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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s.As. 탱고여행기

Buenos Aires 탱고 여행기 최종편

작성자제이드|작성시간19.12.10|조회수338 목록 댓글 4

수요일 Facundo 의 그룹수업이 끝난후 루시&디에고가 추천해준 Maldita milonga에 갔다. 그런데 이곳은 비탱고인이 더 많은듯 했다. 아마 Live 연주를 하는 오케스트라와 다양한 공연이 더 유명한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했을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관람 모드로 빽빽히 앉아 있었고 먼저 와있던 제이미가 맡아놓은 자리마저 누군가 의자를 빼가서 앉을 자리도 없었다. 곧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반도네오니스트가 세 명이나 있어서 소리가 굉장히 역동적이고 웅장했다. 탱고곡이지만 춤을 추기엔 좀 어려운 연주곡인데도 사람들이 무대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좁은 무대위에서 살벌하게 춤을 추는 고수들도 있었다. 음악도 어렵고 무대도 좁아서 선뜻 춤을 추러 나가지지 않았다. 뒤이어 탱고 군무와 Zamba라는 아르헨티나 전통춤 공연도 있었다. Zamba는 Chacarera와 비슷한데 남녀가 각각 하얀 손수건을 들고 추는게 다르다. 탱고 군무는 좀 어설펐지만 Zamba는 볼만했다.
제이미가 La Viruta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La Viruta는 수요일밤의 유명한 밀롱가다. 새벽 1시나 되어야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했는데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어서고 있어서 지금 가면 딱 좋은 시간이었다. 제이미 혼자서 지난주 수요일에 갔을땐 별로여서 실망스러웠지만 나와 빅터님이 한번은 경험해야될 것 같다고 했다.
La Viruta 는 장소가 꽤 넓었다. 플로어를 중심으로 테이블이 2중, 3중으로 둘러서 있었다. 게다가 무척 어두웠다. 제이미가 왜 별로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플로어 바로 옆 좋은 자리에 앉지 못한다면 어두운 구석에 앉아있는 동양인 땅게라는 까베가 도저히 안될 구조였다. 우리는 bar 테이블 앞에 우두커니 5분 이상 서있었다. 오거나이저도, 자리를 안내해주는 웨이터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굉장히 불친절하고 배타적인 느낌이었다. 불청객처럼 눈치보며 서있는데 누군가 우리쪽으로 와서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꼬밀뽀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여자의 남자친구 Jorge였다! 세상에 여기서 또 만나다니 너무 반가웠다. 그는 우리를 자기 자리로 안내했다. 플로어 바로 옆 중앙에 꽤 넓은 테이블을 그 혼자 차지하고 있었다. 여자친구는 어디갔냐고 물었더니 이과수폭포 관광 갔다와서 뻗었다고 했다. 여자친구가 잠 든 사이 춤이 고파서 혼자 살짝 나온 모양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여친은 초보지만 그는 이미 Tango라는 마약에 중독된 사람일텐데. 어쨌든 갈 곳 몰라 우두커니 서있던 우리에게 그는 구세주와 같았다. 친절한 그는 뭘 마시겠냐고 묻고 직접 바에 가서 주문까지 하고 왔다. 그는 내게 그 날 꼬밀뽀에서 신발 몇켤레 샀냐고 물었다.
'4켤레'
'와! 생각보다 적게 샀네~ 그 날 점원이 어떤 칼라를 원하냐고 물었을때 Everything! 이라고 하는걸 들었는데 ㅎㅎ 내가 아는 어떤 여자는 11켤레 샀어'
'진짜? 설마 니 여자 친구는 아니겠지'
'아니야 탱고를 엄청 사랑하는 내 지인 얘기야'
난 기가 막히다는듯 웃었지만 나중에 내가 산 신발을 전부 합쳐보니 11켤레였다.
그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오른쪽 bar 테이블 앞쪽에서 어떤 땅게로가 까베를 했다. 플로어 건너편은 너무 멀어서 까베가 원활하지 않으니까 땅게로들이 대부분 가까운 bar쪽으로 와서 적극적으로 까베를 했다. 그와 춤을 추다보니 굉장한 고수였다. 그리고 어딘지 낯이 익었다. 한곡이 끝나고 그가 내게 말했다.
'미셸 나 모르겠어? 우리 전에 만나서 춤도 췄는데'
'???'
제이드라는 닉네임을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잘 못알아 들어서 미셸이라는 영어이름을 썼었다. 그 이름을 그가 알고 있는 것이다.
아! 토요일 낮밀롱가에서 만났던 탱고선생님이었다. 원래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인데 매일 낮밀롱가 밤밀롱가 그룹수업에서 워낙 많은 땅게로들을 만나다보니 내 기억의 용량을 초과했나 보다. 같은 사람을 다른 밀롱가에서 만나 춤을 추니 반가웠다. La Viruta는 특이하게 꼬르띠나가 없었다. 탱고곡이 쉴틈없이 흘러나왔다. 좋으면 더 춰도 되고, 싫으면 두 곡쯤 추고 '그라시아스'하고 들어오면 된다. 탱고선생님과 6곡을 추고 들어오니 우리의 구세주 Jorge가 춤신청을 했다. 흔쾌히 나갔다.
와! 그런데 그는 생각보다 훨씬 탱고를 잘췄다. 미국에서 배운 탱고같지 않았다. 왜 여친에게 탱고를 배우게 하고 아르헨티나까지 데리고 왔는지 알 것 같았다. 그도 한곡 끝날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진심으로 즐거워하는게 느껴졌다. 탱고는 참 솔직한 언어다. 말 한마디 없이도 상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한딴따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며 Jorge는 내게 말했다.
'당신은 내가 만나 춤 춘 사람중에 최고의 댄서야'
그 말을 들으니 아르헨티나에 와서 왠지 주눅들고 겸손하다 못해 바닥을 쳤던 자존감이 확! 높아졌다.
이후 쉴틈없이 춤을 췄다. 대부분이 아르헨티나 현지인들이었다. 다른 밀롱가보다 관광객이 적은것 같았다. 자리로 돌아와 보니 Jorge가 없었다. 여자친구가 깨서 우리 테이블 술값을 다 계산해주고 갔단다. 내게 인사 못하고 가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착하고 친절한 Jorge 복받고 행복하길 빈다^^


