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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방

"나는 어떠한 훈련을 지금 받고 있는가?" 히브리서 12장

작성자발박사(한상범)|작성시간26.06.19|조회수25 목록 댓글 0

2026. 6. 19. 금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나는 어떠한 훈련을 지금 받고 있는가?" 히브리서 12장

나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다양한 상담 요청을 받는다.

어떤 상담은 그 한 사람에게 답을 주는 것이지만, 어떤 상담은 "아, 이것은 많은 사람이 함께 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도 들으라고 이 상담을 나에게 오게 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은 그런 상담 하나를 그대로 공유하려고 한다.

나에게 물어온 질문과, 그 질문에 내가 어떻게 답했는지를 나누려고 한다.

아마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던 분들에게도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음은 나에게 온 문자이다.

***
선교사님 안녕하세요?
염치 불고하고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문의드립니다.

저희 원가정에서 오빠가 중학교 때 친구에게 칼로 세 번이나 찔려 죽다 살아났어요.

그 이후 우리 가정은 파탄이 났고,
아직까지도 오빠로 인해 저희 엄마의 마음은 끊임없이 힘든 상황입니다.

기도해도 변하지 않는 상황이라 무력함을 느낍니다.

정말 가계의 저주가 있나요?
딸은 엄마의 삶을 따라가나요?
이런 경우에는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저는 아들 둘이라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어요.
***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요한복음 9장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

요한복음 9장에서 제자들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고 예수님께 묻는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요 9:2)

제자들의 질문은 오늘날 우리가 하는 질문과 비슷하다.

"우리 집안에 무슨 저주가 있는 걸까?“
"부모의 죄 때문일까?"
"가계에 흐르는 뭔가가 있는 걸까?"
"왜 우리 집에는 이런 일이 계속 생기는 걸까?"
그때 예수님은 아주 놀라운 답을 하신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 9:3)

예수님은 원인을 찾으려는 제자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셨다.

"누구 때문인가?"
"누구 책임인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무엇을 하실 것인가?"
였다.

사연을 들으니 오빠의 사건은 정말 큰 상처였을 것이다.

중학생 때 친구에게 세 번이나 칼에 찔려 죽을 뻔한 일을 겪었다면 그 사건 하나만으로도 가족 전체가 평생의 충격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

어머니의 마음은 또 얼마나 무너졌겠는가.

그런데 그 사건이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가계의 저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요한복음 9장의 관점으로 본다면 하나님은 지금도 그 상처 많은 가정 가운데서 일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성경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 더 이상 조상의 저주가 지배권을 가질 수 없다고 말씀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뿐 아니라 저주까지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계의 저주가 있어서 우리 집안이 이렇게 되었다"라는 생각보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서 어떤 일을 이루어 가실까?"
를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또 "딸은 엄마의 삶을 따라가나요?"라는 질문도 하셨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성경을 보면 믿음 좋은 부모에게서 악한 자녀가 나오기도 하고, 악한 부모에게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하나님은 복사본을 만드시는 분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새롭게 빚어 가시는 분이다.

어머니의 아픔이 딸의 운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머니의 눈물이 딸의 기도가 되고,
어머니의 상처가 딸의 지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혹시 나도 엄마처럼 될까?"를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 우리 집안의 아픔이 저에게서 멈추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면 된다.

요한복음 9장의 맹인은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의 인생을 단 한 번에 바꾸셨다.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도 하나님께는 하루면 충분하다.

그러니 이렇게 기도해 보시면 좋겠다.
"주님, 저는 자꾸 원인을 찾고 싶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누구 때문인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 요한복음 9장의 말씀처럼 과거보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우리 집안의 상처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게 해 주십시오.

제 자녀들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제가 두려움으로 미래를 상상하지 않고 믿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 가정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우리말성경 히브리서 12장

11. 모든 연단이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보이지만
나중에는 그것을 통해 연단된 사람들에게
의로운 평화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연단은 받을 때 즐겁지 않다.
오히려 힘들고 괴롭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연단 자체를 싫어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단의 과정만 보지 않으시고 그 연단을 통하여 만들어질 사람을 보신다.

환경을 바꾸는 것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더 큰 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단을 받을 때 중요한 것은 "언제 끝나나요?"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해 내 안에서 무엇을 만드시려는가?"를 묻는 것이다.

