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둔도

작성자간도 지기|작성시간08.08.08|조회수187 목록 댓글 0

녹둔도
2008/07/07 오 전 8:04 | ◆ 역사 이야기


두만강 하류 조산(造山) 부근에 있던 하천섬. 역사상의 고유 영토로서 문헌에는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誌)>에 처음 나타나고 있다. 처음에는 사차마·사혈·사혈마 등으로 불리다가 세종 때 육진개척을 한 후 녹둔도라 하였다. 섬둘레 2리(里) 정도의 작은 섬으로, 보리·밀·수수와 각종 어류 및 청백염(靑白鹽) 등이 생산된다. 육진개척 이후 국경하천이 된 두만강의 하천도서였으므로 그 대안(對岸)에 살던 여진족의 약탈이 심해져 섬 안에 토성을 쌓고 높이 6척의 목책을 두르고 군사들이 방비를 하고 상주(常住)가 금지된 농민들이 배로 오가며 사토(沙土)를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다. 선조 때에는 출입의 번거로움과 방수(防戍)강화를 위해 둔전(屯田)을 실시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섬에서 농경이 지속되자 1587년에는 여진족이 습격하여 수호장 오형(吳亨) 등 11명의 군사를 살해하고 군민(軍民) 160여명을 납치한 녹둔도사건이 일어나 조정에서는 여진족에 대해 강경책으로 대처하였다. 1800년대 이후 강 상류의 토사가 밀려와 녹둔도와 그 대안 사이에 퇴적되어 육지와 연결되어 갔다. 1860년 북경조약으로 러시아에 귀속되어 조선·청·러시아 사이의 국경지역이 되었다.

국가란 영토, 국민, 주권을 갖춘 조직을 말합니다. 영토에는 영해, 영공, 영육으로 나뉘며 신성불가침의 권리를 배타적으로 행사합니다. 주권은 나눌 수 없고, 양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주장이 아니라 헌법학에서 말하는 근대 법철학 개념입니다.

2000. 5. 23. 밤 11시 20분에 MBC PD수첩에서 "독도에 관한 정부의 이상한 정책 3가지"를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영토는 신성한 것이며, 누구와 나누는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근대법철학이 아니더라도 BC2세기 흉노족의 영웅 모돈선우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땅은 나라의 근본이다"

근본을 지키지 못하는 민족과 나라는 민족과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미 간도는 1909년 일본제국과 청나라가 맺은 간도협약으로 중국이, 백두산 천지 북쪽은 6.25사변 참전 대가로 중국이, 두만강 하류 녹둔도는 러시아가 각각 강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 쪽으로 백두산을 오르는 것을 마음속으로 치욕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는 반쪽이 중국영토가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독도(울릉도 주민들이 부르던 원래 명칭은 돌섬), 녹둔도, 간도, 연해주, 신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이 모두가 제국주의 침략시대 때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만국은 국제법 앞에 평등하지만, 국제법은 만국 앞에 평등하지 않습니다.(방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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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이 : 이재환

1. 녹둔도(鹿屯島)

녹둔도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도 인연이 있는 땅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가 되기 전에 조산부(만호)에서 여진족과 싸우셨기 때문입니다. 녹둔도는 조산부에 속해 있는 땅입니다. 녹둔도는 사차마도, 사차(沙次), 사차마도(沙次磨島), 사차마(沙次麻) 또는 녹둔(鹿屯)이나 녹둔(鹿 둔은 屯 위에 대나무 죽 변입니다) 이라고도 부릅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녹둔도는 …두만강이 바다에 들어가는 곳에 있는데 조선(造山)에서 20리 거리에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경흥도호부읍지(慶興都護府邑誌)』에는 “사차마(: 녹둔도의 또다른 이름)는 부(府)의 남서쪽 70리 두만강 입해처(入海處 :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 즉 강 하류와 바다가 만나는 지역) 지점에 있고, 조산보에서 30리 지점에 있다.”고 적혀 있고요. 『아국여지도』에는 “녹둔도는 서수라(西水羅)에서 30리 거리이고, 서쪽으로 조선보에서 15리 거리이고, 북쪽의 경흥부는 100리 거리이고 …서쪽으로 두만강을 끼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들 기록을 보면 녹둔도가 두만강 하류에 가까운 바다, 연해주 바로 북쪽을 좁은 바닷물을 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의 땅이었습니다.

