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궁극(眞實之際)이란 무위법신無爲法身이다. 극락의정極樂依正이란 진실의 지혜(眞實慧)가 흘러나와 나타난 것이다. 일체가 진실한 까닭에 진실의 이익(眞實之利)을 베풀어주실 수 있다.」
이러한 일체 진실은 무슨 의미인가? 일체 순전히 자성으로 자성청정원만체自性清淨圓明體와 완전히 상응한다. 이를 일체 진실이라 한다. 이렇게 원만하게 상응하고 구경으로 상응하는 이는 누구인가? 아미타부처님, 아미타부처님께서 해내셨다. 그래서 그의 명호도 상응한다. 명호는 곧 진실의 궁극이고, 진실의 궁극이 곧 그의 명호이다. 명호는 무위법신이고, 법신은 곧 아미타부처님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에서 시방삼세 일체제불여래가 말한 일체경교는 당연히 석가모니부처님께서 49년 설한 일체 경교를 포함해 모두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으로 모여 돌아갈 수 있다. 왜 그러한가? 왜냐하면 이 경전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명심견성明心見性한 경계를 다 털어놓으신 것을 우리가 제대로 듣도록 상세히 말씀해주신 것이다.
세존께서 개오하신 경계, 이러한 경계는 곧 대승경전에서 말씀하신 「제법실상諸法實相」, 우주인생의 진상眞相으로 우리를 위해 말씀하셨다. 최후 화엄의 원만, 이는 어떻게 말해야 당신이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이 제불여래와 같이 화엄의 경계에 계입契入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화엄경》의 말미에 보현보살 십대원왕十大願王이 극락으로 인도하여 돌아간다는 경문을 읽는다. 그래서 화엄은 정토를 얻어야 비로소 원만한 셈이다. 만약 정토가 없어 이런 경계를 말만 하고 증득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정말 단지 상상근기의 사람에게만 연분이 있고, 상중하 근기의 사람에게는 모두 연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보현보살의 「극락으로 인도하여 돌아감(導歸極樂)」은 보현보살뿐만 아니라 문수보살도 예외가 아니다. 문수보살께서도 《화엄경》에서 최후에 정토에 왕생하여 아미타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겠다고 발원하여 우리에게 좋은 모범이 되어 주셨다. 그러면 우리는 시방삼세 일체여래께서 설하신 일체 경교, 최후의 총결總結은 곧 《무량수경》이고 총결하여 이 경으로 돌아감을 알 수 있다.
이 경전에서 하련거夏蓮居 거사는 우리를 위해 회집하여 48품을 이루었는데, 48품에서 어느 품이 가장 중요한가? 조사대덕들은 모두 우리에게 제6품이 가장 중요하다고 일러주셨다. 제6품은 무엇인가? 48대원이다. 48대원에서 어느 원이 가장 중요한가? 고래의 조사대덕들이 말씀하셨듯이 제19원이 《화엄》, 《법화》를 뛰어넘고, 제20원이 또 제19원을 뛰어넘으며 제18원이 또 제20원을 뛰어넘는다. 제18원은 무엇인가? 십념에 반드시 왕생한다는 원이다. 이는 곧 명호 공덕의 불가사의함이다. 최후에 무엇으로 돌아가는가?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로 돌아간다.
만약 정말 어떤 사람이 무엇이 불교인가? 묻는다면 당신은 그에게 「나무아미타불」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이해하는가? 제불여래는 모두 고개를 꺼덕일 것이다. “당신이 대답한 것은 조금도 틀림이 없다.” 이 명호의 뜻은 대단하다! 불가사의하여 그 깊이와 넓이는 변제가 없다.
제18원은 곧 한 마디 명호이고, 곧 《왕생론》에서 말하는 일법구一法句,청정구清淨句,진실의 지혜 무위법신이다. 무엇을 청정구라 하는가? 이 한마디 부처님 명호는 진실의 지혜 무위법신이다! 그래서 《무량수경》은 정말 전체 경 48품, 자자구구 모두가 진실의 지혜이다.
_《정토대경해淨土大經解》, 정공법사
작성자 : 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