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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번역사세상

[스크랩] [2011학년도 통대 합격 후기] --최명근 (서울 외대, 중앙대 동시 합격)

작성자Captain|작성시간11.10.13|조회수277 목록 댓글 0

 

합격 후기 (최명근, 연세대 영문학부)

 

시험을 준비하며

 

2009 8월 통역대학원 입학의 꿈을 실현하고자 김수연 선생님 통역대학원 실전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왜 굳이 통역대학원?”이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힘들다. 애초에 왜 대학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됐다. 그리고 여기에 발을 들여놓으니 뺄 수 없게 됐다. 그래도 남들이 실제로 통역대학원 준비하시게 된 계기가 모예요?”라고 직접 물어보면 거창하게 대답한다. 뭐 어려서 꿈이 그거였다, 학교 다닐 때부터 흥미가 있었다 등등 내가 하는 대답은 다양하다. 어쨌든 그 당시 나는 대학교 졸업반이었다. 남들 쓰는 자기소개서나 이력서에서는 완전 손을 때고 난 공부했다. 영어에는 항상 자신 있었다. 그것 때문에 통역대학원가야지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첫 수업을 들으면서 한방 크게 맞은 기분이었다. 잘 들릴 것으로 생각했던 영어는 오죽하며 듣고 한국어로 옮겨 말하는 것은 더 문제였다. 자극을 좀 받았다. 결정타는 3번째 수업이었다. 내가 직접 나가서 통역할 기회가 있었다. 어떤 꼬마아이가 그림을 팔아서 번 돈으로 아프리카에 있는 고아들을 돕는다는 그런 얘기였다. 근데 생각만큼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아이가 재능이 있는데뭐냐그림을 그려서 팔기……시작했는데….돈을 벌어서저기다른 애들을……” 뭐 이런 식으로 했던 것 같다. 코러스 (뭐냐, 저기, )가 어찌나 심하게 나왔던지 어떤 분이 그런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 라고 까지 했다. 같은 수업에서 친해졌던 몇몇 분은 이후에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사람인줄 알았다라고 까지 말했다. 그리고 말하면서 정말 답답하게 생각했던 것은 분명히 나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말이 어느 순간 증발해 버렸다는 것이다. 머리도 지끈지끈 아팠다. 한영 통역은 말할 것도 없다. 뭐 어쩌겠나…3개월 열심히 준비하고 안되면 또 해야겠다 생각하고 맘을 편히 먹었다. 그리고 떨어졌다. 그러나 그 3개월 동안 많은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더듬더듬 거리는 것 말하는 습관 등등 내 문제점을 고치는데 만 한참 시간이 걸릴 줄 알았다. 근데 실전 연습 중심의 스터디를 하다 보니 그런 것은 금방 고쳐졌다. 오히려 듣기, 읽기 능력 향상이 더 힘들었다. 신문의 중요성도 새삼 다시 느꼈다. 김수연 선생님의 여러 지적도 큰 도움이 됐다. 특히나 머릿속에 그림을 그린 후에 말하라는 지적은 실력 향상을 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됐다. 평소의 영어말하기 실력을 한영통역에서 그대로 써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11월이 지나고 12월이 됐다. 학원은 잠깐 쉬게 됐다. 졸업도 했다. 집에서 공부만 하면 눈치 보이니까 잠깐 회사도 다녔다. 3월부터 회사 다니면서 학원 저녁반 수업도 들었다. 6개월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 동안 아이폰에 영어뉴스를 잔뜩 넣어서 출근, 퇴근 할 때 그리고 어디 이동할 때 항상 들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구독했다. 그야말로 일자무식이었다. 한국어도 항상 세심하게 보려고 애를 썼다. 근데 그렇게 하다 보니 성과가 있었다. 어느 정도는 잘 듣고 잘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회사는 관두고 7월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위해 오전부터 수업을 듣게 됐다. 스터디도 다시 시작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혼자 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난 실전 연습 스터디만 고집했다. 이렇게 계속하면 시험은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징기스칸이 몽골을 통일하고 으로 등극할 때 적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었다라고 말한 것을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의 마음과 정신이 최대의 적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 이 마주하고 싶지 않던 그리고 만날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던 과의 싸움을 하게 됐다. 그냥 피곤하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고 심심하고 외롭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처음에는 알아서 잘 되겠거니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점점 켜졌다. 이런 적들을 상대하면서 강행군을 계속했다. 알아서 잘되겠거니 하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그렇게 시험 때가 됐다.