나는 훈련을 받을 때 훈련을 얼마나 잘 받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훈련을 받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감사 없이 받는 훈련과 감사함으로 받는 훈련은 결과가 다르다.

원망하면서 받는 훈련과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받는 훈련은 열매가 다르다.

그래서 훈련이 시작되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님, 제가 지금은 이해되지 않지만 이 훈련을 통하여 저를 더 예수님 닮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 닮게 하기 위해 어떤 훈련을 허락하실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자신을 높이기 위해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다.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셔서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사신 분도 아니셨고, 사람들의 인정을 얻기 위해 사신 분도 아니셨다.

오히려 자신을 비우셨고, 자신을 낮추셨고, 끝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닮아 가는 훈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나"를 내려놓는 훈련일 수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가만히 돌아보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는가?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는가?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는가?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가?

계속 관심의 중심에 "내가" 있다.

그러나 믿음이 성숙해질수록 관심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칭찬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우리는 자칫하면 내가 잘해서 그런 줄 착각할 수 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기뻐하고,
사람들이 나를 인정한다고 즐거워하고,
사람들이 나를 칭찬한다고 만족해한다.

반대로 비난을 받으면 낙심하고,
오해를 받으면 억울해하고,
인정받지 못하면 상처받는다.

결국 칭찬을 받을 때도 "나"이고
비난을 받을 때도 "나"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같은 훈련을 허락하시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인정받는 문제를 훈련받고,
어떤 사람은 무시당하는 문제를 훈련받고,
어떤 사람은 오해받는 문제를 훈련받고,
어떤 사람은 기다림의 문제를 훈련받는다.

그리고 그 훈련은 그 부분이 성숙해질 때까지 반복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기 존재를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받아야 할 관심,
내가 받아야 할 인정,
내가 받아야 할 칭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또 내가 받는 비난과 오해와 억울함에도 지나치게 매여 있지 않는 것이다.

"왜 나만 이래야 하지?"
"왜 나만 희생해야 하지?"
"왜 나만 오해받아야 하지?"

이 질문보다
"주님, 이 일을 통해 제가 무엇 배우기를 원하십니까?"
를 묻는 사람이 연단을 잘 받는 사람이 아닐까?

연단의 목적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예수님 닮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참으로 많은 사람의 상담을 받기 때문에
어떠한 사람의 케이스는
"와우! 이걸 문제라고 여기는 게 맞는가?
자기가 조금만 참아 주면 되는데
왜 이렇게 자기한테 맞추기를 원하는 것일까?"
상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듣는 상담 케이스들은 정말 힘든 것이 정말 많은데
그런 사람들도 묵묵히 믿음 안에서 잘 이겨내고 참는데
자기한테 조금 못 맞춰 준다고 그것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역시 한 사람 한 사람 가장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인도해 주시는 주님이 주시는 "훈련"일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문제 되지 않을 것들을 문제시하는 사람들도 있고
엄청나게 큰 문제를 믿음으로 잘 이겨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는 선택하면서 살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져 주기를 원하는지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 지기를 선택하는지..

암만 기도 많이 한들
암만 성경 많이 읽은들
더 나가서는 암만 성경을 깊게 깨달은들

정말 내가 예수님 닮기를 원하는 훈련에 있다면
오늘 하루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생각을 해야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생각하시기에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혹시 제가 힘들다고 여기는 것은 없는지요?

저는 미국에 있지만
많은 사람의 상담 케이스는 계속 저에게 오고 기도 부탁도 옵니다.

해 드려야 하는
모든 상담 케이스를 지혜롭게 잘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주님이 저를 "훈련"시키는 부분은 어느 부분인지 지혜롭고 겸손한 태도를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쁨을 넘어서 감동을 받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작정서 점수: 100점



💕 사랑하는 그대여 💕
2026. 6. 19.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셨나요?

“사랑하는 나의 딸
사랑하는 나의 아들

훈련받을 때
똑바른 자세가
필요하다는 거
명심하고 성과보다는
결과의 성공
그런 것보다는

내가 너에게 주는
훈련, 연단을
받을 때 네가
어떠한 태도로
임하는가를 내가
보고 있음을
기억할지니라.

겸손할지니라.
성실할지니라.
꾸준할지니라.

끝까지 훈련을
받아서 마칠지니라.”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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