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덕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 몽참큰스님
현재 모든 수행자들이
일부는 복을 구하고 일부는 지혜를 구합니다
부처님은 복혜가 구족한 양족존입니다
복덕을 어떻게 구족하고
지혜는 어찌하면 생길까요?
지금 우리 모두가 복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타인을 도와주고
불보살님은 중생을 제도한다 하고
우리는 타인을 도와주는 겁니다
타인을 거들어 주는 겁니다
타인의 고통을 줄여줍니다.
타인의 부담을 줄여줍니다.
복력은 장엄한 모습입니다.
여래는 무궁무진한 장엄한
상호를 갖추고 계십니다.
세간의 복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출세간의 부처라고 합니다.
출세간의 부처는 어떻게 얻어진 것일까요?
법을 중히 여긴 것입니다.
삼천대천세계의 보배로 공양하는 것보다
한마디 법을 설해주는 것이 더 낫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이 있는 것이어서
그 복은 다함이 있어서 받고나면 없어집니다.
그 설법을 듣고 마음이 열려서 깨달으면
그 복의 과보는 영원히 존재합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복은 부처님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과 한 가지 상의
복덕과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의 무량한 장엄상은
그 중 한 가지 상의 복덕도
중생을 이익되게 해서 얻어진 것 입니다.
반야지혜의 덕
부처님의 중생을 이익되게 한 복덕
부처님은 얻을 것이 없는 분입니다.
우리의 유소득과 무소득을
예를 들어 말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 좀 하거나
혹 다른 이를 돕거나 하면
삼보님께 공양하거나
향을 올리거나 꽃 한 송이를 올리는 것은
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상이 없습니다.
마음으로 공양을 올려야 합니다.
그럼 이 복덕이 바뀝니다.
지장경에서
지장보살께서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어떤 중생은 공양한 물질이 많치 않은데
그러나 그가 얻은 복덕은 무궁무진하게 누립니다.
어떤 중생은 공양을 엄청 많이 올리는데
그 복덕은 한 두생에 없어집니다.
왜 그럴까요?
부처님께서 지장보살께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공양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만약 가장 존귀한 국왕이
아주 빈궁한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그가 공경심과 평등심으로 공양하면서
비천하다는 생각이 없이 직접 보시하고
혹은 사람을 파견해서
가장 존귀한 사람으로 대접하고
그렇게 보시하고 공양을 한다면
중생에게도 부처님께 하듯이 공양한다면
그 복덕은 아주 큽니다.
자만심을 가지고 가벼이 여겨 공양한다면
그 복덕은 아주 작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예를 들면 현재 이곳에서 화엄경을 함께 배웁니다.
어떤 마음으로 배우는가에 따라서
지금 내는 그 착한 한 생각이
법을 배우고자 하는 그 생각이
어떤 마음으로 듣는가가
유심으로 듣는지 무심으로 듣는지....
내가 지금 말하는 무심은
우리의 이 무심하고는 다릅니다.
무심은 집착이 없는 것입니다.
집착이 없는 마음입니다.
혹은 집착이 있는 마음입니다.
어떤 것이 집착이 있는 마음인가 하면
여러분이 사찰에 상주하면서
여러분들은 반드시 와서 들어야 합니다.
원래는 잠이나 자고
게으름이나 피려고 했던 마음 상태로는
안됩니다.
그런 마음 상태로 법을 들으면 복이 없습니다.
흔연하고 기쁜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런 복덕은 다함이 있습니다.
구할 것도 얻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이
그런 마음으로 법을 듣는 것이
최상이라고 부처님께서 설하셨습니다.
최고 심오한 법입니다.
가서 선근종자나 심고
무슨 목적으로 듣는가 하면
성불입니다.
그 마음이 성불할 때까지 따라옵니다.
같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복덕은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을 주재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부처님의 복덕이 왜 허공과 똑같을까요?
허공은 어떤 모습인가요?
가이없고 다함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복덕은 가이없고 다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다생겁 동안에
중생을 교화할 때에
부처님은 집착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또한 보답을 바라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일체 구하는 마음도 증득할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불보살님을 따라 배우는 겁니다.
제불보살은 하루종일 중생구제를 하면서
중생상을 보지 않습니다.
복덕은 어떤 모습일까요?
성품을 공양하는 겁니다.
복덕의 성품입니다.
복덕의 성품은 허공과 같습니다.
여래의 복덕도 허공과 같습니다.
말법시대에 부처님 제자들은
바로 부처님 복덕의 백호상광 가운데에 한 가지 상을
우리 말법시대 제자들이 누리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모두 부처님의 복덕으로 사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도 인연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연기법을 이야기 합니다.
인연이 없으면 얻지 못합니다.
세간의 복을
어떻게 부처님의 복덕과 비교하겠습니까?
부처님의 무량한 복덕상 가운데 한 가지 복덕도
세간의 재복이나 지위, 권세가 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상한 것입니다.
그것은 생멸법에 속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복덕은 불생멸법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출처 : 유튜브 법등사설오스님TV
작성자 : 설오스님
주소 : https://youtube.com/watch?v=dh5Cegzf1n4&si=zhsdxH4h10cmG0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