 

시험

 

()외대 1차는 패스했다. 그 동안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져놓은 덕이다. 2차는 떨어졌다. 여하간 서울외국어대학교대학원 시험도 봐놓은 상태였다. 1차 시험은 한국어를 듣고 요약하는 문제와 영어 듣기 및 읽기 문제로 나눠져 있었는데 굳이 좋은 표현을 쓰자면 재미있는문제들이 많이 나왔다. 평소 스터디를 하면서 파트너와 신문을 가지고 한국어를 한국어로 요약하는 연습도 많이 했던 터라 한국어 요약문제는 조금 익숙하게 느껴졌다. ‘재미있는문제들은 영어 듣기 문제에서 많이 나왔다. 지문을 들려주고 지문에 나오는 어떤 제품의 이름을 쓰라고 하는 문제나, 어떤 저널의 이름을 쓰라고 하는 문제 등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나왔다. 다행히 메모지에 다 적어놓은 터라 당황하지는 않았다. 시험장에 나오신 교수님들이 누누이 읽기 문제는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라고 말을 했기에 답을 어떻게 적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근데 너무 자신만의 언어에 집착해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감이 있다. 통과하겠거니 하고 있으니 정말 통과를 했다. 2차 시험은 번역과 통역이었다. 번역은 시간이 정말로 부족했다. 열심히 쓰면서 주변을 몇 번 두리번거렸는데 사람들 손 움직이는 것이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해도 될 정도로 빨리 움직였다. 나도 빠르게 했는데 결국 3문장 정도는 번역을 못하고 제출했다. 통역 시험보기 전에 약 2시간 정도 기다렸던 것 같다. 잘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안자고 가져온 노트를 좀 봤는데 도움은 별로 안됐다. 차라리 자는 것이 더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시험장에 들어가니 덩치가 크신 외국인님이 어디 사냐고 물어봤다. 노원 산다고 짧게 대답을 하니 No one lives there?로 받아 쳐서 날 동요하게 만들었다. 통역 이외에도 상식 문제를 많이 물어봤다. 당시 연평도가 북한의 공격을 받은 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몰라도 NLL, DMZ 같은 약자를 물어봤다. 통역 문제도 한->영은 북한 얘기였다. ->한은 아시아 국가들의 힘겨루기 얘기였던 것 같다. Multipolarization이라는 단어가 생소해서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포인트는 잘 얘기 했던 것 같다. 끝나고 나니 외국인님이 영어할 때 심호흡을 한번 크게 쉬고 말을 하라고 했다(take a deep breath before you speak). 얼마나 못했으면 저렇게 말을 하실까 라고 생각하며 좌절했다. 날은 엄청 좋았다. 근데 기분은 꽝이었다. 이불 뒤집어 쓰고 있으니 눈물이 절로 나왔다. 근데 이러고 합격했다. 창피하다. 중앙대학교 국제대학원 시험은 원래 내 계획에는 없었다. 근데 1차 시험보기 하루 전에 시험을 보기로 결정했다. 서울외국어대학교대학원 시험처럼 주관식이었다. 공통점은 그 하나였다. 영어 듣기시험의 답은 한국어로 쓰고 한국어 듣기시험의 경우에는 영어로 답을 써야 했다. 영어 듣기의 경우 소셜네트워킹, 미얀마 경제 제재에 대한 아웅산 수치 여사의 입장, ,중 관계와 같은 평소 친근했던 주제가 나왔다. 다만 미,중 관계 같은 경우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다. 서울외국어대학교대학원 시험과 같이 재미있는문제들이 나왔으나 이미 예상을 한 터라 덜 재미있었다. 한국어 듣기 시험은 로비합법화에 관한 논쟁이 주제였다. 매우 친근한 주제였고 비슷한 지문을 이미 읽어서 무난하게 했다. 중앙대 1차 시험의 특별한 점은 바로 번역 및 에세이를 1차에서 다 치른다는 것이다. 번역은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주제였다. 나는 영문 번역의 경우 이해는 되는데 한국어로 바꾸기 힘든 지문, 이해는 잘 안 되는데 한국어로 바꿀 순 있는 지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앙대 시험은 전자에 가까웠다. -> 2개 지문 한-> 2개 지문 +에세이에 제한 시간이 100분이어서 시간은 빡빡했지만 큰 실수 안하고 제한 시간 내에 다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2차 시험은 그 다음주였는데 서울외국어대학교대학원 2차 시험을 본 후였다. 