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 기도]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시편37:23~24)
[오늘의 말씀]
본문 : 마태복음 25:14-29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설교제목 :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
서론
사랑하는 푸른숲참기쁨교회 성도 여러분.
인생은 여행과 같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목적지입니다.
목적지를 알면 길이 조금 험해도 견딜 수 있습니다. 때로는 비를 만나고, 때로는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목적지를 알고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적지를 모르는 여행은 불안합니다.
한 걸음을 걸어도 두렵고, 하루를 살아도 허무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마지막 목적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많은 설교가 이 본문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라", "충성하라", "게으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이 비유가 어디에서 주어진 말씀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불과 이틀 전에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설교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에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 24:2).
당시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의 자존심이었고, 신앙의 중심이었으며, 세상의 전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곧 세상이 무너진다는 의미였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묻습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예수님은 그 질문에 답하시면서 세 개의 비유를 연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의 비유.
오늘 본문인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25장 1절은 "그 때에 천국은 마치..."라고 시작합니다.
14절의 "또 어떤 사람이"라는 표현도 원문에서는 앞 비유와 계속 연결됩니다.
즉 예수님은 계속해서 천국을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돈이 아닙니다.
사업 성공도 아닙니다.
핵심은 마지막 날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실 이 한마디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도의 인생은 무덤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닙니다.
주님의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인생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지금의 삶은 작은 일이지만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비교가 아니라 충성을 기뻐하십니다.
셋째, 성도의 최종 목적지는 주인의 즐거움입니다.
대지
1. 지금의 삶은 작은 일이지만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본문 21절입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여기서 "작은"이라는 말은 헬라어 "엘라키스토스"(ἐλάχιστος)입니다.
가장 작은 것, 아주 사소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다섯 달란트조차 주님께서는 "작은 일"이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는 당시 노동자 약 20년 치 임금에 해당합니다.
지금 가치로 바꾸면 연봉5천으로 계산해도 20년이면 10억이고 5달란트니까 50억입니다.
연봉 1억이면 100억입니다.
다섯 달란트, 엄청난 돈입니다.
이 돈을 한번에 그냥 맡기도 갔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것을 작은 일이라고 하십니다.
왜입니까?
영원과 비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작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100억의 가치를 가진 삶이라 하더라도 천국영광에 비하면 작은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시편 90편 10절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12절에서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도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선포합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삶은 천국에 비하면 작은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하찮은 일인건 아닙니다.
영원한 천국과 비교하면 70년, 80년의 인생은 짧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작다고 해서 가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씨앗은 작지만 숲을 만듭니다.
열 달 남짓한 태아의 시간이 짧지만 한 사람의 평생을 준비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의 삶은 천국에 비하면 작은 일이지만, 영원을 준비한다는 점에서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3년은 인생 전체로 보면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짧은 시간이 이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성도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의 삶은 영원에 비하면 짧지만, 영원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소중한 시간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시간은 천국에 비하면 작은 일이지만 영원을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하루가 귀합니다.
오늘의 기도가 귀합니다.
오늘의 감사가 귀합니다.
오늘의 웃음이 귀합니다.
오늘 드리는 이 예배가 귀합니다.
어떤 분들은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이제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할 수 있다면 아직 할 일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축복할 수 있다면 아직 사명이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다면 아직 하나님께서 맡기신 달란트가 남아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맡긴 오늘을 소중히 여기거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오늘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서 흘리는 눈물도, 드리는 기도도, 베푸는 사랑도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의 삶은 천국에 비해서는 작은 일이지만 그 천국을 에비한다는 면에서는 결코 하찮거나 헛된 일이 아닙니다.
대지
2. 하나님은 비교가 아니라 충성을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오.
주인은 종들에게 똑같이 맡기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주고 떠났더니."
여기서 "재능"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뒤나미스"(δύναμις)입니다.
