 갖힌 사람들,
모두 주검이 되었다.
한가한 야자수 스러진 아래 널부러진 시람들이 있다.
더운 스리랑카의 습기에 악취는 진동하고,
전염병을 예감한 산 사람들은 불안하다.
초라하지만 안락햇던 풀섬 집들은 여지없이 부서져 흔적 없고,
그 안에 있던 세간살이는 간 곳 없다.
한 끼니,
한 밤,
먹을 것,
잘 곳이 사라진 그곳엔,
깊은 시름과 절망이 가득한 눈동자들만 허공을 응시한다.
번호표를 나눠 준다.
질서를 위해서,
누구는 한 끼를 얻었고,
누구는 한 눈에 드는 허공을 얻었다.
번호표는 그렇게 산 이들에게 희망이 되기도 하고 절망이 되기도 한다.
자기를 위한 한 끼, 식구를 위한 한 끼다.
초롱한 눈빛이지만 지쳐 등 기댄 아이를 업은 아낙이 물었다.
혹시 저도 가능할까요?
혹시 저도 번호표 한 장 될까요?
그 말이 비수처럼 마음을 찌른다.
내가 누군데 기준을 세우고,
내가 누군데 산 이의 한 끼를 정하나.
이 말은 결국 내가 누군데 산 이의 한 끼를 거부하냐로 귀결된다.
어쩔수 없는 규칙과 질서를 위해서라면 눈 질끈 감아야 하지만,
그럴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낙을 텐트 뒤쪽으로 데려간다.
그리고는 내가 가진 번호표 한 장을 손에 쥐어 준다.
자기와 아이의 일 주일 양식을 손에 얻은 아낙은 얼마나 기쁜지 눈시울을 글썽이며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몹시,
몹시,
불편하다.
모든 일을 마치고 저녁이다.
배 부른 저녁을 먹고 해변으로 나왔다.
그 저녁의 석양과,
그 밤의 해안은 참 아름다왔다.
노래가 절로,
감탄이 연신,
이발 사이를 헤집고 나온다.
흠짓,
내 안에 있는 이 이중성에 놀란다.
처절하고도 비리한 주검과,
두려움과 절망에 잡힌 눈동자를 마주하고서도,
석양과 바다에 흥이 돋는다는 것이.
내가 누군데 산 이들의 한 끼를 정하며,
내가 누군데 산 이들의 절망을 결국 허락하나.
무심한 것이 오히려 더 처절한 스리랑카의 밤 바다는 그렇게 깊어가고,
아이 업은 아낙은 바다를 이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다.
2026.6.10.
푸른숲참기쁨교회 원응길 목사.
2004년 12월
동남아시아를 휩쓴 인도양쓰나미.
긴급구호로 1달간 스리랑카를 다녀왔다.
그 때 그 기억은 아직도 약간의 트라우마로 남아 나를 늘 따라다닌다.
그 악취,
그 절망,
그 궁핍,
그 절박.
이런 것들로 범벅된 기억.
그리고,
무능과 동시에 올라 오는 우월감 같은 속물감성...
그게 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