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10/4(목)........희나리삐삐 가 "은성전자 반주기(워크미디어)" 에 신곡넣어왔어요~색소폰 초보자분들의 희소식박스? 서울공고 교가 (악보) 자랑?
작성자희나리삐삐작성시간18.10.16조회수949 목록 댓글 32018년10월4일(목)....희나리삐삐가~ 화곡동 은성반주기(워크미디어) 삼실 다녀온날~
희나리삐삐 아침일찍 일어나서 은성반주기(워크미디어) 삼실로 서둘러출발했어여~
희나리7080 라이브카페 주민분 중....젊으신분이 오셔서는 신곡을 찾아서...ㅎ
화곡동 은성전자 반주기(워크미디어) 사장님이 희나리7080 라이브 마스타님의 후배? 라고... 해서....
전철타고....우장산역에서 마을버스타고.....3차아파트앞에서 하차....
그래도, 동문님 삼실가는데....빈손으로 어케 가겠어여~
희나리삐삐는~ 편의점들러 비타500 음료수 한박스(10개)사들고....들어갔쮸~~ㅎ
삼실올라가니....
희나리7080 마스타님 사장님한테 다가가 악수 청하네여~
"어~~후배님? 반갑습니다. 서울공고 후배님....." 하고...
"어~~누구...몇회...?? " 하면서...
몇 회 를 얘기하다가....?
헉~~~
은성전자 반주기(워크미디어) 사장님 서울공고 60회....
건아들 멤버였던 희나리7080 마스타님 63회....
입이 떡~~~벌어지는거 있져...
알고보니...은성전자 반주기(워크미디어) 사장님이 3년 선배님 이신거예여~~(오마이~갓~)
희나리삐삐 가... 은성전자 반주기(워크미디어) 사장님얼굴을 보니....
와우~~~엄청, 잘생기셨어여~
희나리7080 마스타님보다 얼굴이 훨~~씩~젊어보이는거 있져~~~ㅋ
희나리7080 마스타님....깨갱~~ㅎㅎ
(원래, 선배님한테 재롱두 부리고 그래야 ...먹을게 생기는거예여~ㅋ)
은성전자 반주기(워크미디어) 사장님이 후배님 만났다고...윗층회의실로 올라가시네여~
아마도....선후배간에 수다삼매경에 빠질려나봐유~~ㅎㅎ
희나리삐삐 는.....삼실에 남고...(신곡넣으시려는 분들이 몇분 계셨거등여~)
희나리7080 라이브카페 손님들이 거의 7080 세대들이어서....신곡을 그렇게 자주 넣지는 않거든여..
1~2년에 한번정도...은성박스는....월3만원씩해서 1년360,000 결재하거든여...
(삐삐네는 카드결재라 그래여~현금은 멀리에서도 한달씩 넣을수 있다고 합니다 )
중요한것은 1년넘는단위는 1년도~2년도~360,000 이라는거....
희나리라이브는 오랫동안 넣지않았어여...(아마도, 작년에 몇달 쉬었기에~ㅠㅠ)
글구, 박스안에 무슨 시모스 밧데리라고 있는데여~
그건, 계속 사용할때는 변함이 없는데....잠깐이라도 전기코드가 꽃아있지 않으면 죽는다네여~ㅠㅠ
그래서....밧데리 하나교환하고... (이거는, 은성전자사장님이 써비스로~~ㅎㅎ 앗싸~)
한참후에 ,
서울공고 60회 은성전자 (워크미디어 ) 선배님,
건아들 멤버였었던 희나리7080 라이브카페 마스타님 (서울공고 63회)
두분 내려오셔서는....(아마도, 30~40십분?)
선배님이 만든....박스를 자랑하시네여~아직, 홍보단계라고.....
엘프 회사것보다 더~~좋다고~~ㅎㅎ
근데, 엘프 반주기 회사 사장님 두 서울공고 후배님...
몇년전, 희나리7080 라이브카페 에 동문님들과 오셨을때....
왜808 안쓰냐고...? 바꾸라고....그랬거든여~ㅎ
역시, 서울공고가 공부는 잘하시는 분들이 있는듯 해여~~
희나리7080 라이브마스타님 두...맨날 하는말~
전자과 를 졸업해서는....여지껏,
전자기타를 연주하고 있다고......(썰렁한 유머를...ㅎ)
은성전자 반주기(워크미디어) 사장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가격도 100만원대 이고 (홍보기간에만) ....섹소폰 연주하시는 분들이 좋아할것 같드라구여~
(희나리삐삐는 잘모르지만~ㅋ)
오후3시가 다되어서야....안양에 도착했어여~
에구~~에구~~밤에 일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낮에 움직이면 힘드네여~~~특히, 희나리삐삐 는 더~~~ㅠㅠ
암튼, 오랫만에 서울 나들이 다녀왔답니다.
