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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의 천수경강해-07

작성자일념통천|작성시간24.09.23|조회수5 목록 댓글 2

무비스님의 천수경강해-07

 

 

 

 

 

 

 

 

계수관음대비주(稽首觀音大悲呪) 원력홍심상호신(願力弘深相好身)

 

 

천비장엄보호지(千臂莊嚴普護持) 천안광명변관조(千眼光明遍觀照)

 

 

 

 

 

진실어중선밀어(眞實語中宣密語)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

 

 

속령만족제희구(速令滿足諸希求) 영사멸제제죄업(永使滅除諸罪業)

 

 

 

 

 

천룡중성동자호(天龍衆聖同慈護) 백천삼매돈훈수(百天三昧頓熏修)

 

 

수지신시광명당(受持身是光明幢) 수지심시신통장(受持心是神通藏)

 

 

 

 

 

세척진로원제해(洗滌塵勞願濟海) 초증보리방편문(超證菩提方便門)

 

 

원아칭송서귀의(願我稱誦誓歸依) 소원종심실원만(所願從心悉圓滿)

 

 

 

 

 

 

 

 

<천수경>강의를 지금 해오고 있는 중인데,

 

지난 시간에 ‘천수천안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 계청’ 까지 했습니다.

 

 

오늘은 ‘계수관음대비주 원력홍심상호신’ 여기서부터 할 차례인데, 앞에서 계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열어서 청한다’ 또는 ‘~하여 주십시오’ 하며 관세음보살님께,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에 뭔가 우리들의 바라는 바를 청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물론 관세음보살님의 원력과 그 모습과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심을 찬탄하는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계수관음대비주(稽首觀音大悲呪)라.

 

 

여기 <천수경>의 중심은 대비주, 또는 대다라니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사상이 담겨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관음대비주에 계수, 머리를 숙여 예배드립니다. 라는 내용이

 

바로 <천수경>은 대비주가 중심이고, 그것은 곧 관세음보살님의 정신과

 

관세음보살님의 자비가 표현되어 있다. 이런 뜻이죠.

 

 

그러한 대비주에 머리를 숙여 예배드립니다.

 

 

 

 

 

근래에 보면 이 대다라니를 외우는 기도들도 간혹 보이더라구요.

 

 

또 스님들 중에서도 이 신묘장구대다라니 라고도 하는 이것을

 

열심히 외우는 주문 수행법을 하시는 분들도 간혹 있습니다.

 

 

불교에 의지해서 뭔가 불가사의한 힘을 얻고자 한다든지, 능력을 바란다든지,

 

그런 마음이 있는 분들이 주로 그런 신앙에 빠져 들어요.

 

 

글쎄, 그게 좋은 건지 좋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

 

어떤 큰 능력을 얻은 분들도 역사상 더러 있습니다.

 

 

 

 

 

소위 수월스님이라고 지금 연변 쪽에 그 스님의 기념 사찰을 세우려는 운동이 근래에 일어나고 있는데

 

유명한 ‘북수월 남혜월’이라고 그 당시로서는 큰 도인 스님 두 분을, 북쪽에는 수월스님이고,

 

남쪽에는 혜월(慧月)스님으로 지칭되던 분인데, 그 수월스님께서는 이 다라니를 아주 열심히 외우셔서

 

큰 신통력도 있었고, 한 번 들으면 어떤 많은 말도, 경전의 어떤 구절도 잊어버리지 않는

 

‘불망념지(不忘念地)’를 얻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총지(聰智)라고 그러죠.

 

 

다라니를 번역하면 총지라 ‘모두 다 기억한다’ 이런 뜻인데

 

그런 능력을 얻고 싶어 하는 분들은 다라니를 열심히 외워서 그런 능력을 얻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다라니를 그렇게만 생각할 것은 아닌데, 그런 방향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신앙하고 그렇게 수행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이 관세음보살님은, 또 관세음보살 대비주에 담겨있는 그 내용은 원력이 아주 높으시다. 높고 깊으시다.

 

 

홍심(弘深)이라고 그러죠. “원력홍심상호신(願力弘深相好身)”

 

 

이것은 곧 관세음보살님을 뜻하고,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을 말하고,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정신을 뜻하는 것입니다.

 

 

중생을 다 건지겠다고 하는 어떤 고통 받는 중생도 다 건지겠다고 하는 그 마음이 원력이거든요.

 

 

그런 원력이 크고 깊다. 그런 뜻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당신하고 친한 사람, 아는 사람, 또는 불교에 귀의하는 사람 등으로 선별해서

 

자비를 베풀거나 고통을 구해주는데 그치지 않고. 당신을 비방하는 사람, 당신을 욕하는 사람,

 

당신에 반하는 사람 등 어떤 사람도 다 거두어주는 그런 마음, 그야말로 무차대비無遮大悲라 그러죠.

 

 

막음이 없는 큰 자비심이다. 그런 자비심을 가지신 분이 관세음보살님이십니다.

 

 

 

 

 

그리고 모습도 불교에서는 제일 이상적인 사람의 모습,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관세음보살님으로 나타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은 석굴암의 십일면 관음상도 제일 아름답게 조각되어있고,

 

소위 우리나라 불화(佛畵)뿐만 아니라 전체 미술사를 통해서 살펴보더라도

 

고려 불화를 제일 아름다운 미술, 또 예술성 높은 미술로 평가받는데

 

고려 불화의 거의 95% 가까운 그림이 전부 관세음보살의 그림입니다.

 

 

 

 

 

소위 수월관음이라고 하는 관음도가 거의 다 차지하고 있어요.

 

 

거기 보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놓았습니다.

