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의지하여 눅5:1-6
갈릴리 호수에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의 어부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베드로입니다. 그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려고 했으나 그물에 풀만 가득히 걸려오고 찢어질 뿐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는 잔뼈가 굵어질 때까지 갈릴리 호수에서 그물만 던지고 살았기 때문에 다른 일은 할 줄 모릅니다. 그런 현실에 베드로의 입에서는 탄식만 나왔습니다. 배를 강가에 놓고 하염없이 한숨을 쉬면서 배에서 그물 곳곳에 걸린 풀을 뜯어내고 있었습니다. 또 뚫어진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많은 군중이 그 해변가로 몰려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예수님이 베드로 배에 올라 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을 다 끝마치고 베드로를 내다보시더니 “자 이제 깊은 곳에 가서 함께 고기를 잡자”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베드로는 ‘이분이 도대체 어떠한 분인가 나는 갈릴리에서 잔뼈가 굵도록 자라서 갈릴리 바다를 잘 아는데 해가 뜨면 고기가 전부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아무리 그물을 던져도 깊은 바다에서는 고기를 못 잡는데 어떻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밤을 맞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잡은 것이 없으되 명령에 의해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배를 저어 깊은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명하신 대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물 안은 물고기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채운 것이 많아서 그물이 찢어졌습니다. 그 고기를 자기 배에 가득 채웠습니다. 동료들의 배를 불러서 그곳에도 가득히 채웠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상상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때 불현듯 베드로에게 깨달음이 왔습니다. ‘이분은 보통 분이 아니다. 이분은 하나님이 같이 계신 분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베드로는 꿇어 엎드려 말하기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지금부터 너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많은 교훈이 있습니다.
인생을 배에다가 비유한다면 삶 속에 행복과 기쁨이 없는 빈 배를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행복도 없고 기쁨도 없는 빈 배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빈 배를 저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배속에서 한없이 탄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꿈을 잃어버린 빈 배도 있고 사랑을 잃어버리고 고통과 슬픔 가운데 있는 빈 배도 있습니다. 성공이 없는 빈 배도 있습니다. 건강을 다 잃어버리고 이제는 살아갈 힘조차 없는 빈배도 있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해도 잡은 것 없이 빈 배에 앉아 있을 때의 그 비참한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는 우리의 인생을 빈 배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에덴동산에서 떠난 이후로 그들의 인생은 빈 배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수고하고 애쓰고 노력해도 배를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배는 비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17장 13절에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가 6장 13절로 15절에 “그러므로 나도 너를 쳐서 중히 상하게 하였으며 네 죄를 인하여 너를 적막하게 하였나니 네가 먹으나 배부르지 못하고 속이 항상 빌 것이며 네가 감추나 보존되지 못하겠고 보존된 것은 내가 칼에 붙일 것이며 네가 씨를 뿌리나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을 밟으나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으나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물먹듯이 먹고 마시며 사는 인생은 언제나 그 배가 비어 있습니다. 언제나 텅 빈 그 마음의 배, 생활의 배에 앉아서 탄식하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빈 배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빈배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빈 배 안에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빈 배에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신 것처럼 우리 인생의 빈 배 속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행복과 기쁨이 없는 빈 배 속에 예수님을 모셔야 됩니다. 사업에 실패한 빈 배 속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꿈을 잃어버린 빈 배에 예수님을 모셔야 되고 사랑을 잃어버린 빈 배에 예수님을 모셔야 하고 성공이 없는 빈 배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건강이 없는 빈 배에도 예수님을 모셔야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천지에 창조주가 되시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에 보면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배 안에 들어오시면 배에는 없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무엇이든 창조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서 값 주고 사신 우리에게 놀라운 하늘나라 축복으로 채우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용서와 사랑으로 채우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천국과 성령으로 채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기쁨과 치료로 채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형통과 축복으로 채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영생 복락과 부활과 천국으로 채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채우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은혜와 사랑의로 우리의 빈 배를 채우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배 안에 영접하면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베드로가 그물 깁는 것도 집어치워 버리고 그물에 걸린 풀 뜯는 것도 그만 두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심취한 것처럼 우리의 생애 속에 예수님을 모셨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절에서 3절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까? 오늘날 우리들은 성경 말씀을 읽음으로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예수님의 영, 성령님이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려 주시고 마음에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일 예배에 와서 주의 종의 예배를 통해서 주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시시때때로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그 말씀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묵상을 하고, 그 다음 우리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늘 주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도드리며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주를 섬겨야 됩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어릴 때 성전에서 주를 섬기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보고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을 기다려야 됩니다. 베드로는 자기 마음대로 배를 저어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빈 배에 예수님을 모시고 난 다음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을 우리의 빈 배에 모시고 말씀을 읽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주님을 섬기고 주의 명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은 우리에게 직접 임하시기도 하고, 꿈으로 말씀하시기도 하고, 환상으로 보여주시기도 하고 혹은 성령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 마음속에 깨달음을 주시기도 합니다. 또한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하고, 환경을 통해 길을 열어주시기도 하십니다. 여러 가지 부분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한대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가나의 혼인 찬지가 열렸을 때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예수님의 어머니에게 와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가서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고 종들에게는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우리는 그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은 결례통에 물을 채우게 하고 그 물을 따라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성적으로 보았을 때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명령입니다.
