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7. 수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나는 내 가족을 정말로 사랑하는가?" 히브리서 10장
선교사에게 필요한 것 중 가장 우선순위를 들라고 한다면 물론 영성, 하나님과의 관계일 것이다. 그러나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적응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디를 가든지 적응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선교사들끼리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잠잘 수 있을 때 자고, 씻을 수 있을 때 씻어라."
그만큼 선교사의 삶은 환경에 적응하는 삶이라는 뜻이 아닐까 한다.
미국에 왔으니 또 미국에 적응해야 한다.
이곳에는 우리 딸이 있고, 곧 아기를 출산하게 되기 때문에 한 달 정도 산후조리를 도와주다가 케냐로 들어갈 예정이다.
미국에는 한국처럼 산후조리원이 없다.
미국에는 왜 산후조리원이 없는지 모르겠지만, 대신 집으로 도우미를 부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 비용이 200달러라고 한다.
요즘 환율로 계산하면 거의 30만 원이다. 만약 한 달 동안 매일 도우미를 부른다면 약 900만 원이 된다.
그러니 친정엄마들이 외국에 사는 딸들의 산후조리를 위해 많이 와 주는 것 같다.
집에 와 보니 내가 그동안 집을 비웠으니 청소도 해야 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짐도 정리해야 한다. 하여튼 이것저것 적응, 또 적응, 또 적응이다.
나는 적응할 때 가장 좋은 태도는 무조건 감사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감사,
저것도 감사,
무조건 감사,
그리고 대적 기도도 열심히 해야 한다. 짜증 날 일도 많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또 선교지에 있다가 미국으로 들어오면 문화 충격도 있다.
나는 사실상 32년 동안 미국을 떠나 살았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데, 돌아온 미국이 어떻게 금방 익숙할 수 있겠는가.
이것저것 새롭게 적응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러나 여행을 다니면서 늘 드는 생각이 있다.
"이 땅에서 우리는 나그네구나."
우리가 살아가는 본향은 따로 있다. 내가 미국에 살든, 한국에 살든, 케냐에 살든 결국 이 땅은 잠시 머무는 나그넷길이다.
또 여행하다 보면 내가 미리 준비해서 가져온 물건을 실제로 사용하게 될 때 마음이 참 뿌듯해진다.
반대로 "그것도 가져올걸" 하며 아쉬워할 때도 많다.
준비를 잘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마음이 들었다.
내가 준비해 온 것을 사용할 때 기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준비시키시고, 훈련시키시고, 다듬으시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맡기시기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셨는데, 준비된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사용될 때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사용될 수 있도록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상황이 바뀌어도 준비되어 있고, 환경이 달라져도 준비되어 있고, 하나님이 갑자기 새로운 일을 맡기셔도 준비되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말성경 히브리서 10장
24. 또한 우리는 사랑과 선한 일들을 격려하기 위해 서로 돌아봅시다.
25.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들 스스로 모이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고 오히려 서로 권면합시다. 또한 그날이 다가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그렇게 합시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질수록 성도들이 더욱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날짜를 계산하거나 세상의 징조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돌아보고, 사랑과 선한 일을 격려하며, 함께 모여 권면하는 것이다.
24절에서 "서로 돌아봅시다"라는 말은 단순히 안부를 묻는 정도가 아니다.
상대방의 영적 상태와 삶을 관심 있게 살피고, 그가 믿음 안에 잘 서 있도록 도와주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 목적은 사랑과 선한 일을 격려하는 데 있다.
믿음은 혼자 자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세워 주는 가운데 더욱 성숙해진다.
25절에서는 모이기를 힘쓰라고 권면한다.
당시에도 핍박과 여러 이유로 모임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재림의 날이 가까울수록 성도들은 더욱 함께 모여 서로를 격려해야 했다.
왜냐하면 말세가 될수록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고 믿음이 약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성경은 재림을 준비하는 삶을 이야기할 때 단지 개인적인 경건만 강조하지 않는다.
물론 베드로후서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흠도 없고 점도 없고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4)"라는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정결함도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 히브리서는 이웃을 향한 사랑을 강조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요즘도 말세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재림을 준비해야 할까?
많은 사람은 재림을 준비한다면서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한다.
더 많은 집회에 참석하고,
더 많은 사역을 하고,
더 많은 활동을 하려고 한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 히브리서가 강조하는 것은 사랑이다.
특별히 가장 가까운 이웃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이웃은 낯선 사람이 아니다.
바로 가족이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부모가 자녀를 품지 못하면서 이웃 사랑을 말하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물론 가정마다 상황은 다르다.
어떤 가정은 남편이 믿음이 더 좋고, 어떤 가정은 아내가 믿음이 더 좋다.
어떤 가정은 한 사람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배우자는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상대방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기다려 주고 품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만족하지 못한다면 상대방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나에게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면 좋겠다.
믿음이 더 성숙한 사람이 있다면 그 성숙함은 상대방을 누르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품는 데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을 더 잘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이 받은 사람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더 많은 책임도 따르게 된다.
무엇보다 마음에 쓴 뿌리를 가지고 이웃이나 가족을 대하면 안 될 것 같다.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말이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허물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큰 용서와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한 것이 성경의 원리가 아닐까 한다.
그러니 예수님 더 잘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 따르는 것이 더딘 사람들을 향하여
더 많이 기도해야 하고,
더 많이 이해해야 하고,
더 많이 참아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신앙고백보다 부모의 모습을 먼저 본다.
아이들이 집 안에서 날마다 다투고 상처 주는 부모를 보면서 천국을 배우기는 어렵다.
반대로 서로를 존중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부모를 보면서 아이들은 천국을 배운다.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배우고,
가정을 통해 교회를 배우고,
사랑을 통해 천국을 배운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은 단순히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 내 가족을 더 품어 주는 것이다.
오늘 내 배우자를 더 이해하는 것이다.
오늘 내 자녀를 더 축복하는 것이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내 이웃 대접하기를 힘쓰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억울해도 조금 더 참을 수 있기를,
다른 사람의 성숙이 너무 더디게 보일지라도,
그동안 나의 성숙을 먼저 기다려 주신 주님께 이전보다 더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모님이 아무리 잘못 산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 주신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부모님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고백합니다.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산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가족에게 더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내 이웃에게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내 가족을 대할 때 나는 과연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인가 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서로 돌아보아 이전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반성하고,
새롭게 계획하고,
더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쁨을 넘어서 감동을 받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
2026. 6. 17.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셨나요?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그대가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그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성숙도, 깊이, 강도
이런 것을 생각할 때에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주님 때문에
주님이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강행군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 때문에 죽고
예수님 때문에 정말로
살고 싶은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사랑하라고 한 그 이웃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가족
그 사람을 위해서 죽고
그 사람을 위해서 살고
그 사람을 위해서 참고
이것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자기 비하, 나만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만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니까
내가 이것을 견뎌내리라.
그러한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제가 말하면서도 이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그 말씀도
이 성경 말씀과 함께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의 용기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