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스님 금강경 강의 5
1. 법회가 열리게 된 동기
이와 같이 난 들었다(4) / 금강경의 핵심
무한한 보배가 담긴 다이아몬드 수트라, 금강경과 함께 하는 세상
에서 가장 유쾌한 공부 시간입니다. 다 같이 합장하시고 마하반야
바라밀 세 번 염하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네, 오늘도 행불 독송집 「본마음 참나」58쪽 금강경 제1분과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경전의 제목을 먼저 세 번 읊고, 1분과만
읽어보겠습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이와 같이 난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은 사위국에 계시면서 큰비구
중 일천이백 오십인과 머물렀다. 그런 때에 세존께서 공양시간 맞추
어서 옷을 입고 발우 들고 사위대성 들어가서 차제대로 걸식한 뒤,
본래 자리 돌아와서 공양을- 끝내시고 가사 발우 거두시고 발을 씻고
자리 펴서 편안히- 앉으셨다.
네, 읽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애요. 사방이 밝아지고~
역시 이 금강경은 부처님의 49년 설법 가운데 가장 핵심 법문이
바로 이 반야부 경전이고, 반야부 경전 가운데서도 600부 반야부
경전 가운데 577번째, 바로 이 금강반야바라밀경, 능단금강분이라
해서, 요 부분이 핵심 가운데에서 핵심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 반야부 경전 가운데 최고의 핵심이 금강반야바라밀경.
부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가장 정갈하게 담겨있는 경전
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 금강경만 잘 이해해도 우리가 불교
핵심을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지난 번에 우리가 배운 육조단경의
주인공, 육조 혜능 스님께서도 바로 이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그것도 본인이 읽은 것도 아니고, 남이 읽는 소리를 듣고 마음의
문이 열렸다 이런 정도니까, 여러분들도 이거를 독송하거나 들으
면서 얼마든지 성품이 열리는, 견성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
이죠.
금강경의 여러 내용 가운데 육조스님은 바로 응무소주이생기심
(應無所住而生其心) 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의 문이 열렸다. 이렇게
덕이본에는 그렇게 나와 있어요, 육조단경의 유통분에.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란 무슨 소리냐?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직역 하자면 이렇게 되지만, 그 마음을 낸다는 것은 바로 발심,
발원을 해라는 소리입니다. 발원을 해 가지고, 열심히 살되, 머무
는 바 없이 살아라. 그것은 뭐냐? 애착하지 않는다.
그래서 금강경의 핵심을 미리 말씀드리자며는, 다름 아닌. `열심히
살아라, 하지만 애착하지는 말아라.` 바로 이게 되겠습니다. `열심
히 살되 애착하지 않는 삶.` 이것이 바로 금강경에서 말하는 핵심
사상이고, 그것이야말로 진공묘유이고, 그렇게 할려면 그럼 어떻게?
어떻게 열심히 사는데 애착을 안하고 살 수 있느냐? 이런 질문이
오겠죠? 그것은 바로 발원을 세움으로써 가능해 진다. 일체 중생을
제도 하겠습니다. 머무는 바 없이 베풀겠습니다. 하는 이 두 가지
발원을 세움으로써 원생을 살게 되고, 그럼으로써 바로 이러한,
열심히 살긴 사는데, 나라든가, 아상 이런데 애착하지 않는 삶이
가능해 진다고 하는 것이죠.
이런 핵심 주제를 우리가 알고, 하나씩하나씩 글자를 공부하면
되는데, 이것도 역시 오가해라 그래서, 옛날부터 큰 스님들께서
금강경에 대한 주석서를 많이들 쓰셨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주석이 오가해라 그랬죠.
쌍림 부대사 찬(雙林 傅大士 贊)
육조 혜능 스님 구결(六祖 慧能 스님의 口訣)
규봉 종밀 선사 찬요(圭峰 宗密 禪師 纂要)
야보 도천 선사 송(冶父 道川 禪師 頌)
예장 종경 선사 제송 강요(豫章 宗鏡 禪師 提頌 綱要)
이게 오가해(五家解) 입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함허 득통( 涵虛 得通) 스님께서 설의(說誼), 거기
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신 이런 부분까지 해서, 말하자면 육가해
(六家解)라고 얘기 할 수가 있겠죠. 오가해를 참고해 가면서 우리가
공부하다 보니까, 차근차근 이렇게 나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와 같이 난 들었다 `하는 것도 뭐, 쉽게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대목이죠. 아난존자께서 부처님이 설법하시 것을 들은 얘기
를 표현했구나. 이렇게 하고 넘어가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오가해를 우리가 참고를 하면서 공부하다 보니까, 차근차근,
`이와 같이` 라는 말도 역시 진리의 세계를 말해 주고 있고, `나는
들었다` 할 때, 나라는 것도 쉽게 말하자면, 아난존자지만, 그러나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 남북동서에 유시아라. 동서남북 사방팔방에
오직 나 밖에 없구나, 나 아닌 것이 없다 이 소리죠. 이 세상에 약초
아닌 것이 없다고 합니다. 진짜 진정한 약초꾼은 무엇이든 다 약초,
약초 아닌 것을 찾기가 더 어렵다 그럽니다. 약초 인 것을 찾는 거
보다. 풀 한 포기도 전부 약초로 쓰일 수 있다. 그것처럼, 이 세상에
나를 찾는 거보다, 나 아닌 것을 찾기가 더 어렵다고 하는 거죠.
`들었다` 라는 것도 단순히 귀로 들었다 생각 할 수 있지만, 진정으
로 이 듣는 놈이 무엇인가, 반문문성,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듣는다
해서 진정으로 듣는 이 성품 자리 이것을 돌이켜 본다며는, 바로
`이와 같이 난 들었다.`라는 한마디 말에 불교의 온갖 진리가 다
깃들어 있다고 하는 거죠.
`이와 같이 난 들었다` 로 금강경이 끝나버립니다.
작성자 : 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