물을 부어서 떠다주면 어떻게 됩니까? 포도주가 없는데 소용없는 일 아닙니까? 그러나 성경에서 종들은 그 말씀에 순종했고 물을 떠서 갔을 때 그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를 기다리면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짐을 짊어져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편 123편 1절로 2절에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해서 기다리면 오늘날 주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반드시 말씀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진다는 것은 베드로에게 새로운 일터를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언제나 얕은 물에서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주님께서 주와 함께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얕은 지식이나 수단과 방법으로 일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면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야 합니다. 그때로부터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를 데리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삶의 새로운 터전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얕은 곳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얕은 인간의 이성의 세계가 아닌 하나님의 세계, 신령한 세계, 깊은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33절에 보면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깊은 길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36편 6절에도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139편 6절에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좁은 마음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깊은 세계를 주님께서 이끌어 가는데 그 깊은 세계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말씀이 깊은 세계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로 2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세계는 바로 깊은 곳에 들어가는 세계인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이 말씀하시면 그것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끝까지 믿는 것입니다. 환경에 좌우되지 말고 느낌에 흔들리지 말고 마음 중심에서 말씀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깊은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용기로 인해 깊은 곳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겁이 많은 사람은 주님이 아무리 말씀해도 못 따라갑니다. ‘성수주일 하시오’어떻게 상점을 닫고 성수주일 합니까? 겁이 나서 깊은 곳으로 못 들어옵니다.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내 수입이 적은데 여기에 십일조까지 떼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나 겁이 나서 깊은 곳에 못 들어갑니다. 오늘날 우리가 깊은 곳에 들어가려면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언제나 얕은 곳에서 찰싹찰싹 살다가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니까 마음에 겁이 나서 벌벌 떨고 못 들어가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주님이 함께 들어가 주신다는 것입니다. 혼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주의 손길이 우리와 같이 하셔서 깊은 곳에 함께 따라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이 함께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얕은 세계에서는 빈 배를 채울 수 없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모시고 깊은 곳으로 가면 하나님의 기적으로 빈 배를 채울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빈 배의 슬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생을 살면서 애쓰고 힘을 쓰지만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 마음속에 기쁨도 행복도 채우지 못합니다. 성공으로도 채우지 못하고 건강으로도 채우지 못하고 축복으로도 채우지 못하고 부요로도 채우지 못합니다.
빈 배를 채우려고 탄식하고 고통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의 빈 배를 채워주실 분은 우리 주 예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인자가 오는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빈 배를 채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빈 배를 채우기 전에 먼저 주님으로 채움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 배 안에 들어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여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짐도, 홍해가 갈라짐도,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서 치료된 것도, 열 명의 문둥병자가 치료된 것도, 엘리야 시대에 먹을 것이 없어서 아들과 죽으려고 했던 사르밧 과부의 가정에 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아니한 것도, 엘리사 시대의 가난한 한 과부의 가정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은 것도, 모두 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의지했다는 것은 순종 했다는 것입니다. 즉 순종할 때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가?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놀라운 승리의 영광이 우리들 생애 속에 일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빈 손 들고 빈 배만 가지고 슬픔과 고통으로 탄식하는 그런 삶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삶을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그런 삶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 배에도 채우고 다른 사람의 배에도 채워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빈 배에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 넣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관심을 물고기에 두지 말고 예수님께 두어야 합니다. 주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의지하여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믿음+순종=기적이라는 공식을 통해 놀라운 기적의 삶을 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