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8. 목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내가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감정은 어떤 것이 있는가?" 히브리서 11장
어제는 한국에서 가져온 영어 결신문 스티커를 봉투에 붙이는 일을 했다. 미국에 올 때마다 나는 전도용으로 영어 결신문을 만들어 스티커로 제작해 가지고 온다.
이번에도 500장을 만들어 가져왔다.
미국은 팁 문화가 발달 되어 있기 때문에 식당이나 여러 곳에서 팁을 줄 일이 많다.
그래서 나는 작은 봉투 겉면에 영어 결신문 스티커를 붙이고 그 안에 팁을 넣어서 전달하곤 한다. 아주 단순한 방법이지만 누군가가 복음의 내용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생각에 오래전부터 해 오던 전도 방법이다.
어제는 그 500장 가운데 우선 100장 정도를 봉투에 붙여 놓고 있었는데, 마침 미국에 살고 있는 어떤 분이 영어로 된 결신문이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한국에서 보내면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설명해 드리다가 배송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 내가 가져온 것 가운데 200장을 드리겠다고 했다.
주소를 보내 달라고 했고, 나는 어제 근처에 있는 우체국에 가서 그분에게 부쳐드렸다.
미국에 오자마자 이렇게 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를 나누게 되니 감사했다.
물론 가장 좋은 전도는 사람을 붙잡고 앉아 복음을 자세히 설명하고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성경적이고 가장 열매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복음의 핵심만이라도 한 번 읽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코로나 시기부터 마스크에 결신문을 붙여 전도하는 방법을 나누어 왔다.
전도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도 하고, 마스크를 보내 드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누어진 마스크가 지금은 800만 장이 넘는 것 같다.
그러니 적어도 800만 명 이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한 번쯤은 자기 눈으로 읽어 본 셈이다. 그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어제는 막냇동생이 집에 오기로 했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애틀랜타에서 동생은 차로 약 3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동생이 온다고 해서 김치찌개도 끓이고 이것저것 먹을 것도 준비했는데 갑자기 다른 일이 생겨 오지 못하게 되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동생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했다.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가족들이 함께 모일 수 있을 것 같다. 큰동생은 워싱턴에 살고 있어서 운전하면 9시간 정도 걸리는 먼 거리이지만, 그래도 같은 동부 지역에 살고 있다. 막냇동생은 3시간 거리이니 훨씬 가깝다.
케냐에 있을 때는 가족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에 와 보니 가족들이 같은 나라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추수감사절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고 교제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큰 선물일 것이다.
미국에 오니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생각하게 된다.
늘 곁에 있을 때는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이지만, 멀리 떨어져 살아 보니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어제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를 주신 것도 감사했고, 가족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주신 것이 감사한 하루였다.
우리말성경 히브리서 11장
36. 또 어떤 사람들은 조롱과 채찍질을 당했으며 심지어 결박되고 투옥되기까지 했습니다.
37. 그들은 돌에 맞았고 톱질을 당했고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양가죽과 염소 가죽을 입고 떠돌아다녔으며 그들은 가난했고 고난을 당했고 학대를 받았습니다.
38. (세상은 그들에게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 등에서 떠돌며 살았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특별히 내 마음에 와닿는 구절은 "세상은 그들에게 가치가 없었습니다"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니 문득 32년 전 내가 케냐 선교사로 떠나게 되었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 우리 남편과 나는 이제야 좀 안정되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가구도 새로 장만했다. 비록 내 집은 아니었지만 살기 좋은 고층 아파트도 얻었다.
월급도 안정적으로 나오고 있었고 사역도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아프리카 선교사로 보내시는 것일까?
아프리카에 가려면 지금까지 마련했던 것들을 다 정리해야 했다.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계획한 적도 없던 길이었다.
그때 남편과 함께 아파트 밖으로 나가 길을 걸었다. 하늘을 바라보는데 하늘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런데 그 순간 내 안에 큰 은혜가 임했다.
주저함도 있었고 망설임도 있었을 텐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참 허무하구나."
"정말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전도서의 말씀처럼 허무하고 허무하며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것이라고 붙들고 있던 것들이 갑자기 아무 가치가 없어 보였다.
