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야기] 박정희는 한국사의 영웅인가? 죄인인가?

작성자간도 지기|작성시간12.11.16|조회수70 목록 댓글 0

 

[오늘의 이야기] 박정희는 한국사의 영웅인가? 죄인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박정희는?

 

박정희의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으로 다양하게 나뉘고 있다. 우선은, 전쟁과 가난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을 국가주도의 ‘산업화’를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 경제를 부강하게 만들었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도시화와 다르게 새마을운동은 농촌발전에 대한 성공적 사례로 평가 받고 있으나 부정적인 평가에서는 개발 위주의 획일화된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오늘 11월 14일은 대한민국의 제 5ㆍ6ㆍ7ㆍ8ㆍ9대 대통령 박정희(朴正熙, 1917년 11월 14일 ~ 1979년 10월 26일)가 태어난 날이다. 1917년 음력 9월 30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의 금오산 자락에서 몰락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 말기에 효력부위(效力副尉)와 사과를 지낸 아버지 고령 박씨 박성빈과 어머니 수원백씨 백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였다. 신라 경명왕의 왕자였던 고양대군(高陽大君) 박언성의 후손으로 조선 정조 때에 암행어사로 이름난 박문수는 그의 7대 방조였다.


대구사범학교 출신으로 3년간 교사로 근무했고, 만주군관학교 졸업후 일본육군사관학교에 3학년 과정에 편입하여 졸업, 만주 보병제8사단에서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할 때까지 만주국의 장교로 근무했다. 군관시절 박정희는 스스로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 개명하였고, 만주군관학교 2기생 졸업앨범과 일본 육사 졸업앨범에서도 같은 이름을 사용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박정희의 셋째형 박동희가 1945년 3월 박정희의 병적사항을 알리기 위해 일제 치하의 경북 구미 면사무소에 제출한 병적기록부를 바탕으로 작성된 《임시육군군인군속계》에서도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이 ‘다카키 마사오’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방 이후에는 남로당에 입당했다.

박정희는 5ㆍ16 군사정변을 주도하였고,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과 의장, 그리고 1963년 12월부터 1979년 10월 26일까지 대한민국의 제 5ㆍ6ㆍ7ㆍ8ㆍ9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3선 개헌 및 유신헌법 등의 독재 장기집권을 반대하던 야당 및 학생운동 세력과 끊임없이 충돌하였고 1979년 10월에는 김영삼 의원제명 파동 등을 사주하여 부마항쟁을 야기하였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박정희의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으로 다양하게 나뉘고 있다. 우선은, 전쟁과 가난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을 국가주도의 ‘산업화’를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 경제를 부강하게 만들었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도시화와 다르게 새마을운동은 농촌발전에 대한 성공적 사례로 평가 받고 있으나 부정적인 평가에서는 개발 위주의 획일화된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10월 유신을 통한 인권 탄압, 노동 운동 및 야당 탄압, 군사유혈독재와 부정축재, 친일반민족행위 논란 등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평가도 많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존경하는 대통령을 비롯한 대통령 선호도와 공적 평가 등에 대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독도와 간도의 영유권 확보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1975년 9월에는 국회에서 발간한 《간도 영유권 관계 발췌문서》에 특별예산을 지원하였으며 1978년에는 독도를 종합 연구하는 데 거액의 예산을 지원하였다. 이후 10여명의 학자들이 7년 동안 연구하여 박정희 사후인 1984년, 독도 영유권에 관한 자료들을 수록한 《독도 연구》를 발간하였다.

닉슨 미 대통령이 1969년에 괌(Guam) 독트린을 선언하고 1년 뒤인 1970년 7월 초 로저스 미 국무장관이 한국정부에 주한미군 2만 명의 철수를 통고하자 박정희는 핵무기개발계획을 처음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국은 1975년 이에 직접 개입하여, 한국정부에 대해서 핵개발 계획을 중지하도록 강요했다. 키신저는 박정희에게 핵무기 개발을 고집한다면 미국은 한국에 대한 안보지원을 중지한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엄청난 압력에 1977년 결국 공개적으로 핵무기 개발 포기를 선언했다.

2000년대에 들어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룩한 대통령, 민족 중흥을 실현한 지도자 등의 긍정적인 평가와 시대에 편승한 기회주의자이자 독재자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양립하고 있다. 이러한 의견 차는 대한민국의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혹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세계주의와 민족주의 등을 가르는 하나의 상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1999년 8월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인물 20인」에 오르기도 하였다. 타임은 박정희에 대해 “비록 독재적 성향을 가졌지만 한국의 최장수 대통령으로 집권하면서 경제적 약체 국가를 산업강국으로 변모시켰다”고 평가했다. 타임이 선정한 인물들 중에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와 타고르, 중국의 마오쩌둥과 쑨원, 일본의 히로히토와 모리타 아키오, 싱가포르의 리콴유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베트남의 호치민과 티베트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선정되었다.

박정희와 관련되어 그의 업적을 기리는 책부터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까지 매우 많이 출간되었다. 심지어 일본, 미국 등 외국에서도 그에 대해 다룰 정도다. 그 중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읽어볼 만한 도서를 몇 권 추천한다.

* 내용 출처: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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