목요일엔 De Querusa milonga 에 갔다.밀롱가 장소가 복층구조로 되어있어 특색 있었다. 이 곳도 로컬 땅게로스들이 많이 온다고 디에고가 말했는데 역시나 어제의 탱고선생님도 또 만났고 사진에 보이는 베이지색과 흰색 컴비네이션 티셔츠를 입은 빅토르도 엘베소 낮밀롱가에서 만났던 땅게로다. 까닝에서 만났던 뽀글머리 이태리인 땅게로도 만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지 일주일도 안되서 땅게로들을 두번 세번 겹쳐 만난다는건, 여기 탱고판도 좁은 것일까? 아니면 내가 핫한 밀롱가만 잘 찾아다니는걸까?
이 날은 록산나 빈첼리 드레스샵을 두번째로 털고 와서인지 곧 지쳤다. 최근 몇년간 이렇게 빡세고 알차고 바쁘게 살아본 적이 없었다. 마음은 뿌듯했지만 체력이 바닥나는게 느껴졌다. 며칠 후엔 한국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생각때문에 매순간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보니 더 빨리 지쳤다. 빅터님과 함께 먼저 퇴근하고 제이미는 남아서 또 다른 밀롱가로 넘어가기로 했다.
탱고를 배우고 나서 지금까지, 10년만 일찍 탱고를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늘 갖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Caning 밀롱가에서 진귀한 광경을 보았다. 한 여인이 휠체어에 타고 있었고 그 휠체어 양쪽 팔걸이에 긴 옷소매(특별히 제작한)를 묶은 남자가 빙글빙글 휠체어를 리드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춤추는 사람들도, 자리에 앉아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너무 아무렇지 않았다. 아마도 그 커플은 자주 그렇게 와서 춤을 추었나 보다. 그들은 진정 탱고에 푹 빠져서 행복해 보였다. 난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무의미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10년 더 젊었어도, 10년 더 늙었어도, 내가 건강하게 두 발로 탱고를 추고있음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금요일엔 밀롱가를 하루 쉬고 우리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동안 너무 빡빡한 일정에 쫓겨 좋아하는 와인도 한잔 못하고 아르헨티나 여행 소감도 나누지 못했다. 각자 강습 후에 제이미와 만나서 산텔모 마켓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우버택시 기사가 내려준 곳에서 아무리 찾아도 산텔모 마켓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시장안에 숨어있는 맛집에서 현지의 독특한 음식을 즐겨보자는 원대한 계획이었는데 왔다갔다 30분을 헤매도 시장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던 아주머니 두 분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이분들도 산텔모 마켓을 몰랐다. 빨리 모른다고 말해주면 좋을텐데 친절이 지나쳐서 두분이 구글맵을 보며 토론과 연구를 거듭했다ㅜㅜ
착한 제이미는 그냥 가지도 못하고 머리를 맞대고 또 같이 연구하고... 그 와중에 빅터님의 폰카메라를 보고 포즈 취하는 나. 그 아주머니들 덕에 또 30분을 낭비한 우리는 결국 포기하고 가까운 아무 레스토랑에나 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위 사진들은 어젯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아직 남아있는 제이미가 혼자서 기어코 찾아가 찍어 보내준 산텔모 마켓 풍경이다. 그 안 맛집에서 저 맛난것도 먹었단다. 장하다 제이미!!!♡

