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47%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이는 미국과 스웨덴에 이어 세계 3위라고 하며 이로 인하여 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혼율이 높은 원인 중 하나로 우리나라에서는 협의이혼이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어왔고, 최근 보건복지부는 성급한 이혼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혼유예기간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혼에 앞서서 냉각기간 내지 숙려기간을 갖는 것을 제도화함으로써 가정의 해체를 조금이나마 방지해보자는 취지로 보인다.
필자는 2002년 후반기부터 2003년 전반기까지 미국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방문과정으로 공부하던 중 워싱턴 근교의 버지니아주 패어팩스 카운티 지방법원(Fairfax County Circuit Court)을 견학하면서 그곳의 이혼제도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조사해본 바 있다. 버지니아주 패어패스 카운티는 인구 100만의 도시로서 미국에서도 법률 체계가 비교적 잘 갖추어진 곳으로 알려져 있는바, 그 이혼 절차는 이혼유예기간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많은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하에서는 우리나라의 협의이혼에 가장 가까운 무귀책이혼 절차(no-fault divorce)가 패어팩스 카운티에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위주로 설명하고자 한다.
1. 무귀책이혼(no-fault divorce)
주(state)마다 다소간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미국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협의이혼 제도가 없는데, 이는 결혼의 법률적 지위에 관하여 한국법과 미국법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법에서는 결혼을 계약(Contract) 관계로 보기 때문에 당사자가 싫으면 언제든지 합의하여 해소할 수 있음에 반해, 미국법은 결혼을 신분(Status)으로 보기 때문에 일정한 요건(grounds, 일정 기간의 별거 등)과 절차 하에서만 이혼이 가능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쌍방 당사자 간 이혼의사의 합치가 있는 경우, 즉 우리나라에서라면 협의이혼을 할 수 있는 경우에도, 일정 기간 별거한 후 이를 사유로 일방(이혼을 주도한다는 의미에서 moving party라고 불린다)이 법원에 이혼을 신청하여 법원의 결정에 따라 이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무귀책이혼(no-fault divorce)이라고 하는데, 각 주(state)마다 또는 각 군(county)마다 그 절차와 관행이 다르다. 예컨대 필자가 견학했던 버지니아주 패어팩스 카운티는 이혼이 어려운 지역에 속해서 쌍방 간 이혼합의가 있고 별거기간에 관한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이혼에 최소한 약 3개월에서 6개월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에 반해 라스베가스로 유명한 네바다주는 이혼이 쉽고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서 어떤 사람들은 이혼을 위하여 잠시 네바다주로 이주하기도 한다고 한다.
당사자 이혼합의해도 일정기간 별거후 법원에 이혼신청
재산분할 등 다툼있으면 가사조사관의 조사절차 거쳐
우리나라의 협의이혼과 비슷... 숙려기간 도입에 참고할만
2. 이혼의 종류
가. 미국 버지니아주에는 두 가지 유형의 이혼, 즉 부분이혼(divorce from bed and board)과 완전이혼(divorce from the bond of matrimony)이 있다. 완전이혼은 우리나라의 “이혼” 개념에 해당하고, 부분이혼은 이혼에 앞서서 별거하며 냉각기간을 갖도록 하는 것을 제도화한 것으로 보인다.
나. 부분이혼(divorce from bed and board)
부부는 법률적으로는 헤어지게 되지만 재혼은 허락되지 않는 형태의 부분적인 이혼이다. 부분이혼 하에 있는 사람은 쌍방이 헤어져 살기 시작한 때로부터 1년 이상 경과한 후 법원에 완전이혼을 신청할 수 있다.
부분이혼 사유로는 ① 악의적 유기(willful desertion or abandonment), ② 가혹행위와 신체적 불안(cruelty and reasonable apprehension of bodily harm)이 있다.
다. 완전이혼(divorce from the bond of matrimony)
완전하고 궁극적인 이혼으로서 우리나라의 “이혼”과 같은 개념이다. 완전이혼 사유가 있으면 바로 신청할 수 있으며 그 이전에 부분이혼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완전이혼 사유로는 ① 일정기간의 별거(separation divorce : the no-fault divorce), ② 간통 등(adultery, sodomy, or buggery), ③ 중범죄(conviction of a felony)가 있다.
3. 무귀책이혼 절차
가. 제1단계 - 이혼신청서 준비
(1) 관할(residency requirements)
버지니아주에서 이혼하기 위해서는 이혼신청서 제출시점을 기준으로 부부 중 일방 또는 쌍방이 최소한 6개월 이상 버지니아주에서 거주해야 한다.
(2) 이혼사유(grounds) 기재
이혼신청서(Bill of Complaint)에는 합법적인 이혼사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무귀책이혼에서 두 가지의 가장 전형적인 이혼사유는 6개월의 별거 또는 1년의 별거이다. 6개월의 별거를 사유로 한 이혼은 ① 별거에 관한 합의가 있고, ② 결혼 중 태어난 미성년 자녀가 없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혼신청서에 반드시 기재되어야 한다. 6개월 또는 1년 간 별거를 사유로 한 이혼을 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이혼신청서 접수에 앞서서 각 정해진 기간 동안 별거해야 하며, 이러한 별거기간은 이혼신청서에 명백하게 기재되어야 한다. 별거기간이 완료되기 전에 이혼신청서를 제출해서는 안되며, 만일 제출되면 기각(dismissed)된다. 이 경우는 별거기간 완료 후 다시 비용을 지불하고 이혼신청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3) 추가적인 기재사항
- 쌍방 당사자의 현 주소
- 결혼 시기와 장소
- 쌍방 당사자가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연령(legal age)에 있으며 의사능력(mentally competent)이 있음
- 쌍방 당사자의 병역(military status)에 관한 사항
- 결혼 중 출생하거나 입양된 자녀들의 성명, 사회보장번호, 생년월일
나. 제2단계 : 이혼신청서 제출과 송달
(1) 소요서류
이혼신청서 3부와 VS-4 양식(form)이 제출되어야 한다. 이 양식은 주정부의 통계를 위해서 요구되는 서류로서 사무국(Clerk's Office)에서 구할 수 있다.
