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다르크’는 왜 출입문을 막아섰나?...이 장면의 숨은 의미, 올공 청년 시위를 이해하는 중요한 사건

작성자삿갓|작성시간26.06.18|조회수36 목록 댓글 0

 

‘올다르크’는 왜 출입문을 막아섰나?...이 장면의 숨은 의미, 올공 청년 시위를 이해하는 중요한 사건

  • 기자명 최보식 
  •  입력 2026.06.18 07:59

 

[최보식의언론=나폴리 강호논객]

본지 자료사진

 

긴 머리를 뒤로 느슨하게 묶은 한 젊은 여성. 흰 티셔츠 입고 성조기를 치마처럼 두른 그녀는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 출입문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 구호를 외치지도, 연설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두 손으로 문을 붙잡고, 검은 마스크를 쓴 채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투표함과 관련 자료에 대한 '증거보전' 절차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6월 16일(화) 저녁에 보도된 올림픽공원 시위 뉴스의 한 장면이다. 시위 관련 뉴스에서 폭력과 난동을 일으킨 개인을 제외하고 시위 중인 사람이 한 개인으로 카메라에 클로즈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인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시위 참가자란 늘 수백 명, 수천 명, 수만 명의 ‘군중’으로만 화면에 비쳤다.

 

이 사건의 의미는 단지 한 여성 청년이 핸드볼경기장 출입을 막았다는 데 있지 않다. 지난 2주 동안 이어진 올림픽공원 시위의 성격과 구조,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프레임이 한 장면 속에 응축돼 드러난 데 있다.

여성 청년은 시위 참가자들 중 하나였다. 그들은 장내 개표소에 있는 투표함과 투표용지의 반출을 막고자 출입구를 봉쇄해 왔다.

 

이로 인해 시위 이전부터 경기장을 이용해 온 체육단체 관계자와 운동선수들의 출입에 지장이 생겼다. 아시아선수권 출전을 앞둔 펜싱 국가대표팀이 개인 장비를 꺼내지 못하고 급히 남의 장비를 빌려 출국하는 사태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에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은 6월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봉쇄 시위대에 대해 업무방해 등에 대한 법적 대응을 예고하며 정부와 경찰에 공권력 투입을 요청했다.

다음 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경찰의 강경 대응을 우려해 김민수 최고위원과 함께 현장을 방문했다. 김미애 의원 등 다른 국민의힘 의원들도 합세해 대한체육회와 시위 참가자의 중재에 나섰다. 장동혁 대표는 스포츠 선수들의 권리 침해 문제로 인해 시위가 명분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곧바로 동의하는 시민들도 있었으나, 여전히 강한 불신을 드러내며 반대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정치인들과 시민들이 서로 의견을 조율하며 협상한 끝에 체육단체 관계자들의 제한적 출입을 허용하는 데 합의했다.

 

그런데 출입구를 가로막고 선 여성 청년의 반대로 합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한 사람 앞에서 정치인과 체육회 관계자, 언론, 경찰이 모두 멈춰섰다.

그녀는 시위 대표가 아니었다. 그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한 시민의 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가운데 몇몇 정치인과 시민들이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시민들은 열기를 식히라고 차가운 물병을 꺼내 목덜미에 얹어줬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진입은 무산됐다.

그녀의 ‘저항’에 이견을 품은 시민들이 ‘대진연’(종북 성향 대학생 단체)이라 공격하자, 경찰은 충돌을 우려해 그녀를 조사하겠다며 데려갔다. 그 뒤 남은 시민들은 다시 출입문을 테이프와 끈으로 단단히 봉쇄했다.

 

단 1명의 반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어렵사리 만들어낸 합의는 끝내 관철되지 못했고 ‘진입 실패’로 결과가 뒤바뀌어 버렸다. 정치인도, 유튜버도, 조직의 지도부도 아닌 한 명의 평범한 시민이 그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이는 올림픽공원 시위의 특징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이 시위에는 주최자도, 대표도 없다. 누구도 그녀에게 문 앞을 지키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 조용히 결심한 뒤 다가갔다. 누구도 그런 그녀를 제지할 권한도 없었다. 그저 말로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그 누구도 돌려 놓지 못했다.

이를 통해 드러난 것은 올림픽공원 시위의 동력이 거대한 조직의 힘이 아니라, ‘강한 개인의 느슨한 연결의 힘’ 속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한 명이라도 현장에 나와 목소리를 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수많은 개인들의 참여로, 시위는 24시간, 그리고 2주 남짓 지속돼 왔다. 이번 여성 청년의 ‘저항’은 시위 참여자 개개인이 느슨하게 연결되면서 생겨난 힘이 때로 현장의 흐름을 완전히 바꿀 정도 강력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그날 밤, 신문기사에서 이 사건은 다음과 같이 기술됐다.

“성조기를 허리에 두른 여성 청년 한 명이 문을 붙잡고 저항을 시작했다.”