정말 가치 있는 것이 있다면 복음이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는 것, 떠나라고 하시면 떠나는 것, 그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히브리서 말씀을 보며 믿음의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살 수 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들은 세상에 가치 있는 것이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드릴 수 있었다.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도 문득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아, 이 말씀이 내 말씀이 되었구나."
세상에서 가치 없어 보여야 하는 것은 물질만이 아닌 것 같다. 건강만도 아니고 명예만도 아니다.
그렇다면 또 무엇이 있을까?
나는 나의 감정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감정이 다 가치가 없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특별히 나는 자기 연민을 경계한다.
예전에도 여러 번 묵상에 썼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자기 연민을 아주 무서운 죄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자기 연민이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매우 위험한 함정이었다.
사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상처가 있는 사람이다.
내 간증을 들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내가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미역국을 뒤엎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언제나 두 남동생과 비교되었고, 무슨 일이 있으면 동생들이 우선이었다.
대학 진학도 일찍 포기했었다.
아버지는 내가 공장에 들어가 돈을 벌어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생기면 없는 형편에도 마련해 주셨지만, 나는 큰 기대를 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신학교 등록금도 내가 직접 벌었다.
파트타임도 하고 풀타임도 하고 오버타임도 하며 열심히 일해서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자기 연민에 깊이 빠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왜 이런 대우를 받았을까?"
"왜 나는 사랑받지 못했을까?"
"왜 나는 늘 뒤로 밀려났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그 자기 연민으로부터 나를 자유하게 하셨다.
나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너 자신을 사랑하라", "너를 먼저 챙겨라"라는 말도 어느 부분은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중심적인 자기 연민으로 흘러간다면 그것 역시 가치 없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과거를 붙들며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잘못된 대우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섭섭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에 계속 머물러 있기에는 내가 받은 은혜가 너무 많다.
지금 내가 누리는 것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알게 되었다.
하나님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를 깨닫게 되었는데, 어떻게 여전히 과거의 상처만 붙들고 살 수 있겠는가.
이전에 잘못된 대우를 받았으면 어떠한가.
그 덕분에 지금 잘못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억울함으로 말하면 우리 예수님보다 더 억울한 분이 어디 계시겠는가.
주님은 모욕을 참으셨고, 부끄러움을 참으셨고, 가난과 외로움과 괴로움을 다 견디셨다.
그리고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그 사랑을 안다면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며 살고 싶지 않다.
물질도, 명예도, 건강도, 과거의 상처도, 자기 연민도 주님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지 않기를 원한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지 않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딸입니다.
예전에 불쌍했던 때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남들이 나를 돌아보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섭섭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연연하기에는 제가 받은 은혜가 너무 많습니다.
제가 누리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오늘도 저로 하여금 세상의 것에 가치를 두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여기시는 것들을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 되게 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는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하면서 자기 연민을 부추기는 때가 있는데 그런 것을 지혜롭게 대적하도록 도와주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며 기쁨을 넘어서 감동을 받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작정서 점수: 100점.
💕 사랑하는 그대여 💕
2026. 6. 18.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셨나요?
자기 연민, 자기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거
정말로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너무 불쌍하다는 거.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않는다는 거.
전도서 말씀에
“은을 사랑하는 자,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라는 말씀을
저는 어떻게 대입하느냐면
이럴 때는
이해받기를 사랑하는 자,
암만 이해받아도 만족함이
없고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인정받기를 사랑하는 자,
암만 많은 인정을 받아도
만족함이 없고, 칭찬받기를
사랑하는 사람, 암만 칭찬을
받아도 만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 한 분만, 그분이
나를 이해해 주고
나를 칭찬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으로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이러한 고백이 있게 된다면
자기 연민이 얼마만큼
부질없는 그러한 감정인가를
깨닫게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자신이 불쌍하게 여겨지십니까?
대적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 스스로를
불쌍히 여김받아야 한다.
억울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모든 나쁜 영들, 더러운 영들,
어둠의 영들은 나에게서
묶음을 놓고 떠나갈지어다.
떠나갈지어다.
나는 예수로 충만하다.
예수로 충만하다.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히 만족하다.
예수의 피!
이 기도를 드리시는 그대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그대는 사랑받기에
충분한 존재이십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