(2) 초기 비용
- 64달러 : 제소비용(filing fee)
- 12달러 : 이혼신청서를 상대방에게 송달하기 위한 비용
- 19달러 : 결혼 전 姓(maiden name)을 회복하기를 원하는 경우 그 신청비용
(3) 송달
위 이혼신청서는 집행관(Sheriff, 패어팩스 카운티에서는 주민의 직접선거에 의하여 4년 임기로 선출되며 그 휘하에 많은 직원을 두고 송달, 교도소 운영, 강제집행, 법정경위 등 법집행 업무를 담당한다)에 의하여 상대방에게 송달되어야 한다. 다만, 상대방이 위 신청서 부본을 이미 받았음을 인정하는 서류를 작성한 후 이를 공증 받아 법원에 제출하면 위 송달은 불필요해진다. 상대방은 위 이혼신청서를 송달 받은 후 21일 내에 답변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4) 송달면제
상대방은 위와 같은 송달을 받은 후 앞으로는 소송절차에 관하여 추가적인 통지를 받지 않겠다는 면제서류(waive form)를 제출할 수 있다. 이러한 면제서류는 공증인(notary public)이나 사무국장대리(deputy clerk) 앞에서 선서하고 작성되어야 한다. 쌍방 당사자간 이혼의사의 합치가 있는 상황이라면 송달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하여 상대방은 위 송달면제 서류를 작성, 제출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다. 제3단계 : 구두심문
(1) 쌍방 간에 재산분할, 양육권, 부양 등에 관하여 다툼이 있다면 이 사건은 일단 가사조사관(Commissioner in Chancery, 변호사들 중 법원이 지명하며 신청인이 그 조사비용을 지불해야 함)의 조사에 회부된다. 물론 조사절차가 끝난 후 즉시 다음 절차로 이행하지만 그 동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2) 구두심문(Ore Tenus hearing) 청구
만일 위와 같은 쟁점들에 관하여 다툼이 없다면 이혼신청인은 곧바로 구두심문(Ore Tenus hearing)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제출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최종이혼심판문(Final Decree of Divorce) 초안과 재산분배합의서 사본이 첨부되어야 한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신속한 업무처리와 법원의 업무 경감을 위하여 심판문 초안을 당사자로 하여금 작성하게 하고 판사는 그곳에 서명만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위 최종이혼심판문 초안에 상대방 당사자가 배서(endorsement)를 하면 그 사람은 위 구두심문 기일에 관하여 통지를 받을 필요도 없고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만일 위와 같은 배서가 없다면 이혼신청인(moving party)은 위 구두심문 기일과 위 최종이혼심판문 초안을 상대방에게 송달하여야 한다. 그리고, 위 구두심문 기일에는 재산분배합의서 원본이 법원에 제출되어야 한다.
구두심문 청구서(Request for Ore Tenus hearing)가 제출되면, 즉시 그 사건은 판사들 중 한 명에게 배당된다. 담당 판사의 전속 연구관(law clerk)은 법률적 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최종이혼심판문 초안을 포함하여 모든 서류들을 검토한다. 만일 부족한 점이 있으면 연구관은 이혼신청인에게 서면으로 그 보정을 명하여 보완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만일 위 연구관이 이혼신청인에게 모든 법률적 요건이 완비되었다고 서면으로 통지하면, 이혼신청인은 그로부터 14일 이내에 심문기일을 지정 받기 위하여 구두심문 담당직원(Ore Tenus clerk)과 접촉하여야 한다.
(3) 구두심문(Ore Tenus hearing) 기일
판사 앞에서 이루어지는 구두심문은 약 10분 가량 소요된다. 구두심문 기일에는 이혼신청서에 의하여 주장된 사실들을 뒷받침할 증거들이 본인심문 및 증인의 증언 등에 의하여 제시되어야 한다. 당사자는 증인을 대동하고 나와야 하며 증인의 출석을 확실히 하는 것은 그 증인을 신청한 당사자의 의무이다.
모든 요건들이 충족되면 판사는 대개 구두심문기일에 바로 최종이혼심판을 내린다. 즉석에서 최종이혼심판문 초안의 주문이 수정, 삭제, 첨가되기도 한다. 최종이혼심판문에 판사가 서명하면 신청인은 그 정본(certified copy from the court)을 받을 수 있다. 위 정본을 받기 위하여 이혼신청인은 최종이혼심판문 초안을 제출할 때 자신의 주소와 우표가 부착된 봉투를 함께 제출하여야 한다.
필자가 패어팩스 카운티 지방법원 견학 중 판사 및 변호사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은,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혼 과정에 당사자들이 좀더 감정적으로 행동하며 더욱 많은 정신적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한 배우자와 평생을 함께 해야한다는 관념 자체가 적기 때문에 이혼 과정에서 별다른 감정적인 기복 없이 상당히 사무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부부가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쳐서 쉽게 이혼함으로써 가정이 해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정 기간의 냉각기를 갖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추진되고 있고, 이에 관하여 찬반 양론이 대립되어 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건 간에, 감정에 치우치고 서로간에 많은 상처를 남기는 이혼은 지양되어야 하겠다는 바램에서 패어팩스 카운티의 무귀책이혼 절차에 관하여 소개해보았다. 앞으로의 제도개혁 과정에서 이 분야에 관하여 많은 논의가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