산텔모 시장은 못찾았지만 다행히 감자빈대떡? 맛집을 찾아 들어가 와인도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밖에 노천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시켜먹는걸 보고 우리도 저걸 달라고 주문했는데 덩어리가 씹힐 정도로 다진 감자안에 치즈와 베이컨을 넣고 두꺼운 빈대떡처럼 구운 것이 아주 맛있었다. 메뉴를 보고 시켰으면 절대 못시킬 음식이었다. 함께 나눈 많은 대화들은 가슴에 담았다.

슈즈도 이미 9켤레나 샀는데 디에고가 자기들이 사는 신발가게를 말해준게 화근이었다. 와인 마시다가 제이미에게 말했더니 거기도 가보자며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 Flabella 라는 이름의 이 곳은 완전 도떼기시장 같았다. 쇼윈도에 진열해놓은 신발은 중고인듯 이미 낡았고 한쪽엔 쌓아놓은 재고박스들이 어지러웠다. 게다가 주인아저씨의 아들들인지 손자인지 모를 개구장이 녀석들 둘이 손님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소리지르고 울고 아주 생난리를 쳤다. 그런데 주인아저씨가 포복절도할 코메디언이었다. 쇼윈도에서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골라서 주인아저씨에게 내 사이즈를 갖다달라고 했더니 지하창고에 들어가서 한참만에 잔뜩 신발상자를 안고 온다. 그런데 막상 풀어보면 다른 디자인의 신발에 사이즈도 들쭉날쭉 가관이다. 이건 다른 신발인데요? 하면 무조건 신어보고 맞으면 그냥 가지란다. 선물이라고 ㅋㅋ
'슈퍼 프라이스~~~'
'프레젠또~~~~'
'슈퍼 섹시~~~'
우스꽝스러운 억양으로 외쳐대는 아저씨 때문에 눈물 콧물 짜내며 웃었다. 신발의 퀄리티도 천차만별이었다. 어떤건 싸구려 이월상품 같고 어떤건 깜짝 놀랄만큼 세련된 명품 같았다. 제이미와 빅터님은 대박 멋진 신발을 건졌고 난 사이즈가 맞는게 없어서 디자인은 맘에 안들지만 개중 제일 편안한 신발로 두 개 건졌다. 가격이 다른 곳의 반밖에 안되고 주인아저씨가 큰 웃음 주신걸로 만족한다^^