 

 

또 대개 부처님의 깨달음에 의한 말씀이긴 하지만 사람으로서 자비와 지혜와 아름다움과

 

이런 모든 것을 가장 잘 표현하는 분이 관세음보살님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여기서 상호신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갖춘 분이다.

 

 

 

 

 

그리고 “천비장엄보호지(千臂莊嚴普護持)

 

 

그랬죠? 앞에는‘천수천안千手千眼’ 했지만, 여기선 ‘천비장엄’ 이라고 씁니다.

 

 

천수나 천비나, 팔에 손이 달렸지, 팔 없는 손이 어디 있으며 손 없는 팔이 어디 있겠습니까?

 

 

표현을 ‘천비’ ‘천수’ 이렇게 합니다.

 

 

천비로서 장엄을 해서 널리 중생들을 보호하고 감싸주고 지켜준다. 천수라는 뜻과 같죠.

 

 

 

 

 

지난 시간에도 염화실 기도문, 소위 관음예문 1절을 읽어드렸지만

 

‘얼마나 사랑하였기에 천의 손을 하셨을까? 얼마나 애달팠기에 천의 눈을 하셨을까?’

 

 

천의 손과 천의 눈으로 우리 중생들의 아픔을 감싸준다고 하는 뜻으로, 그게 장엄(莊嚴)이라는 거죠.

 

 

보살의 장엄은 귀걸이, 목걸이하고 아주 호화로운 옷으로 치장하는 것이 장엄이 아니고.

 

또 자기가 사는 집을 아주 값 비싸게 화려하게 꾸미는 게 장엄이 아니고. 그건 우리 중생들의 장엄이죠.

 

 

 

 

 

그런데 불보살의 장엄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자비심(慈悲心)을 갖추고, 지혜를 갖추고, 툭 터진 마음을 갖추고,

 

차별 없이 대하는 마음 씀씀이를 갖추는 것. 이게 그 사람을 장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마음의 장엄이 없다면 아무리 겉으로 잘 꾸몄다한들 꾸몄다고 할 수가 없죠.

 

 

여기서 장엄이라고 하는 표현을 했는데 천 개의 손으로도

 

그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들을 보살피는 데는 모자란다는 거죠.

 

 

그런 마음으로 장엄해서 널리 중생을 보호하고 지킨다.

 

 

 

 

 

“천안광명변관조(千眼光明遍觀照)”

 

 

천 개의 눈빛으로 두루두루 관조한다, 살펴본다.

 

 

살펴야 중생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아실 테니까

 

 

그렇죠.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되는가?

 

 

물론 액면대로 부처님이나 보살들의 자비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널리 두루 살펴서 보호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중생은, 모든 생명은 본능적으로 자기 사랑, 자기 보호, 자기 방어를 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러한 마음에서 관세음보살님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보살피고 감싸준다. 이런 표현입니다.

 

 

그래서 염화실 기도문인 관음예문에 이런 글이 있죠.

 

 

“아쉬울 것 없도다, 천의 손이여. 당신 잊고 있을 때도 감싸주시니 나 이제 더 이상 아쉬울 것 없도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가 꼭 찾아야만 관세음보살님이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관세음보살님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잊고 있어도 관세음보살님은 우리를 살펴주신다는 겁니다.

 

 

그게 보살이죠. 찾는다고 살펴주고 찾지 않는다고 살펴주지 않으면 그게 성인聖人이라고 할 게 있습니까?

 

 

그건 정情이죠.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하는 보통 중생들의 알음알이고, 보통 중생들의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정에 불과한 것이지. 사실 성인의 마음이라면 찾는다 안찾는다,

 

위해준다, 비방한다는 것과도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비방해도 상관없는 것이고, 찾는다고 해서 절을 수천, 수만 배를 하고

 

온갖 공양구를 올린다고 더 어여삐 더 잘 봐주는 게 절대 아니죠.

 

 

 

 

 

또 당신을 비방하고 헐뜯는다고 해서 배척하거나 안봐주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그런 분별을 한다면 그건 불교의 자비가 아니고 성인의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잊고 있을 때도 감싸주시니 나에게 더 이상 아쉬울 것 없도다.” 그랬습니다.

 

 

부처님의 자비 또는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를 이렇게 믿고 들어가야 돼요.

 

 

 

 

 

열심히 목 터져라고 부른다고 해서 돌아봐주고, 안부르면 돌아봐주지 않는다.

 

이렇게 믿으면 잘못 아는 것이고 잘못 믿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가 찾지 않아도 돌봐준다. 이렇게 믿어야죠.

 

 

그렇게 생각했을 때 우리 마음이 관세음보살님을 위하는, 관세음보살님을 향하는 마음이 없다 하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죠.

 

 

“외로울 것 없도다, 천의 눈이여. 당신 찾기 전에도 돌봐 주시니 나 이제 더 이상 외로울 것 없도다.”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외롭다, 아쉽다, 고통스럽다, 힘든다, 이런 마음이 있을 수가 없죠.

 

 

제대로 관세음보살님을 믿는 올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마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항상 관세음보살님은 나를 지켜주고, 나를 보호해주고, 나를 사랑해주고,

 

언제나 내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어도, 설사 내가 실망하고 비난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관세음보살님은 나를 지켜주고, 나를 돌봐주고 있다.

 

 

이렇게 믿고 들어가는 것이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제대로 된 신앙이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게 ‘천비장엄보호지 천안광명변관조’ 하는 내용을 부연 설명한 것입니다.

 

 

작성자 : 제이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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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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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맛장 | 작성시간 24.09.23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 작성자전법심 | 작성시간 24.09.23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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