노계현 교수님 말씀대로 “두만강은 녹둔도에 이르러서 두 갈래가 되어, 한 줄기는 섬의 북쪽으로 흐르고 다른 한 줄기는 섬의 남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적어도 이때까지는)

또 『세조실록』세조 원년 8월 기사에 세조가 내린 지시 가운데 “조산구의 녹둔도 농민이 들에서 농사 지을 때 오랑캐(:여진족)들이 배를 타고 몰래 들어와서 약탈할 것이 우려되므로 진장(鎭將 : 진의 장수)과 만호에게 비밀리에 지시하여 엄히 지키도록 하라.”고 적혀 있습니다. 녹둔도를 지키려고 군대를 동원한다는 얘긴데 만약 녹둔도가 조선 땅이 아니라면 조선 군대가 들어가서 농민들을 지킬 수 있었겠습니까? 이 사실도 녹둔도가 조선 땅임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서기 1860년(단기 4193년) 러시아와 청나라가 국경 분쟁을 할 때에도 이 녹둔도에는 조선사람만이 살고 있었습니다. 19세기에 조선 사람 김광훈 등이 만든 조선지도인 『아국여지도』에는 이곳에 사는 주민이 모두 조선 주민으로, 113호(戶) 822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서기 1883년(단기 4216년) 어윤중이 조산보를 다녀온 뒤 보고한 보고서에는 녹둔도에 살고 있는 사람은 모두 조선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어윤중은 보고하면서 녹둔도를 “이 나라(:조선)의 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국여지도』는 “녹둔도에 사는 822명의 우리(조선) 백성은 부역은 하지 않으나 단지 자손을 키우고 본국(조선)의 풍습과 가르침을 높이 숭상하고 러시아인의 풍습에 따르지 아니함은 역대 왕조의 수백 년에 걸친 은혜와 가르침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고 적고 있습니다. 녹둔도의 조선인들은 계속 조선인으로 살아 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녹둔도 북쪽으로 흐르던 두만강 물줄기가 점차 모래가 쌓여 물줄기는 없어지고 땅으로 바뀌면서 연해주와 이어집니다. 한반도와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게 되고 북쪽 연해주와는 이어졌지요. (영, 정조 시절에 만들어진 지도에는 녹둔도가 섬으로 나타나 있으나 고종시대에 만들어진 지도에서는 녹둔도가 연해주와 이어진 사실을 적고 있으므로 이런 변화는 고종 이전에 일어났다고 여겨집니다)

서기 1883년(단기 4216년) 어윤중이 녹둔도에 갔다 온 뒤 고종에게 보고하기를 “녹둔도는 본래 우리 땅입니다. 신이 조산에 가서 땅 모양새를 살펴보니 섬 동쪽에 모래가 쌓여서 저쪽 땅 - 러시아 - 과 이어져 있고,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우리 백성들이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때는 조선의 실질적인 주권이 미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녹둔도를 자기 땅으로 알았고 녹둔도에는 조선 백성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해주를 차지한 러시아는 녹둔도까지를 연해주로 비정하고 러시아가 이 땅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녹둔도가 조선 땅임을 안 러시아는 국경문제를 조선과 논의하자고 제안합니다. 그 때 조선은 서양 여러나라와의 통상은 커녕 접촉도 거부하고 있던 때이므로 오로지 청국을 중개로 하여 이를 거절하며 뒤로 미루었던 것입니다. 이 때 조선 왕실은 훗날 녹둔도 북쪽에 비석을 세워 국경을 해결하면 된다고 대답하고 실질적인 국경정책에 나서지 않습니다. 러시아가 녹둔도를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었고, 이후 러시아 땅으로 굳어져서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의 북한은 녹둔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그냥 두만강 안쪽에 웅크리고 있으며, 남한 정부도 이 점에서는 다를 게 없습니다.