색소폰 연주하시는분들 한번~읽어보셔유~
유명한 김원용 섹소포니스트의 연주곡도 들어있다네여~
- 출생:1954년 6월 22일 (만 64세)
- 소속: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회장, 한국색소폰협회 회장
(2010년49 회 황재익선배님이 쓴글)
고딩때 밴드부에서 나팔불던게 지금은 키보드로 바꿔 후배사회로 교가, 한바탕 노래자랑 연주중,
후배중에는 가수, 서수남, 코메디, 방일수, MC; 이홍렬, 김재환, 축구 안정환... 재줏꾼이 많지요
서울공고가 대한민국 독립에 끼친 영향, 정말 대단하네
[동작 민주올레⑦] 동작지역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 탐방 - 대방길
'동작 민주올레' – <대방길> 7회
▶ 코스안내 : ①서울영화초 - ②영등포고 - ③유일한기념관 - ④실미도 사건의 현장 - ⑤캠프 그레이 미군기지 터
성남고에서 나와 이제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대방길의 마지막 코스인 서울공업고등학교에 가는 길.
⑩ 독립운동가의 산실, 서울공고
서울공고는 들어서자마자 멀리 보이는 본관만 봐도 예사롭지 않은 학교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서울공고 본관 건물(서울시 등록문화재)
1899년 관립 상공학교로 시작한 서울공고의 역사는 1939년 대방동 시대를 연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울공고가 지금의 대방동에 자리 잡는 것은 1939년의 일이다. 하지만 서울공고의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899년 명동에 설립된 관립상공학교(4년제)가 그 뿌리이니 가히 '실업교육의 발상지'라고 할만한 학교가 바로 서울공고이다.
서울공고는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학교에 걸맞게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민족주의계 독립운동가 박찬익과 양근환, 권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법무부장과 주화대표단 단장 등을 역임하면서 항일외교의 최전선에 섰던 박찬익(1884~1949)은
박찬익은 1910년 경술국치 직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종교에 기반한 독립운동을 벌인 이래 줄곧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 서울현충원 임시정부 요인 묘역 아래 편 왼쪽에서 세번째가 박잔익 선생의 묘다
1917년 경성공업전습소를 졸업한 권준(1895~1959)은 광복회 활동을 거쳐 중국으로 망명한 후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했다.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 김재봉, 이준태, 김약수, 구영필, 오기수, 김임형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 김재봉(1890~1944)과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 이준태, 북풍회 출신의
이들은 1920년대 일제의 야수와 같은 탄압에 맞서 노동자와 농민 등 기층 민중을 독립운동의 대열로 조직하는 데 앞장섰다.
▲ <김재봉 생가>와 <김재봉 어록비>
김재봉의 고향인 안동시 풍산읍 오미마을에는 김재봉의 생가와 <김재봉 어록비>가 있다. 어록비에 새겨진
"조선독립을 목적하고...."은 김재봉이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동방피압박민족대회에 참석했을 때 작성한
이력서에 나와 있는 "조선독립을 목적하고 공산주의를 희망함"이라는 문구의 일부이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었으면서도
여전한 이념대립으로 있는 그대로의 문구를 표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만주와 국내를 넘나들다가 고향 의성에서 비밀독서회를 조직해 활동하다 여러 차레 옥고를 치른
박찬익과 더불어 '공업연구회' 회원이기도 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 의원도 지낸
의열단 출신이기도 한 구영필은 1922년 만주 길림성 영고탑에 정착했다. 영고탑에서 저명한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 김사국과
▲ 구영필의 죽음을 알리는 동아일보 기사(1926. 10. 18)
당시에도 구영필은 변절자가 아니라 군정서를 만들고 간도로 이주해오는
조선인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던 인물로 보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
서울공고 선배들은 1919년 3.1혁명에도 이형영 등이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1938년 연행 당시 박병윤은 영등포에 있던 경성방직에 취직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노동운동에도 관여하고
서울공고는 이러한 전통 때문에 해방 정국에서도 좌파가 세력을 형성한 학교로 유명했다고 한다.
민주화운동에도 앞장 선 서울공고 학생들
서울공고 학생들은 선배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주화운동에도 적극 나선다. 1959년 3월에는 '교사 몇 사람을
▲ 서울공고 학생들의 맹휴 소식을 알리는 경향신문(1959. 3. 5)
서울공고 학생 2,200명은 교장 사생활에 대한 해명, 진학반을 편성할 것 등을 요구하면서 전원 등교거부를 했다.
언론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지만, 1965년에는 휴교령도 내려지고 개강 이틀 만에 다시 휴교령이
1967년 6.8 부정선거 반대운동 때도 서울공고생들은 "300여 명이 교정에서 성토대회를 개최하고 데모에 돌입"했다고 한다.
<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전환시대의 논리> 등으로 1970, 1980년대 젊은이들에게 감명을 줬을 뿐만 아니라
본관 뒤편으로 가면 동문회에서 운영하는 '서울공고 역사관'이 있다. 그런데 역사관에 기껏 박찬익 선생만 소개돼 있을 뿐
동문회에서 '서울공고 역사관'을 대폭 개편하는 결단을 내려준다면 재학생은 물론 동작구 지역 사회에도
함경북도 경성이 고향이 고향인 한정실은 1940년 경성공업학교에 진학한 이후
그런 한정실이 2년 후 돌연 육군 소년비행병 학교(사이타마현 구마가야)에 입학한다.
일제 강점기 가미카제 특공대로 죽은 조선인은 19명이었다고 전해진다.
사망 당시 한정실의 나이는 우리 나이로 겨우 스물(1926년 생)이었다.
(* 이번 기사로대방길 탐방을 마치고, 다음 회부터는 '[동작 민주올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