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염불하는 것은 바로 염하여 ‘연꽃이 피어 부
처님을 친견하기[花開見佛]‘ 위함이다. 무엇을 ‘연꽃
이 피어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라 하는가?
"바로 무릇 모든 일에 있어서 화성(火性: 급하고 화
를 잘 내는 성질)을 제거하고, 인내해야 하며, 부드럽
고 기쁜 얼굴로 도리를 행하는 것이다. 남을 대하는
데 친절하고 온화해야 하며, 절대로 냉담하고 엄숙한
얼굴을 하여 남이 보면 도망가게 해서는 안 될 것이
며, 스님이 된 사람도 이와 같이 해야 비로소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
모든 일은 도리에 따라 사실에 입각하여 처리해야 하
며, 번뇌심으로써 대처해서는 안 될 것이 다. 남을 대
하는데 선인이든 악인이든 온화하게 평등한 마음으
로 대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허물을 봐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의 우리에 대한 인상이 좋아질
것이며, 우리의 마음도 상쾌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
면 마음에 번뇌가 없으니, 곧 '연꽃이 피어 부처님을
친견할[花開見佛]’ 것이다.
우리 자신의 광명은 태양의 빛과 같이 만물을 차별없
이 대하여 비추지 않는 사물이 없이 좋은 사람도 비
추고, 나쁜 사람도 비추어야 할 것이다. 좋고 나쁨은
다른 사람의 일이고, 우리는 언제나 평등하고 자비로
워야 한다. 만약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면, 우리 자신
도 비슷한 사람이 다.
어떤 신도가 노스님께 <금강경> 가운데 "일합상(一
合相)”의 뜻을 물었다. 노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일합
상의 뜻은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다
른 사람과 같이 지내고 일을 하는데 있어서 화합하고
걸림이 없이 하는 것도 일합상의 일종이다. 항상 <금
강경>을 독송하면, 비록 그러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
해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절은 시방의 도량으로서 시방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
이며, 한 사람이 하나의 모습이니, 우리는 이러한 환
경에 자기를 적응시켜야 하며, 환경이 우리의 뜻에
적합하게 맞출 수 없다. 집에서는 심지어 부모님조차
도 자기의 뜻에 완전히 맞을 수 없는데, 하물며 시방
의 사람들이겠는가?
곳곳에서 참을 수 있어야 하고, 순응하여 받아들여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할 것이다.
각자의 성미와 개성이 같지 않으니, 성질을 알면 함
께 거주하기가 쉽다. (스승님은 특별히 이것을 강조
하시며, 우리에게 남들의 성질을 따르고, 남들의 성
질에 맞추어야 한다고 하였다.)
절 안의 각 사람은 모두 각자의 맡은 일이 있으며, 각
자가 각자의 일을 잘 책임져야 하며, 다른 사람을 간
섭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이 있을 때는 자기가 옳다
거나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강경하게 말해서는 안 된
다. 그렇지 않으면 곧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이 세계
는 바로 이러하면 평화롭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
이 우리가 어떠하다고 말하든지, 모두 받아들여야 하
며, 부끄럽게 자기의 잘못을 말해야 한다. 이렇게 하
면 비로소 화합하고 분쟁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절
대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꾸짖듯이 말하면 안 된다.
- 광흠 노화상 법어 중 -
https://youtu.be/_9HJ-onmYYM?si=OJUwakTUt0Vx1wtX
출처 : 반야호흡오음염불회
작성자 : 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