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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다섯 둘 하나

작성자원목사|작성시간26.06.20|조회수11 목록 댓글 0

[칼럼] 다섯 둘 하나

 

 

진짜 충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충성을 결과로 판단한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얼마나 큰 업적을 이루었는가, 얼마나 눈에 띄는 헌신을 했는가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한다.

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받은 것 같고, 누구는 두 달란트 받은 것 같도, 나는 한 달란트밖에 받지 못한 것 같아 낙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를 보면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서로 다른 결과를 남겼다.

한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다른 한 사람은 두 달란트를 남겼다.

남긴 결과는 달랐지만 주인의 칭찬은 똑같았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왜 칭찬이 같았을까.

주인은 종들이 무엇을 남겼는지보다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 달란트 받은 이는 그 달란트를 땅에 묻고 주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 주었다.

주인이 묻는다.

‘왜 이것 밖에 안되었느냐?’

한 달란트 인생이 말한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당신의 것을 받지 않았는가?’

실패 할 것을 두려워 하여 그냥 그대로 시간을 허비하다가 삶이 지나갔다.

만일 이 이도 다섯이나 둘처럼 열심히 일하고 수고에 충성하여 한 달란트를 남겼다면 주인의 칭찬이 어땠을까?

아마도 다섯이나 둘처럼 같은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여라.’

그러나 하나는 다섯과 둘을 보며 비교하다가 인생이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성경이 말하는 충성은 업적보다 태도에 가깝다.

많이 이루는 것이 충성이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맡겨진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이 충성이다.

그러므로 충성은 '무엇을 했느냐'보다 '어떻게 했느냐'의 문제이다.

얼마나 큰일을 했는가보다 어떤 믿음으로 그 일을 감당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보다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했는가가 중요하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보다 주어진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냈는가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건강한 몸으로 긴 세월을 살아간다.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어떤 사람은 넉넉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평생 부족함과 싸우며 살아간다.

하나님은 그 차이를 모르시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잘 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같은 삶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다만 맡겨진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기도해도 응답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몸과 마음이 지칠 때에도 은혜를 기대하며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것.

불평보다 감사를 선택하는 것.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어쩌면 이것이 진짜 충성인지도 모른다.

충성은 화려한 순간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날들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진다.

특별한 사건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란다.

오늘도 하나님을 사모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

오늘도 주어진 삶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

오늘도 믿음으로 견디며 감사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그렇게 살아낸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다.

예수께서는 충성된 종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결국 충성은 이 땅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루하루 믿음으로 살아낸 작은 충성들이 마침내 영원한 기쁨으로 이어진다.

오늘의 기도도, 오늘의 인내도, 오늘의 감사도 모두 주인의 즐거움으로 연결되는 길 위에 있다.

그러므로 충성은 많이 이루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며 걷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이런 한마디를 듣는 것이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보다 더 큰 영광이 또 있을까.

 

 

2026.6.20.

푸른숲참기쁨교회 원응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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