능력, 힘, 역량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 ‘각각 그 재능대로 맡겼다’고 했습니다.
주인은 종들의 능력을 모르고 맡긴 것이 아닙니다.
그 종의 성격도 알고, 그 종의 한계도 알고, 그 종의 가능성도 알고 맡겼습니다.
그렇게 맡겼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시편 139편 1절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님은 우리의 체력을 아십니다.
우리의 형편을 아십니다.
우리의 눈물을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도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다른 삶을 맡기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섯 달란트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두 달란트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한 달란트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문제는 비교입니다.
비교는 언제나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만일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이렇게 생각했더라면 어떠했겠습니까?
"나는 비록 한 달란트밖에 받지 못했지만, 이것도 주인의 선물이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대로 충성하고, 나는 한 달란트대로 충성하자."
그랬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인을 원망했습니다.
받은 것을 묻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삶의 가치를 잃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비극은 적게 받은 데 있지 않습니다.
맡겨진 삶을 사랑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장면이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두 달란트 받은 종에게도 주님은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이 같습니다.
칭찬을 하고있는 본문 21절과 23절은 문구가 100% 똑 같습니다.
한 글자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이나 두 달란트를 남긴 사람이나 칭찬은 동일합니다.
왜입니까?
하나님 나라는 결과 경쟁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공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충성을 보시는 분입니다.
여기서 "충성"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피스토스"(πιστός)입니다.
신실한 사람.
끝까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지 않으십니다.
"왜 너는 저 사람만큼 살지 못했느냐?"
"왜 너는 저 사람처럼 능력이 없느냐?"
주님은 단 한 가지만 물으십니다.
"내가 네게 맡긴 삶을 사랑하며 살아냈느냐?“
오늘 예배의 자리에 나온 것.
오늘 감사할 제목을 찾은 것.
오늘 웃음을 잃지 않은 것.
오늘 누군가를 축복한 것.
오늘 찬양한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충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남의 인생을 살라고 부름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인생을 충성스럽게 살아가라고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대지
3. 성도의 마지막 목적지는 주인의 즐거움입니다.
오늘 본문의 절정은 바로 이 말씀입니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여기서 "즐거움"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카라"(χαρά)입니다.
기쁨.
환희.
넘치는 즐거움.
축제의 기쁨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종들에게 단순히 상급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 자신의 기쁨 속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천국은 단순히 황금길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한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이것이 천국입니다.
더 이상 눈물이 없습니다.
더 이상 이별이 없습니다.
더 이상 탄식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단지 세상을 견디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즐거움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오늘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환경 때문이 아닙니다.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의 마지막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지막은 실패가 아닙니다.
절망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주님의 즐거움입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도 담대히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도다"(딤후 4:7-8).
왜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습니까?
주인의 즐거움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언젠가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날 주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참 수고했다."
"잘 살아 주었다."
"이제 내 기쁨 속으로 들어오너라.“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인정이 우리의 삶 속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남의 인생 부러워 하지 않고 주어진 1달란트 충성하는 은혜와 믿음을 축복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너를 위해 준비된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여라.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푸른숲참기쁨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억합시다.
첫째, 지금의 삶은 작은 일이지만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내거 남의 것 비교하지 않는 삶에 대한 충성을 기뻐하십니다.
셋째, 성도의 최종 목적지는 주인의 즐거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기쁨으로 살아갑시다.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하루하루를 선물처럼 살아갑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합시다.
그리고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 모두가 이 음성을 듣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아멘.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 때가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헛된 삶이 아님을 믿게 하옵소서.
남과 비교하며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맡기신 삶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다섯 달란트든 두 달란트든 한 달란트든 맡겨주신 삶 속에서 충성하게 하시고, 날마다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푸른숲참기쁨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하늘의 평강을 부어 주옵소서.
오늘도 마음에 새 힘을 주시고, 새로운 용기와 소망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시선이 세상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주인의 즐거움 곧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마침내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