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0. 토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내 삶의 열매는 과연 어떠한가?" 히브리서 13장
딸 수진이의 출산이 생각보다 더 늦어지고 있어서 나는 매일 같이 요즘 멘토링을 하고 있다.
멘토링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일단 감사하다고 하겠다.
요즘은 내가 설교 사역을 하러 이곳저곳 다니지를 않는지라
나름 미뤄 놓았던 생각들을 좀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감사하다고 하겠다.
내가 미뤄놓았던 생각 중 하나는
모세에 대한 성경 말씀이다.
모세가 사람들이 모세에 대해서 생각하리라고 생각했던 대로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성경 말씀에서 발견하게 된다.
성경 말씀의 배경을 보자면
모세는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 민족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니 형제들도 그것을 알아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백성들은 모세를 구원자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너를 우리의 지도자로 세웠느냐?"
라고 말했다.
모세가 생각하는 모세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세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모세는 결국 광야로 도망가게 된다.
이 본문을 적용하면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평가할 것이다.", "내가 이 정도 하면 인정해 줄 것이다.", "내 능력을 알아줄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모세도 자기 형제들이 자신을 구원자로 알아볼 것으로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는 다를 수 있고,
내가 기대하는 평가와 실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그만큼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전에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일을 하면 사람들이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살면서 내 것을 포기해 주었다고 여겨줄 것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내게 돌아온 어느 말은
아주 반대였다.
처음엔 무척 당황했다.
물론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내가 나를 생각해서 그렇게 여겨주기를 원하는 것만큼 여겨주는 것은 아님을 배우게 해준 좋은 시간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내 있는 그대로를 모든 사람이 다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도 해야 하고
내가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겠다.
요즘은 "사람의 마음에 과연 무엇이 있는가?"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는 기회들이 몇 가지 생긴 것 같다.
여러 가지 미뤄놓은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요즘은 있어서 감사하다.
우리말성경 히브리서 13장
7.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해 준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산 삶의 결과를 살펴보고 그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삶의 결과를 살펴보고"라는 말씀이 나온다.
다른 번역에는 "행실의 결말"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가 본받아야 할 리더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맺어 놓은 삶의 결과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늘 명심하며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종들에게서 하나님께서 보시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사역의 열매일까?
능력일까?
사람들에게서 받은 칭찬과 인정일까?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은 다른 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을 말씀하신다.
삶의 결말을 말씀하신다.
그러니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삶의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의 이웃들은 우리에 대해 어떠한 삶의 결과를 이야기하게 될까?
위인전을 읽을 때 가장 무게 있는 평가는 가족이 남긴 평가라고 한다.
아버지에 대해 아들이 어떻게 이야기했는가, 남편에 대해 아내가 어떻게 이야기했는가, 어머니에 대해 자녀들이 어떻게 이야기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살아 본 사람들이 남긴 증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중간까지만 잘해서는 안 된다.
죽는 그 시간까지 어떤 삶의 열매를 남기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삶의 균형을 무척 강조하는 편이다.
사역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역하는 사람의 삶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사역자의 가족도 중요하다.
내 가족에게 행복을 줄 수 없는 내가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 줄 수 있을까?
내 가족이 나를 보면서 기쁨을 보지 못하는데 내가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 안에 있는 기쁨을 자신 있게 전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도 설교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 설교자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 진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그러나 정작 그 진리를 전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남편이 사역자이기에
아내가 사역자이기에
그래서 배우자 된 그들의 삶이 기쁘고 감사한가?
남편은 아내에게 불만이 가득하고, 아내도 남편에게 불만이 가득한데, 밖에 나가서는 "예수 믿으면 행복합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기쁨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영향력이 있을까?
가장 가까운 가족이 나 자신으로 인하여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말할 때 과연 능력이 나갈 것인가!
물론 우리의 행실이 구원의 조건은 아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구원의 열매가 따라온다.
그 열매 가운데 중요한 것이 바로 행실의 열매다.
그리고 그 행실의 열매는 가장 먼저 가족에게 나타난다.
가족들이 싫어하는 주의 종이 있다면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설교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과연 나로 인해 행복한가?
이 질문을 요즘 하게 된 이유가 있다.
내가 받은 상담 케이스 때문인 것 같다.
내 눈에도 너무나 믿음이 충만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사람 같은데 그와 함께 살고 있는 배우자가 너무 힘들어하는 케이스를 상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생의 목표가 행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아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너무나 잘 믿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인데
정작 그 사람과 함께 매일 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 힘들다면...
그것 역시 돌아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늘 말씀은 "삶의 결과"를 살펴보고 그 "믿음을 본받으라"라고 말씀한다.
참 감사한 것은 아직 내 삶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변화될 시간도 있고 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시간도 남아 있다.
내 나이 60대에 들어서며 더욱 자주 생각하게 된다.
과연 내 삶의 결과는 무엇일까?
내 삶의 열매는 무엇일까?
내 행실의 결말을 사람들이 보면서 내 믿음을 본받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주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제 마지막의 삶의 열매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내 이웃들도 내 삶의 열매를 보면서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을 기쁘게 인정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요즘 계속 멘토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멘토링하러 나갑니다.
멘토로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멘토링을 받는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꼭 필요한 것을 전할 수 있는 지혜와 명철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쁨을 넘어서 감동을 받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
2026. 6. 20.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셨나요?
가족과의 관계 대한
이야기는 참 민감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희 남편이 이전에 저한테
해준 말이 하나 있는데요.
저에게 뭐라고 말했냐면
“여보 나는 당신하고
살아갈 때 어떤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지 알아?”
그래서 내가 “무슨 말씀?”
그랬더니 내 남편이 하는 말이
“너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그 말씀 붙들고 살아간다고
해서 우리 둘 다 그야말로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우리 이웃의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교회 믿음의
공동체의 지체들 한 사람
한 사람,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들 한 사람 한 사람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흥하기를 원하고
내가 쇠하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있는
공동체 어느 곳에라도
평화, 기쁨, 양보, 겸손,
감사가 충만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아마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너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십자가는 등에 지고
앞에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기쁨과 감사로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하는 그리스도의 길을
잘 가는 그대와 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