2. 신도(薪島)

신도(新島)라고도 합니다. 장자도(獐子島), 또는 장도(獐島)라고도 불리지요.『세종실록』「지리지」에 신도를 조선의 땅으로 적고 있고 오늘날 북한은 이 섬을 ‘비단섬’이라고 부릅니다. 이 섬에 갈대밭이 많고 또 갈대의 질이 좋아 비단을 만드는 데 썼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이 섬을 반은 신도라고 쓰고, 나머지 반은 장자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순조실록』에는. 의주부윤 서유거(徐有渠)가 조정에 보고한 글 가운데 “장자도(獐子島)는 곧 용천부의 신도(薪島)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장자도가 곧 신도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죠.

신도는 압록강을 벗어나 평안북도와 요동 반도를 가르는 압록강 근처 바다에 있는데 용천군 진곳리로부터 서남쪽으로 약 60리 지점이고 중국의 대동구(大東溝)로부터 약 45리 지점에 있습니다.

『중종실록』에 나온 신도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이 섬은 요동에서 60여리 떨어져 있고 우리 땅 용천(龍川 )에서 60리 이상 떨어져 있으며”라고 적고 있습니다.

병자호란 때의 조선과 청나라의 서쪽 국경선은 의주(義州 : 옛날 의주. 지금의 신의주시가 아닙니다) - 봉황(鳳凰) - 심양(瀋陽) 으로 이어진 선이었습니다.(이는 노계현 교수님의 연구로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이들 지점보다 더 안에 있는 신도도 조선 영토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조선 중종 시절의 귀성부사 유상령은 신도에 살던 최림 등 명나라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곳은 조선 땅이니 모두 돌아가라고 타이른 내용을 조정에 보낸 보고서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시 『중종실록』을 보면 서기 1528년(단기 3861년)에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모여서 회의를 하면서 “이 섬(신도)은 우리 땅이나 중국과의 국경이니 양국은 국경을 나타내는 표시를 하고 …앞으로 관리를 보내어 이 섬에 들어오는 자는 불법임을 타일러 중국으로 내쫓아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서기 1807년(단기 4140년) 10월, 조선은 신도에 멋대로 드나드는 중국 장사치들을 막으려고 군대를 신도에 보내 조선이 진(鎭)을 설치하겠다는 공문을 청나라에 보냅니다. 신도가 중국 땅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죠.

물론 청국은 조선이 신도에 청국사람이 멋대로 들어가는 일을 막는 것을 「치하」하고 진(鎭)을 두는 일도 양해합니다.

서기 1808년(단기 4141년)에 신도첨사가 있는 곳에 진을 두고 신도를 관리하였습니다. 이 신도 진은 서기 1895년(고종 때. 단기 4228년)에 철폐됩니다. 그러나 신도가 조선 땅이라는 생각은 바뀌지 않아서 서기 1898년(단기 4231년)에 멋대로 신도에 들어왔던 청국인을 대한제국 정부가 내쫓았고, 서기 1902년(단기 4235년)에 대한제국 외무대신이 청국정부에게 청국인이 신도에 들어와 멋대로 갈대를 벌채하지 말라는 요청을 하고 동시에 손해 배상을 요구합니다. 이 때 청국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또 프랑스 육군지도 제작소가 서기 1904년(단기 4237년)에 군사용으로 만든 지도에는 신도가 조선의 땅으로 뚜렷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후 신도는 아무런 변동 없이 조선 땅이었는데도 서기 1960년 이후(단기 4293년) 중국은 신도를 그들의 땅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일이며 우리라도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3. 연해주

연해주를 조선 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로는, 우선 백두산 정계비가 있습니다. 러시아가 남쪽으로 내려오기 전에 세워진 이 비석에는 조선과 청나라의 경계선을 “동쪽으로는 토문강(土門江)으로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토문강이 송화강의 지류이므로, 이 토문강 동쪽에 있는 땅은 다 조선의 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토문강의 동쪽에 있는 연해주도 조선 땅인 것입니다.

토문강 - 송화강 - 흑룡강(아무르강) 안쪽이 조선의 영역인 셈이지요.

