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대북송금' 수사검사 박상용을 사상 검증하는 이들은 누구? 홍위병'비판하던 사람들 왜 '홍위병'이 됐나
- 기자명 박주현 객원논설위원
- 입력 2026.06.05 06:55
[최보식의언론=박주현 객원논설위원(재담 엔터테인먼트 대표)]
주진우 의원SNS
박주현 SNS
무기한 직무정지를 받고 홀로 투쟁하고 있는 '불법 대북송금' 수사검사 박상용을 향한 몇몇 비난과 사상 검증의 요구들을 보며, 나는 '결국 올 것이 왔다'는 탄식을 내뱉었다.
그가 윤석열 계엄에 대해 "불법 계엄"이라 발언했다는 이유로 득달같이 달려들어 해명을 요구하는 소위 '보수'라는 이들의 맹목성 앞에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그는 비록 권력에 의해 직무가 정지된 상태일지언정 뼈대있는 법조인이다. 이 나라의 최고 규범을 다루는 헌법재판소가 이미 양측의 책임을 묻고 불법성을 명시하여 판결을 내린 사안을, 국가의 녹을 먹고 법을 다루는 실무자에게 국가 사법기관의 공식 판결을 전면 부인하고 맹목적인 진영의 교리만을 읊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제정신인가. 모니터 뒤에 숨어 타인의 사상을 현미경으로 검열하려 드는 당신은, 정작 이 위태로운 시국에 국가와 진영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묻고 싶다.
내가 그간 펜을 벼려 질타해온 이 나라의 근본적인 병리의 기원은 분명하다. 겪지도 않은 과거의 원한을 기계적으로 상속받아 타인에게 억지 부채감과 죄책감을 강요하는 짓. 평등이라는 얄팍한 간판을 내걸고 개인의 맥락과 차이를 묵살해버리는 좌파 특유의 폭력적 제재가 그 시작이었다.
여기에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일본의 자기 절제와는 완벽히 정반대로,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지독하고 이기적인 타인 통제의 강박이 사회 전체를 병들게 했다. 이 숨 막히는 집단주의는 개인의 사상적 자유를 짓밟고, 작은 차이가 있더라도 기꺼이 한 테이블에 앉아 대화와 타협을 이어가는 민주주의의 기본 공식을 산산조각 냈다.
그러나 진정으로 참담한 비극은, 이 끔찍한 야만성이 이제 좌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체 왜 우리 내부에서조차 자꾸만 동지를 향해 사상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려 안달인가.
마오쩌둥의 홍위병들이 붉은 책자를 흔들며 부모와 스승의 사상을 검열했고, 북한의 주체사상이 성분 출신을 따져 인간을 등급 매겼다. 무능하고 나태한 자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진영 내부에서 서열을 장악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실력 대신 '사상의 순도'를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을 불순분자로 몰아세워야만 텅 빈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할 수 있는 자들이 휘두르는 가장 저열한 흉기. 그것이 사상 검증이다.
그런데 자유와 이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할 보수 우파가, 어느새 저 끔찍한 유전자를 이식받아 아군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다. 자신과 티끌만 한 견해 차이만 보여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해명을 요구하고, 선명성을 핑계로 사상적 순혈주의를 강요하는 이 천박한 촌극.
보수의 본질은 획일화된 종교적 교리가 아니다. 나와 조금 다른 생각과 불편함을 기꺼이 견뎌내는 관용, 그리고 차이를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합리적 결론을 끌어내는 이성의 품격이다.
우리가 좌파 카르텔의 그 끔찍한 떼법과 전체주의적 통제를 그토록 경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스스로 다름을 색출하는 '사상경찰'이 되어 아군에게 붉은 완장질을 해댄다면, 광장에 모여 핏대를 세우는 저 좌파 홍위병들과 도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목소리 큰 자들의 억지와 사상 검증이 휩쓸고 간 폐허에는 결코 승리가 싹트지 않는다. 다름을 용인하는 관용을 잃어버리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품격마저 저버리고, 좌파의 낡은 흉기를 주워 들고 싸우는 진영은 세상을 향해 대안을 제시할 자격도 없다.
거울 속에 비친 우리 안의 저 기괴한 괴물을 먼저 직시하고 쳐내지 못한다면,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멈춰 세울 동력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