토요일, Lucy&Diego 에게 마지막 강습을 받았다. 총12시간의 개인강습을 받는동안 많은걸 배웠다.
전혀 몰랐던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앞으로 무엇에 집중해서 연습하고 훈련해야 할 지 명확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뭔가 허전하고 아쉬웠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내 몸이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한 달만 더 있으면서 다양한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는다면 변화가 있을까? 머리속이 복잡했다. 루시&디에고에게 세 시간을 내리 강습 받고 Facundo에게 개인강습을 받기로 한 스튜디오로 터덜터덜 발길을 옮겼다. 어제 제이미가 먼저 파쿤도에게 개인강습을 받고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동안 루시&디에고의 강습은 나와 빅터님이 커플로 받았기에 파쿤도에게는 각각 개인강습을 받기로 했다. 빅터님이 먼저 파쿤도에게 강습 받는동안 스튜디오 앞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작은 카페 구석 테이블엔 대낮부터 불콰해진 할아버지가 이미 다 마신 와인병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반대편 좀 떨어진 테이블엔 길고 떡진 머리의 아저씨가 역시 와인을 마시며 앉아 있었다. 그 사이 어중간한 어디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음은 맥주라도 벌컥벌컥 마시면 속이 좀 시원할 것 같았지만 파쿤도와의 강습이 남아있어서 간신히 참았다. 커피를 시켰더니 안된단다. 카페에서 커피는 안되고 술만 되는 아이러니... 물 한병을 시켰다. 할아버지가 자꾸 흘끔흘끔 쳐다봤다. 멀쩡하게 생긴 동양여자가 물 한병을 앞에 놓고 축처져 앉아있는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와서 지금까지 지내온 9일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강습을 통해 뭔가 되는 것 같아 신났었고, 밀롱가에서 멋진 땅게로를 만나 들뜨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여전히 모르겠고 막막하다. 너무 피곤하고 아프다.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욕심만 앞서서 오늘 하루동안 개인강습 4시간에 낮밀롱가에 루시 디에고가 초대한 밤밀롱가까지 쉴틈없는 계획을 잡았지만, 일정의 반도 소화하기 전에 이미 녹초가 돼있었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열정은 욕심이 아닐까? 갑자기 눈물이 났다. 다 집어치우고 호텔로 가고 싶었다. 여기서 퍼질러 울면 할아버지에게 너무 좋은 구경거리가 될거 같아서 이를 악물고 참았다. 냅킨으로 눈가에 번진 눈물을 찍어냈다. 할아버지가 뭐라뭐라 말을 했다. 나한테 하는 말인가? 하고 고개 들어 쳐다보니 건너편 떡진 머리 아저씨한테 하는 말이었다. 아저씨가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을 했다. 나는 물병을 챙겨들고 서둘러 나왔다.

파쿤도는 스튜디오에 들어서면서부터 재미있는 제스츄어와 농담으로 나를 웃게 만들었다. 단 1분의 시간도 아껴주려고 신발을 갈아신으면서 나에게 물었다.
'자~ 뭘 원해? 내가 어떻게 해줄까?'
잠시 내가 원하는걸 생각했다. 더이상의 가르침도 싫었다. 앞으로 꾸준히 연습할 일만 남았다.
'우리가 오늘 처음 밀롱가에서 만났다 치고 춤을 추자. 그럼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을거야'
'좋아 그럼 까베세오를 먼저 해야지'
갑자기 그가 구석으로 가서 다리를 꼬고 벽에 기댄채 담배 피는 연기를 했다. 한쪽 눈썹을 까딱거리면서 나를 쳐다봤다. 난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그에게 고개짓을 했다. 그랬더니 화난 표정으로
'헤이! 레이디! 내가 까베하기 전에 먼저 하면 어떡해 도도하게 쳐다보기만 해야지~다시 해'
이번엔 도도하게 가만히 쳐다봤다. 그가 섹시한 댄서처럼 내게 다가왔다.
Pugliese의 곡에 맞춰 그와 탱고를 췄다.
그의 리드를, 숨결을, 마음을, 음악을, 온 몸으로 느꼈다. 그가 살토를 하면 사뿐히 날아올랐다.
이 세상에 오로지 그와 나 둘뿐인 것 같았다.
한 곡이 끝나자 '와우!' 탄성을 내뱉은 그가 숨을 고르느라 잠시 이리저리 서성였다. 나도 숨이 차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넌 이미 댄서인데 뭐가 문제야? 조금 전에 우리가 춤출때 머리속이 복잡했어? 아니지 오직 음악과 너 자신을 느꼈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또 춤추자.' 그가 말했다.
그렇게 90분 내내 우리는 춤을 추었다. 스튜디오 주인이 들어와서 쫓아낼때까지.