서기 1860년 청이 러시아에 넘겨준 연해주 전체 즉, 우수리강 - 흑룡강(아무르강)선의 남쪽 지역은 당연히 조선의 영토인 것입니다.(제가 볼 때는 연해주 전체 - 남쪽만이 아니라 - 라는 생각이 듭니다) 『북여요선(北輿要選)』에는 “비(백두산정계비)의 동쪽 토문강의 근원은 …5,6백리 정도를 흘러 송화강과 합류하여 동쪽으로 흑룡강에 이르기까지 그 이동이 진실로 계한(界限 : 한계선, 경계선) 안의 땅이나, 우리 나라는 당초 변경에서의 분쟁을 우려하여 이민을 엄금하고 드디어 그 땅을 비워 두었다. 그래서 청국은 자기네 영토라 하여 이를 점거하여 러시아에게 1000여리의 땅을 할양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당시 토문을 한계로 경계를 정한 것을 본다면 이 같은 일은 용납할 수 없으며 ….”라고 적혀 있습니다. 연해주는 청이 멋대로 자기 땅도 아닌데 러시아에게 넘겨 주었고, 우리는 총 한방 못 쏴보고 러시아에게 영토를 뺏긴 것입니다.

이제 국사 교과서에서 조선이 한반도 안에서만 머무르고 있었다는 주장은 고쳐져야 하며 바뀌어야 합니다. 조선은 연해주, 신도, 녹둔도, 간도, 대마도까지 영토로 삼고 있었으나 대마도의 경우는 간접적인 지배를 했고 간도나 연해주는 중국과의 충돌이 일어날까봐 일부러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텅 비워 두었다가 일본과 러시아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녹둔도는 국경을 확정하는 문제를 미루었다가 러시아로 넘어갔고 신도는 큰 변동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멋대로 자기네 땅이라고 지도에 그려 넣고 있습니다. 우리 인식이라도 바르게 바뀌어야 하고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출처:
http://eduemins.new21.net/technote/read.cgi?board=history&nnew=2&y_number=52




러시아, 아무르강 2개 섬 에 9월 반환



중국이 20세기 초 영토 분쟁 과정에서 러시아에 빼앗긴 아무르(중국명 헤이룽·) 강의 2개 섬을 9월경 반환받을 예정이라고 홍콩의 원후이()보가 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발레리 푸토프 러시아 연방안전국 극동연방구 지구변방국 국장의 말을 인용해 “다음 달쯤 타라바로프(중국명 인룽·) 섬과 볼쇼이 우수리스크(중국명 헤이샤쯔·) 섬의 절반을 중국에 넘겨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반환의 정치적 의미를 최대한 살리고 선전효과를 높이기 위해 올림픽이 열리는 8월을 피해 9월 중 반환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이곳을 경제특구로 활용할 방침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앞서 2004년 10월 4300여 km에 이르는 국경선 획정의 마무리 작업으로 ‘중-러 국경선 동단() 보충 협정’을 맺으면서 아무르 강과 우수리(중국명 우쑤리·)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타라바로프 섬 전체와 우수리스크 섬의 절반 등 총 174km²를 중국 측에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우수리스크는 길이 약 70km, 폭 5∼6km, 넓이 327km²로 면적이 서울의 절반쯤 되는 섬이다. 당초 청나라 영토였으나 1929년 소련과의 영토 분쟁 과정에서 빼앗겼다. 해발 40m의 이 섬은 대부분이 습지로 이뤄져 있으며 어종이 풍부하다.

한편 러시아가 관할해 온 2개 섬을 중국에 반환함에 따라 러시아가 점령 중인 조선의 옛 영토인 녹둔도()의 반환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일본과 러시아가 분쟁 중인 쿠릴 열도 4개 섬의 처리 문제도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둘레 8km의 녹둔도는 조선 태조가 개척한 이래 400여 년간 조선의 영토였으나 1860년(철종 11년) 청나라가 러시아와 베이징 조약을 맺으면서 러시아에 넘겨줬다.

고종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1889년 청나라에 항의하면서 반환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녹둔도는 1984년 11월 북한과 소련 당국자 사이의 국경회담에서 다시 관심을 모았지만 미해결로 남았다. 한국은 1990년 러시아 측에 섬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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