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얼마 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교회에 다니는 것인가.
기도하는 것일인가.
성경을 읽는 것인가.
아니면 예배 시간마다 습관처럼 "아멘"이라고 대답하는 것인가.
평소에는 이런 질문이 그리 절실하지 않다.
먹고 사는 일이 바쁘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자녀 걱정도 있고, 건강 걱정도 있고,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며 한숨 쉬는 날도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런데 어떤 순간에는 모든 질문이 하나로 모인다.
죽음이다.
특히 암이라는 병은 사람을 죽음이라는 질문 앞으로 데려간다.
병원 진료실. 의사의 설명. 모니터에 떠 있는 CT 사진. 조직검사 결과지.
그 앞에서 사람은 더 이상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현실적인 질문을 한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죽음은 끝인가.
이 아름다운 세상이 이제 끝이란 말인가.
내가 지금까지 믿어 온 것은 무엇인가.
성경 속 도마도 비슷한 자리에 서 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를 의심 많은 제자라고 불러 왔다.
그러나 나는 도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마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예수의 죽음을 직접 보았다.
못 박힌 손을 보았고, 찢긴 몸을 보았고,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았고, 무덤까지 따라갔다.
죽음은 그에게 신학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우리가 주를 보았다"고 말했을 때 그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내가 손과 옆구리를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
나는 그 말이 불신앙의 선언이라기보다 상처 입은 사람의 절규처럼 들린다.
나는 그분이 죽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무덤을 보았다.
그러니 함부로 희망을 말하지 말라.
어쩌면 오늘 암병동 어디에선가 누군가도 같은 말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사실 그 질문 앞에서 목사는 무력하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보여 줄 수 있다.
약사는 약을 건넬 수 있다.
그러나 목사는 천국을 보여 줄 수 없다.
부활을 손에 쥐여 줄 수도 없다.
그저 믿음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래서 때로는 나 역시 묻게 된다.
도대체 복음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암 앞에서.
죽음 앞에서.
그런데 성경을 다시 읽다 보면 이상한 장면 하나를 만나게 된다.
예수님은 도마를 꾸짖지 않으셨다.
"왜 의심하느냐."
"왜 믿지 못하느냐."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손을 내밀어 보라고 하셨다.
옆구리를 만져 보라고 하셨다.
도마의 의심을 책망하기보다 그의 상처를 먼저 이해하셨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늘 그러셨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셨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셨다.
나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유두고라는 청년도 비슷하게 읽는다.
사람들은 그가 설교 시간에 졸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 청년의 믿음이 오히려 귀하게 느껴진다.
하루 종일 일했을지도 모른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을 것이다.
자리는 없었고, 그는 창틀에 걸터앉아 말씀을 들었다.
졸릴 만큼 피곤했지만 왔다.
힘들었지만 왔다.
고단했지만 왔다.
나는 그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믿음은 의심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다.
눈물이 없는 상태도 아니다.
두려움이 없는 상태는 더더욱 아니다.
믿음은 모든 답을 얻은 뒤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답을 다 알지 못하면서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질문하면서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울면서도 무릎을 꿇는 것이다.
도마는 의심했지만 떠나지 않았다.
상처받았지만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주님을 만났다.
우리는 여전히 죽음을 모른다.
죽음 너머를 본 적도 없다.
천국을 사진으로 확인한 적도 없다.
그래서 어떤 날은 믿음보다 CT 사진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검사 결과지가 부활의 약속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는 날도 있다.
그것이 인간이다.
어쩌면 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붙들어 왔다.
죽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고통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죽음과 고통보다 더 큰 무엇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죽음을 설명할 수 없다.
암환자에게 완벽한 답을 줄 수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성경 속 예수님은 의심하는 사람을 밀어내지 않으셨다는 것.
상처받은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셨다는 것.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 곁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셨다는 것이다.
어쩌면 믿음이란,
모든 것을 확신하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을 때에도 주님을 놓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26.6.14.
푸른숲참기쁨교회 원응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