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가득히 반야심경의 독경소리뿐
「반야심경」은 본문이 겨우 262밖에 안 되는 매우 짧은 경전이지만, 고금을 통해 이 경만큼 승속의 구별없이 친숙하게 독송되어 온 것도 없다. 이 경은 방대한 「대반야경」육백 권의 내용을 핵심만 요약해서 만든 것인데, 정식 명칭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며 보통은 줄여서 「반야심경」또는 「심경」이라 한다. 중국에서 번역된 「반야심경」은 모두 열 종이지만 현재 남아있는 것은 여덟 종이다.
최초로 번역된 것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이고, 두 번째로 번역된 것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반야바라밀다심경」인데, 이것은 649년에 당나라의 현장이 번역한 뒤로 「반야심경」의 주류가 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현장은 629년 에 구법을 위해 중국 장안을 출발하여 인도 각지로 순례 여행을 떠났다. 그가 장안을 출발하려 할 때 ,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구마라집이 번역한 「반야심경」을 건네주면서 \"당신의 여행은 매우 위험할 것이지만, 지성으로 이 경을 독송하면 모든 재난을 모면하게 될 것입니다\" 하고는 사라졌다. 현장은 신인의 말을 명심하고 위험이 닥칠 때마다 일심으로 「반야심경」을 독송한 공덕으로 십육 년 동안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로 「반야심경」은 인간을 위험에서 구하고 재난을 없애주는 \'대신주大神呪\'로서 역사 속에 생생히 전해져 오면서 , 가난한 사람과 부처님을 이어 주는 하나의 끈이 되었고, 상처받은 영혼으로 생生의 황야를 헤메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대비를 실어 나르는 외로운 조각배 역할을 하였다.
「반야심경」의 핵심은 \'반야\'의 실천에 있다. \'반야\' 는 보통 \'지혜\' 라 번역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지성知性이나 지적知的 생활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을 철저히 부수어 버렸을 때 나오는 것으로서, 모든 사물의 실체를 똑바로 꿰뚫어 보는 \'생명작용\'을 뜻한다. 따라서 반야의 실천이란 지혜에 의한 \'생명의 눈뜸\'을 의미한다.
지혜에 의한 생명의 눈뜸이란 무슨 뜻일까.
이것에 대해 「심경」은 \'오온은 모두 공이라 조견\' 하는 것이라 하였다. 오온이란 우리의 심신을 구성하는 물질적 현상으로서의 육체를 의미하는 색色과 정신작용인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다섯 가지 요소를 말하고 , \'공\' 이란 실체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오온은 모두 공이라 조견한다\' 는 것은 , 오온으로 뭉쳐진 \'나\' 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꿰뚫어 보라고 하는 것이다. 본디 \'나\' 라고 하는 실체는 어디에도 없다. 실체가 없는 것이 \'나\'의 참다운 모습이며, 자기 존재의 실상이다.
「반야심경」에서는 이것을 더욱 간명하게 표현해서 \'색이 즉 공이고 공이 즉 색(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라 하였다. 색이란 일반적으로 물질적 현상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육체로서의 \'나\'를 의미하고 , 공이란 그 색에 실체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간단히 말하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물은 실체가 없으며, 현상으로 나타나 있는 존재는 조건들이 모여 성립된 임시적 존재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결국 \'나\'가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으며, 이 잘못된 생각이 소중한 인간의 일생을 미혹되게 한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이론대로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매우 감각적이고 , 감정적인 요소에 지배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들 일상의 실정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반야심경」이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꿰뚫어 보아 어리석은 생활 방식을 청산하라고 설해도 긍정하려 들지 않는다. 긍정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빈곤하고 어리석기 때문이다.
\'나\' 라는 인간 존재에 대해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는 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나\'에게 고삐를 붙잡혀 끝없는 인생의 황야를 헤맨다.
그러나 \'나\' 라고 하는 고삐를 쥐고 있는 것도 또한 \'나\' 이기 때문에 , 인생은 결국 혼자만의 연극이며, 부세의 세상에 춤추고 있는 슬픈 삐에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에 눈을 떠 반야의 실천만이 영원히 평안한 세계에 도달하는 길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려고 「반야심경」은 「관자재보살은 깊은 반야를 행할 때 ,오온은 모두 공이라 조견하여, 일체의 고액을 건너셨다」고 설하여 관세음보살의 깨달은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사리자여\' 라고 침밀함을 섞어 \'반야\'의 묘도妙道를 설하고 공의 참뜻을 설하는 관자재보살의 음성은 미혹의 심연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든 중생들을 반드시 구제하겠다는 대비大悲의서원에 젖어있다.
「반야심경」에서 중요한 말을 들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반야심경」스스로가 말하는 것처럼, \'반야바라밀다\' 곧 지혜의 완성자를 축복하는 큰 주문(呪)이다. 주문은 다라니를 말하며, 진언眞言, 진실어眞實語라고도 번역한다. 따라서 이 주문은 부처님의 대비의 밀어密語이고 진실한 말이므로 , 위급할때는 이 주문만 외워도 재난을 면할수 있다고 한다. 옛부터 주문은 \'한 글자에 천 가지 이치를 내포한다\'고 하여 번역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이 주문의 번역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여러 가지 번역이 있지만 참고로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건너간 자여, 건너간 자여, 피안으로 건너간 자여,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간 자여, 깨달음이여, 행복하라.\'
이와 같이 무궁한 공덕이 있는 「반야심경」은 어떻게 독송해야 할까? 먼저 심경心經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 이경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心)으로 읽어야 한다. 마음으로 읽는 다는 것은 문자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을 감득하는 것이다. 「반야심경」의 생명을 감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심경」을 읽는 자신의 마음이 무심無心이 되어야 한다. 곧 상대와 대립하는 자기가 아니라 , 무아無我한 자기가 되어야 한다. 무아한 자기란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거울처럼 투명한 자기를 말한다. 투명한 자기가 되면 일체의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게 되며 , 이에 비로소 「반야심경」의 참다운 의미를 알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야심경」을 독송할 때는 먼저 독송은 삼매三昧라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삼매에 든다고 하는 것은 읽는 자와 읽히는 경전, 곧 주와 객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반야심경」을 읽는 자신도 없고 , 읽히는 「심경」도 없으며 , 오직 천지 가득히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라는 낭낭한 음성만이 울릴 뿐이다. 이렇게 자신과 「반야심경」이 불이일체不二一體가 될 때, 분별지分別智의 배후에 있는 반야의 지혜는 감득되는 것이다.
출처 : 월간 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