시험을 썩 잘 봤다고 생각을 못했기에 위기의식이 생겼고 그 덕에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열심히 할 수 있었다. 2차 시험은 다 그렇듯 면접. 다른 학교는 면접 시험이 10분 정도 된다. 중앙대는 20. 기존 영->한 통역, ->영 통역 시험 + ->한 요약, ->영 요약 시험이 있었다. 내 순서는 8번째였다. 게다가 아침에 예상치 못한 정전이 있어 1시간 더 기다렸다. 이번에는 괜한 공부 안하고 단잠을 청했다. 20분 잔 것 같은데 1시간이 넘게 지났다. 근데도 내 순서가 멀었다. 면접 20분의 힘인가? 어쨌든 잠 덕에 정신은 말끔했다. 시험장에 들어갔다. 상당히 큰 교실 맨 앞 보통 교수님들 앉는 곳에 나는 앉고 시험문제 읽어주시는 교수님들께서는 보통 학생들이 앉는 자리에 앉아 계셨다. 가시방석이었다. 요약문제가 먼저 시작됐다. 메모를 할 수 있었다. 교수님들께서는 누누이 3줄을 초과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쓸데없는 말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영은 바다 생태계에 관한 주제였는데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식이 재고 돼야 하고 관련 규제도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물론 영어로 얘기했다. 3문장 이하로 요약을 하라는 것이 참으로 압박이었다. ->한은 중국내부 개혁에 관한 것이었다. ‘3문장의 압박이외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통역은 연설을 하게 됐다. ->한은 홍콩 와인 사업가가 아시아가 매력적인 와인 시장이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요지의 연설이었고 한->영은 과학기술부 장관인가 차관인가 뇌 개발을 위해 한국에 뇌 개발 센터를 건립하게 돼서 좋다는 내용의 연설이었다. 연설은 색다름 감이 있어서 흥미로웠으나 막상 통역을 하려고 하니 상당히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저걸 어떻게 바꾸지?’ 라는 생각도 했다. 여하간 그런 부분은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고 나머지는 무난하게 했다. 연설을 한꺼번에 길게 읽어주는 것이 아니고 1분 정도 되는 분량을 두 번에 나눠서 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총 4개의 통역시험을 본 느낌이었다. 시험결과는 만족스럽게 나왔다.

 

글을 마치며

 개인적으로 통역대학원 준비하면서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거의 매일 실감한다. 통역이든 번역이든 듣고서 알아먹어야지만 읽고서 이해를 해야지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영의 경우에는 기본기+쓰기+말하기까지 다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영어가 일정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힘든 부분은 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기본기를 바탕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정독하고 귀 기울여 듣는 것을 반복해서 꾸준히 하다 보면 실력은 오른다. 적어도 나의 경험상 그렇다. 읽고 듣는 것이 웬만큼 편하게 되면 통역, 번역 연습을 해서 한국어 영어 사이에 다리를 놓으면 통역대학원 시험은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 동안 나의 독설을 참으면서 스터디를 같이 해줬던 사람들, 나에게 계속 채찍질을 가해줬던 김수연선생님께 그리고 내 아이폰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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