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행(具行)법사의 왕생의 불가사의 ---삼매진화(三昧眞火)
구행법사는 중국운남성 사람. 1907년. 20살되는 해 . 가뭄으로 생계를 위지하기 어려웠습니다.이때 허운 (虚云) 노화상이 운남성 계족산에서 절를 짓는다는 소문를 듣고 찾아가서 절에서 일를 하게되였습니다. 그는 매일 절 공사장에서 흙과 돌을 나르고 채소밭에 인분를 주고 물를 주고 쉬지않고 일만 하였으며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벙어리>라고 불렀습니다.
그후 한달이 지난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가족(마누라. 아들 .장모. 처남. 조카 모두8명)들이 모두 찾아왔습니다. 허운노화상님은 올때갈때 없는 식구들을 자비마음으로 모두 절에서 일를 하게하였으며 절 뒤산에 천막를 지어 살도록 하였습니다. 가족들은 절에서 열심히 일를 하였습니다.
구행법사는 허운노화상의 법설를 즐겨들었습니다.그러나 글자하나 모르는 구행법사는 어려운 법문를 알아 듣지 못할때가 많았습니다. 오직 허운노화상의 일심으로 염불만 하면 극락세게로 갈수있다는 말씀를 가슴깊이 새겨두었습니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흙를 나를떄나 밭에 채소를 가꿀때나 염불하는것를 잊지 않았습니다. 21살 되는 해 그는 온식구(마누라 .아들 .장모 .처남. 조카 모두8명)를 대리고 허운노화상님를 스승으로 모시고 식구 모두 출가를 하였습니다. 출가후 허운노화상님이 구행(具行)이라는 법호를 지어주셨습니다.
출가후 구행법사님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똑 같이 공사장에 흙을 나르고 채소밭에 물주고 인분주고 출가전의 똑 같은 일를 계속 하였으며 여전히 말한마디 없었습니다.묵묵히 엽불하느것은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달라진것은 무두가 출가전에는 <벙어리> 라고 불렀고 출가후에는 <벙어리스님> 이라고 불렀든것이 였습니다.
1915년 허운노화상님이 구행법사님의 절과 스승에 대한 집착를 버리게 위하여 구행법사보고 이제 수행이 일정한 정도에 왔으니 이제는 이 절를 떠나라고 권유하였습니다. 그는 스승인 허운노화상의 말씀를 어길수 없으므로 할수없이 절과 스승님의 곁를 떠나게 되였습니다.
1920년 구행법사님은 허운노화상님이 운서사 절을 재건설한다는 소문를 듣고 다시 허운노화상의 곁으로 돌아오게되였습니다. 돌아온 구행법사님은 똑 같이 흙과 돌를 나르고 채소밭을 가꾸었으며 쉬지않고 일만하였으며 여전히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염불만 하였습니다.
운서사 해회사리탑를 시공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구행법사님는 허운노화상에게 다가가서 <스승님 사리탑이 완성되면 저를 이 사리탑을 지키게 하여주십시요.> 라고 말를 하였습니다. 허운노화상은 구행법사의 수행경계를 판단하고 구행법사가 이제 돌아갈 날이 왔다는것을 알았습니다. 그해 봄 제자들에게 수계(受戒)를 하는 날이 였습니다. 허운노화상님이 구행법사에게 수계제자들 한테 개시하라고 하였습니다.구행법사님는 <저는 중도에 출가 하였으며 글자하나 모름니다. 오직 아미타불 염불 한마디 할줄알았을 뿐입니다. >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날 저녁 평상시와 같이 허운노화상님의 방으로 가서 저녁인사를 올리나서 <스승님 저는 오늘 갑니다. 특히 작별인사를 올립니다.제가 가면 누구가 스승님를 보살피겠습니까?> 라고 말하였습니다. 허운노화상님은 < 착한 애야. 너의 큰일를 지체말고 어서가거라. 내가 여기서 경을 읽으며 너를 도와줄것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좀 지나서 구행법사님이 숙소로 돌아오지 않자 동료들이 찾기시작하였습니다. 이때 갑자기 눈부신 백광이 수차례 밤하늘를 찔러 올라갔습니다. 백광이 절내외를 대낮 같이 환히 비췄습니다. 인근 마을사람들은 절에 불이 났을것이라고 착각하고 모두 물통를 들고 절로 왔습니다. 승려들과 마을사람들은 홰불를 들고 백광이 나타난 곳으로 찾아 갔습니다. 이때 발견한 것은 구행법사님이 가부좌로 앉아있었으며 눈는 절반정도 뜨고 얼굴에는 미소를 짖고 있었습니다. 이떄 누군가 구행법사를 몸를 건드리려 하자 마침 허운노화상님이 오셨기에 구행법사의 몸를 건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허운노화상님이 말씀하였습니다.<구행법사님는 이미 좌화(坐化)하였습니다.여러분 금방 본 백광은 구행법사님의 삼매진화(三昧眞火)의 빛이였습니다. 구행법사님는 이미 진회(眞火)로 자기의 몸를 불태워 재로 만들었습나다. 조금만 진동하면 재로 되니 여러분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됩니다.> 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자세히 구행법사님를 보니 가사는 몸에 그대로 있었고 왼손에는 경쇠를 쥐고 오른손에는 목탁를 쥐고 있었으며 서쪽를 향하여 가부좌로 앉아있었습니다.얼굴은 살아있을때와 변함이 없었으며 오로지 호흡만 하지 않을 뿐이 였습니다. 그리고 목탁 손잡이. 경쇠 손잡이. 신발. 앉아있던 볏집.방석은 이미 재로되여 있었습니다.
허운노화상님는 구행법사님의 서상(瑞相 )를 보고 구행법사님께 하루 더 있어줄것을 알리고 다음날 <곤명일보>신문사 기자 운남성 성장(繼堯) 재정청 청장(王竹村) 수력국국장 (張拙仙) 그리고 곤명시 사회각계의 인사들에게 알리였습니다. 모든 인사들이 모인후 허운노화상님는 구행법사의 손에 있는 경쇠를 취하여 손에 쥐고<이제 안심하고 서방으로 가거라.> 말하면서 한쪽으로는 경쇠를 울리였습니다. 세번째로 경쇠를 울리는 동시 구행법사님의 몸이 전신진동하면서 순식간에 재로 되여 내려 앉았습니다. 이 정경를 본 수천명의 인사들은 모두 감격하여 절를 올리였습니다.
(위 사진는 구행법사님이 삼매진화로 자신의 몸를 태운 상태의 모습 임)
작성자 : 백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