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을 극복하라 / 우룡 큰스님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세생생 익혀놓은 업(業)이나 익은 행동 때문에 삶이 자꾸만 옆으로 빗나가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힘! 이를 간단하게 '업' 이라는 표현을 하였지만 업이란 참으로 무섭고 어려운 것입니다.
이 업만 잘 극복하면 성불할 수 있습니다.
이 업은 염불 하나만 가지고도 극복이 되고, 주력 하나만 가지고도 극복이 됩니다.
절을 하는 방법으로도, 경을 읽는 방법으로도 극복이 되고, 화두만 가지고도 극복이 됩니다.
그런데도 수행 도중에 자꾸만 내 업을 가지고 나를 흔들어 고비를 만들기도 합니다.
또 좋은 인연이 아닌 잘못된 인연들이 나를 위해 주는 척하며 오히려 수행을 깨뜨려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전 공부를 잘 마쳐야겠다'는 원을 세우고 경전을 연구하는 학인에게 누군가가 말을 합니다.
"그거 다 소용없어. 참선을 해야 돼. 경전이 무슨 필요 있어? 큰스님한테 화두 받아 참선하는 게 진짜 공부야."
이러한 말을 하여 잘 세운 경전공부의 원을 중간에서 꺾어 버리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누가 충고했건, 그것은 마구니의 소행이요, 마구니의 방해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좋은 인연으로 가는 것 같을지라도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의 원이 중간에서 꺾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목표나 원을 세워 수행을 할 때는 겉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전부 마구니의 길이요,
외도의 길이라 생각하며 떨쳐 버리고 내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자꾸 옆으로 빗나가는 것은 성불의 길이 꺾이는 것이라는 생각을 꼭 해야 합니다.
옛 어른들께서는 간곡히 충고하였습니다.
"공부를 지어나갈 때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공부, 특히 마음공부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방해하는 인연이 너무 많습니다.
중국의 우두선종(牛頭禪宗)을 세운 법륭(法融)선사는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렇게 이 생활을 하는 나에게 부처님께서 오셔서 더 좋은 가르침을 준다하고 할지라도 나는 지금의 이 생활을 믿고 그대로 밀고 나갈 것이다."
이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수행할 때 어떤 큰일이 닥쳐올지라도 꺾어지거나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중생의 욕심으로 가득 찬 우리는 처음 세운 원을 지키며 끝까지 나아가지 못합니다.
옆의 다른 인연들 때문에 자꾸 흔들려서 중간에 그만두게 됩니다.
따라서 성불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스승이신 고봉(高峰) 스님께서는 성불의 정의를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처음 여기에서 한 가지 목표를 세웠으면 목표인 거기까지 가는 것이 성불이다.
성불이라는 개념을 너무 거창하게 잡지 말아라.
너무 거창하게 잡으면 내가 목표를 세웠던 것을 중도에 꺾어 자꾸 다른 쪽으로 가게 된다.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 자꾸 다른 쪽으로 가버리면 성불은 영원히 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성불은 '부처님이 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중생이기에 작은 단위의 성불, 한 단계 한 단계 향상의 목표를 정하여 착실히 나아가야 합니다.
부처님의 경지가 어떠한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한꺼번에 성불을 목표로 잡고 나아가면 대부분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중도에 포기하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버립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씩 한 가지씩 목표를 세우고 원을 세워 착실히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성불이 가능해집니다.
한 가지 목표를 세워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이 성불일진대 이 성불을 위해 우리는 분명하고 뚜렷한 원을 세워야 합니다.
원을 세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컨대 돈이 많다고 하여 모두가 미국을 가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 가고 싶다. 미국에 가야겠다' 는 원이 있어야 미국에 가게 됩니다.
이처럼 일상의 우리에게도 무엇인가 지금보다 향상을 하기 위한 뚜렷한 원이 있어야 하고, 그 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언제나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예로 들어봅시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그냥 단순히 기복에 머물고 말 것인지, 그 기도가 자기의 수행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기도하는 당사자의 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욕심으로 시작하였을지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욕심이 순화되고 원이 변화되는 것을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앞도 뒤도 없는 욕심만 가지고 시작한 기도일지라도 차츰 소극적인 원이나 세속적인 원들이 바로 세워집니다.
그저 물질적이고 인간적인 욕심을 가지고 시작했더라도 시간이 자꾸 지나면 마음이 안정되어가고 조금씩 시야가 넓어지면서 마음의 눈을 뜨게 됩니다.
'아! 내가 일으켰던 원이 참 어리석었구나. 실제는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이해가 되면서 더 향상되고 더 발전된 원을 세우게 됩니다.
소극적인 원이 저절로 커지게 될 때 바로 더 향상되고 발전하는 원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원을 세울 것을 부탁드립니다.
'세세생생 지은 모든 잘못을 참회합니다.'
'나와 인연 있는 영가들이 밝은 나라에 가서 태어나소서.'
'살아 계시는 내 가족들이 모두 다 건강하시고 모든 일 순탄하소서.'
이렇게 축원을 드리고 부탁을 합니다.
이것이 비록 소극적인 원이기는 하나 그 원을 되풀이하여 끊어지지 않게 매일매일 계속해야 합니다.
기도와 정진과 축원을 매일매일 꾸준히 하다보면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결국은 더 향상하고 싶고 더 발전하고 싶은 어떤 원이 세워지게 됩니다.
만일 특별하게 깨달음에 대한 원을 세운다면 그 원에 맞는 만큼의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아! 내가 바라는 건 너무 좁은 틀이었어. 이것 가지고는 안 돼. 좀더 원을 키워야 돼. 그리고 이 원을 나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같이 누릴 수 있도록 해야 되겠어.'
그런데 우리는 어떤 소원 하나를 이루고 나면 기도를 계속하지 않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자식이 없는 이가 부처님께 기도를 하여 자식을 얻었으면 부처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계속 절에 다니며 신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또 그렇게 태어난 아이에게도 "너는 부처님과의 이러이러한 연으로 세상에 태어났으니 부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불교를 믿으며 기도를 해라" 라고 지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를 얻고 나면 그만입니다. 신심을 끊어버립니다.
기도를 하여 어떤 원을 이루었으면 그 원을 그대로 이어가고 살려 나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마무리해 버리면 안 됩니다.
'자비도량참법'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자주 나옵니다.
"보리심(菩提心)은 한 번만 발하고 마치는 것이 아니다. 자꾸자꾸 보리심을 내어야 하고 많이 내어야 된다."
그 구절을 볼 때마다 저는 '아,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 당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 분 중에는 처음부터 욕심을 부려 무기한으로 기도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한을 정하지 않고 기도를 하다 보면 중간에 자꾸 해이해지고 지치게 되고, 또 신심이 떨어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세 중생의 근기로는 무기한으로 기도한다는 자체가 어려우므로 우선 7일, 21일, 49일, 100일, 1년, 3년 등의 기한을 정해 놓고 그 기도를 마무리하고,
또 새로이 기한을 정해 놓고 기도를 하는 식의 공부방법이 참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해야 처음에 세운 원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고,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도 쉽습니다.
출처 : 아비라
글쓴이 : 自 性 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