걸어서 20분 거리인 호텔까지 파쿤도가 데려다 주었다. 우린 많은 얘기를 했다.
'탱고는 단순한 동작이 아니야.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면 탱고가 스포츠와 다를게 뭐가 있겠어. 가끔은 아크로바틱이 되기도 하지. 아까 너와 춤출때 탱고가 너에게 의미하는 깊은 감정을 느꼈어. 넌 이미 턴이나 사까다, 볼레오에 연연하지 않고 니 안에 잠겨있던 어떤 것들을 표현하고 있었어. 그래서 놀랬어'
그를 만나기 전에 카페에서 눈물을 찍어낸 얘기를 했다. 그가 나를 치유해줬다고 말했다.
'내가 널 치유해준게 아니야 탱고가 한거지. 나에게 했던 것처럼...'

파쿤도와의 만남 후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루시와 디에고가 초대한 마지막 밀롱가에 갔다. 이전까지 갔었던 어떤 밀롱가보다 멋진 장소, 멋진 분위기였다. 디에고 말로는 '라 보카'의 분위기와 똑 닮았다고 했다. 오케스트라의 live연주도 너무 훌륭했고 90세는 되어보이는 할아버지 가수의 노래는 심금을 울렸다. 나는 파쿤도의 말을 되새기며 내 춤을 췄다. 땅게로 눈치도 보지 않았다. 내 온 몸으로 내 길을 갔다. 처음으로 음악이 들렸다. 두 번씩 춤신청한 땅게로가 둘이나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일요일 아침 '라 보카'에 갔다. 탱고가 태어나 자란 곳을 안 보고 떠날 수는 없었다. 늦은 저녁 비행기여서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모든 건물이 알록달록 총천연색의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관점에 따라 유치찬란하기도 하고, 힙하기도 했다.
음식점마다 전속 댄서들이 탱고를 추고 있었다. 수준은 형편 없었지만 그런대로 관괭객들에겐 탱고를 맛보도록 분위기를 돋워주었다. 그 중에 제일 크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맥주와 안주로 점심을 대신했다. 라보카는 소매치기가 많기로 유명하다. 우리가 자리잡은 음식점 입구에도 사설 경호원이 떡 버티고 서서 손님들이 행여 불상사를 당하지 않을까 지켜보고 있었다. 나름 음식점들의 자구책인듯 했다.

라보카 항구쪽으로 나가 잠시 산책을 했다.
100년 전에 이 항구로 배를 타고 들어온 선원들이 고단한 삶의 애환을 탱고를 추며 달랬겠거니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날아와 이 곳을 거닐며 탱고에 울고 웃는 한 여인이 있을거라는걸......

우연히 들어간 카페가 탱고 역사 박물관 같았다.
다리엔조, 까나로, 피아졸라의 사진은 물론 옛날 탱고음악을 듣던 축음기까지 탱고의 모든 것을 전시해 놓았다. 그 가운데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그들과 함께 숨쉬는것 같았다.
10일간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이 모두 끝났다.
참 멋진 여행이었다. 제이미와 빅터님이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 엄청난 정보를 공유해서 한 달같은 10일을 만들어준 제이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길치인 내가 단 한 번도 헤매지 않게 길라잡이를 해주시고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차곡차곡 기록해주신 빅터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여행기에 쓰인 사진은 거의 다 빅터님이 찍어주셨다. 우리 세 사람은 환상의 복식조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나의 첫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은 대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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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라우 Lawoo de park | 작성시간 19.12.10 탱고를 오래할 수록
    느껴지는건
    단지 춤이라기보다
    그대로의 자신을
    찾아가는 길인듯 해요.

    그래서 걷는 춤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듯~

    자신을 향해 한걸음 더
    내 딛은 탱고의 길 위에서
    멋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네요^^
  • 작성자루카스 | 작성시간 19.12.10 드디어 여행이 끝났네요..
    여행기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긴 글 써주신 제이드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생생한 현장을 전달해주신 촬영감독 빅터님께도 감사드립니다..ㅎㅎ
  • 작성자러브 | 작성시간 19.12.10 멋진 제이드님,빅터님!!!
    조만간 만나요~
  • 작성자섀넌(Shannon)❤️ | 작성시간 19.12.10 여행은 떠나기보다 돌아오기 위한
    그리고 돌아와서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한거리고 생각해요. 잘 돌아와주셔서 감사하고, 그 소중한 경험들을 이렇게 공유해주신 정성과 따뜻한 마음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제이드님과 빅터님의 이번 알헨티나에서의 열흘은 물리적 시간보다 경함적. 심리적으로 헤아릴수 없이 값진 시간이셨을듯요. 정말 멋지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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