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남 선생 묘(1735)
지정 번호 : 향토문화재 제51호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산195-5
김지남(1654∼?)은 조선 후기의 역관이다. 본관은 우봉(牛蜂), 자는 계명(季明)이며 호는 광천(廣川)이다. 1671년(현종 12) 역과에 급제하여 역관으로 활동하였다. 자초법(煮硝法 : 화약을 만드는 흙을 달이는 법)을 중국으로부터 들여와 “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정조로부터 금석(金石)과 같은 성헌이라고 높이 평가받았다. 1712년 청나라와 국경선을 확정짓기 위해 양국대표가 회동하는데, 아들 경문과 함께 수행하여 청나라 대표 목극등을 상대로 하여 백두산정계비를 세우는 데 공을 세웠다.
문사(文詞)와 중국어에 유창하여 1714년에는 역관으로 사신을 수행하면서 보고들은 사실들을 참고로 하여 사대와 교린의 외교에 관한 연혁·역사·행사·제도 등을 체계화한 “통문관지(通文館志)”를 아들과 함께 편찬하였다. 이는 당시 외교에 종사하던 중신·사절·역관 등 실무진의 편람 및 사서의 구실을 하는 필수서가 되었고, 국내뿐만 아니라 청나라와 일본에까지 유포되어 그곳 외교관에게도 우리나라에 관한 지침서가 되었다. 벼슬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묘소 앞 비갈의 내용 중 김지남이 숙종 대에 백두산에 올라 중국 청나라 사신들과 담판을 져서 그 영토를 명확히 한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왕조실록과 같은 문헌기록에는 백두산 정계비와 관련한 기록을 다수 볼 수 있으나 무덤의 비석 중 정계비를 세웠다는 내용은 매우 드문 예이다.
[출처] 백두산정계비를 세우다 - 김지남 선생 묘(1735)|작성자 curators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