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2. 월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누가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리움 받을 수 있을까?" 야고보서 2장
어제는 묵상을 올리지 않았다.
보통은 녹음하지 않는 날은 있어도 글로 쓴 묵상 자체를 올리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어제는 의도적으로 묵상을 올리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가능한 주일에는 묵상을 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주일에도 교회에 가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고, 나의 묵상이 도움이 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내가 올리는 묵상은 단순히 글 하나를 올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묵상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분들이 계시고, "사랑하는 그대여"와 같은 미니 설교, 그리고 「주님으로부터」의 짧은 기도문도 모두 누군가의 수고를 통해 녹취되고 편집된다.
특별히 내가 묵상을 음성으로 녹음하게 되면 유튜브에 올리기까지 편집하는 데만 적어도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나야 매일 묵상을 쓰는 사람이라 매일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고 무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묵상을 온라인에 올리고, 이메일로 보내고, 녹음을 편집하는 모든 스태프는 내가 365일 쉬지 않고 올리면 그분들도 365일 하루도 쉬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그분들에게도 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중국어 번역팀은 열 분 정도가 되는데, 그분들이 내가 올리는 모든 묵상을 번역하고 녹음까지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모두가 사명감으로, 또 사역이라는 마음으로 기쁘게 섬겨 주고 있어서 늘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가능한 한 주일만큼은 모든 분이 교회에 가고, 교회에서 맡은 사역도 감당하고, 담임목사님의 설교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주일에는 내가 개인적으로 묵상을 쓰더라도 녹음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글로 된 묵상도 올릴 때가 있고 올리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주일에 묵상도 녹음도 올리지 않았더니 많은 분이 걱정하신 것 같다.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
내게 무슨 이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녹음해 주시는 분들, 편집해 주시는 분들, 번역해 주시는 분들의 수고를 생각하며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쉬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걱정해 주시고 안부를 물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우리말성경 야고보서 2장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행함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지 않았습니까?
22. 당신이 알다시피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된 것입니다.
23.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라고 한 성경이 이뤄졌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렸습니다.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단순히 머리로 동의하는 수준의 믿음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실제로 순종의 행동으로 나아갔다.
22절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했다고 말씀한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믿음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믿음이 진짜임을 증명한 것이다.
23절은 그 결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말씀한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친구라고 부르신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친구라고 부르신 이유는 단순히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믿음을 행동으로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린 것을 부러워한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것은 모든 믿는 사람의 소망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라는 자리만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을 친구라고 부르셨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믿음만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그는 행함이 함께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셨을 때 떠났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씀에 순종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삭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만큼 순종했다.
그의 믿음은 말로만 존재한 믿음이 아니었다. 행동으로 증명된 믿음이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
믿음이 있고 행동이 못 따른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벗"이라고 칭함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에 대하여 100%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벗으로 칭함을 받기 위해서는
자격이 주어져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자격은 다름이 아니라
믿음과 함께 행위가 따라가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 주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그 믿음을 증명하는 행함이 저의 삶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시고 용납하시는 것 잘 압니다.
그래서 항상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래서 살면서 이런저런 일로 넘어지고 하나님께 실망을 드렸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도
얼릉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거저 받는 사랑을 넘어서
주님의 "벗"으로 불리움 받기를 사모합니다.
더 나가서는
하나님의 정말 "친한 벗"으로 불리움 받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 하루 종일 기쁨을 넘어서 감동을 받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
2026. 6. 22.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셨나요?
오늘 하나님의 벗,
하나님의 친구에 관한
묵상을 해 보았는데요.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는 누구랑 가장
친하고 싶으신지요?
그리고 누구랑 가장 친하다고
여김을 받고 싶으신지요?
저는 정말로 하나님의 친한
친구, 절친 그러한 표현이
나에게 적당한 표현, 적당한
평판이라고 여겨졌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고 순종이 버겁지 않은
사람들, 순종이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오늘 그대는 무엇을
순종해야 하는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닿는 “아! 오늘
이거 지켜야 하는구나”
그런 말씀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 그것을
그대의 소유로 만들어서
그야말로 성경 말씀 그대로
“내 소유는 이것이니 주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모든
순종했던 일들이 그대의
영적 소유가 된다는 걸
생각할 때 영적 소유에
대한 욕심은 있어야 한다고
저는 믿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 행하여서
하나님이 그대를 보면서
“사랑하는 나의 친구여”
이렇게 불러주신다면 얼마나
행복, 황홀 그렇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친구 되는
그대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