올림픽공원 시위에서 “청년은 사라졌다”는 서사가 언론에서 반복되던 바로 그 때, 역설적으로 언론 카메라가 포착한 것은 홀로 강하게 저항하는 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녀는 “진입 불발의 원인" “합의 파기의 계기" “중재 실패의 장본인”으로 해석됐다. 일부 보수 논객들은 그녀의 행동을 “전략적 실수”라고 평가했다. 즉, 그녀는 한 시민이 아니라 '사건의 변수'처럼 처리됐다.

심지어 어느 기사에서는 “일부 시민”이라는 표현으로, 그녀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홀로 조용히 ‘저항’하며 자신을 설득하던 이들을 향해 차분히 반론을 했던 그녀는, 이성을 잃고 난동을 부린 ‘군중’이라는 집합명사로 환원됐다.

언론과 SNS로 장면을 접한 사람들은 곧바로 그녀의 ‘저항’ 행위를 프레임에 끼워넣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애국소녀’라 불렀고, ‘올다르크’(올림픽공원의 ‘잔다르크’)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른 누군가는 ‘민폐 시위자’나 비합리적인 ‘군중’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들은 ‘극우’나 ‘음모론자’라며 낙인을 찍었다. 그녀는 그 모든 프레임이 충돌하는 지점이 됐다.

 

그녀는 결코 시위 참가자들의 '대표'가 아니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징'이 될 수 있었다. 그녀는 특정한 조직이나 노선을 대표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누구나 자신의 기대와 두려움, 분노와 희망을 투영할 수 있는 '상징'이 됐다. ‘영웅’이라며 그녀를 추켜세우는 것도, ‘극우’라 비난하는 것도, 그녀를 하나의 상징으로 소비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그녀 자신의 목소리는 없었다. 뉴스는 그녀의 얼굴을 흐리고, 인터뷰를 싣지 않았으며, 어떤 심정이었을지 해설하지 않았다.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 중 아무도 그 청년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언론은 유승민 회장에게 당시 대치 상황과 입장을 물었을 뿐이었다.

 

시청자는 그 청년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다음 날 오후, 그녀와 일부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는 뉴스는 그녀를 하나의 '수사 대상'이나 '문제 행위자'로 바라보는 시선을 더욱 강화했다.

그 가운데 의문이 든다. 국회의원, 체육회장, 경찰, 기자들, 시위 참가자들의 시선 앞에서 혼자 등을 돌리고 문을 막고 서 있는다는 것은 보통 결심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왜 그녀는 출입문 앞에 서 있었을까. 그녀는 그 순간 무엇을 생각했을까.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수많은 정치인과 경찰, 체육회 관계자들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게 만들었을까. 어떤 절박함과 두려움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녀는 무엇을 지키려 했을까.

 

적어도 그녀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어떤 가치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자신을 설득하던 사람들에게 “안에 있는 투표함을 보전하고 사수하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며 “다치는 것도 감수하려 했다”고 말했다.

 

세상은 그녀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더 빨리 이름을 붙이고 누구인지 규정하려 한다. 그 순간 그녀라는 개인은 사라지고 프레임만 남는다.

물론 그녀를 일방적으로 칭찬하는 것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행동이 또 다른 시민들의 권리와 충돌했다는 지적은 충분히 타당하다. 그녀의 행동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어떤 피해를 낳았는지에 대한 논쟁도 가능하다.

이 시위에 참가한 청년들의 불신과 분노가 정당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곧 그들의 모든 행동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수십 년 전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청년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도 많은 청년들은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저항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사회가 특정한 저항은 '성역'으로 기억하면서도, 다른 형태의 저항은 훨씬 더 빠르게 '문제시' 한다는 점이다.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가 됐지만, 여전히 역사의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들의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은 상대적으로 조심스럽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그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질서와 제도에 이의를 제기하고 저항하는 오늘날 청년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경청되지 않는다. 도리어 젊은이들이 ‘극우화’ 혹은 ‘보수화’했다는 일방적인 낙인찍기가 횡행한다.

우리는 과거의 저항에는 관대하면서 현재의 저항에는 훨씬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두 운동의 역사적 맥락과 정치적 의미는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려는 태도만큼은 동일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누군가의 말을 듣기도 전에 먼저 그를 특정한 프레임으로 재단하는 데 너무 익숙하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싶다. 어제 출입문을 가로막고 선 그 ‘동료시민’의 말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녀에게 조용히 말을 걸고 그녀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한국정치는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선거 제도와 법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며, 군중의 함성 속에서만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한 개인의 저항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민주주의는 누군가를 영웅으로 추앙하거나 악인으로 심판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 ‘동료시민’이 왜 그 자리에 서 있었는지 묻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프레임이 아니라 사람을 보기 시작한다. 민주정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한 차원 높아진다.


#올다르크, #동료시민, #유승민대한체육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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