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게시판

무비스님의 천수경강해-10

작성자일념통천|작성시간24.09.30|조회수4 목록 댓글 1

무비스님의 천수경강해-10

 

 

 

 

 

나무대비관세음(南無大悲觀世音)   원아속지일체법(願我速知一切法)

 

나무대비관세음(南無大悲觀世音)   원아조득지혜안(願我早得智慧眼)

 

 

 

나무대비관세음(南無大悲觀世音)   원아속도일체중(願我速度一切衆)

 

나무대비관세음(南無大悲觀世音)   원아조득선방편(願我早得善方便)

 

 

 

나무대비관세음(南無大悲觀世音)   원아속승반야선(願我速乘般若船)

 

나무대비관세음(南無大悲觀世音)   원아조득월고해(願我早得越苦海)

 

 

 

나무대비관세음(南無大悲觀世音)   원아속득계정도(願我速得戒定道)

 

나무대비관세음(南無大悲觀世音)   원아조등원적산(願我早登圓寂山)

 

 

 

나무대비관세음(南無大悲觀世音)   원아속회무위사(願我速會無爲舍)

 

나무대비관세음(南無大悲觀世音)   원아조동법성신(願我早同法性身)

 

 

 

천수경 오늘은 별원(別願)에 대해서 말씀 드릴까합니다.

 

별원과 16향이 천수경에서 중요시하는 그런 내용이죠.

 

총원(總願)이 있고 별원이 있다는 그런말씀을 드렸습니다.

 

총원은 대개 불자로써 반드시 바라는바 원하는바 이것이 공통적인 원이라면,

 

별원은 오로지 관세음보살님께만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별원은 특별한 원이다 이것죠.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지일체법(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知一切法)

 

대자대대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저희들이 속히 일체의 가르침을 모든가르침을 다 알기를 원하옵니다.

 

원컨대 모든 가르침을 빨리 알게되기를 원하나이다.

 

불교에 귀의하면 모든 가르침을 아는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일체법에서 모든존재의 이법을 생각할수도 있음니다마는,

 

그런 깊은의미보다는 천수경에 맞는 그런 수준으로 우리가 이해해야 되겠죠.

 

불교에 귀의하고 부처님을 좋아하고 불자다 절에간다,

 

뭐 이것이 모두 같은뜻이 되겠는데 육조 스님이 맨처음 절에 갔을 때

 

'그대가 무엇하러 왔는가' 이렇게 물었을 때

 

"부처가 되기위해서 왔습니다. 성불하기위해서 왔습니다" 이런말을 했습니다.

 

 

 

상당히 차원 높은 이야기죠.

 

그야말로 육조스님만이 할법한 그런 대답이죠.

 

그런데 일반적으로 불교를 알기위해서 왔습니다. 이것이 바람직하죠.

 

불교를 아는데는 물론 부처님을 알아야되고, 부처님가르침을 알아야되고,

 

부처님의 승단을 부처님을 따르는 교단도 알아야되고,

 

여러 가지 알아야하는것이 많습니다.

 

 

 

알지못하고 자기나름대로의 선입견만 가지고 절에 다니는분들이 의외로많습니다.

 

법사스님들이 말씀하는것을 들을려고 하지않고 자기나름대로 이미 불교는 이런것이다.

 

설정해놓고 절에 다닙니다.

 

그래서 시중에서 훌륭한 포교사가 뭐라하더라도 그건 포교사가 할 일이고,

 

스님의 설법은 스님의 일이고, '나는 내가 믿는 불교는 따로 있다'

 

그렇게 자기불교를 들고 와서 하는…그런 참 위험한일이죠.

 

 

 

모든일에는 역사가 있고 그만치 있는만치 알아야 할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것은 단순한것이 아니죠.

 

한두마디 누구한테 주워들은거 가지고 불교를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체법(一切法)을 빨리 알기를 원하옵니다.' 라고 하는 이런 원이 있습니다.

 

 

 

관음기도 좋아요. 좋은일이죠.

 

가서 자기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일이

 

좋은일이긴 합니다마는 천수경대로라면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고 받드는 이유도

 

내가 일체 가르침을 빨리 알기 소원이기 때문에빨리 알기를 원한다.

 

그것 때문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로써는 눈여겨 봐야할 내용이죠.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지혜안(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智慧眼)”

 

대자대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원컨대 저희들이 지혜의 눈이 빨리 얻기를 바라옵니다.

 

일체법을 알아야 지혜의 눈을 얻죠.

 

알지못하고 지혜를 얻을수가 없죠

 

지혜눈을 얻어야 인생을 제대로 살수가 있습니다.

 

 

 

지혜라고 하는것은 인생과 세상을 꿰뚫어보는 혜안(慧眼)이죠.

 

혜안을 얻어야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을 한껏 누릴수가 있고

 

또 세상에 취하해서 사는데 제데로 불수가 있는거죠.

 

그래서 우리가 관음기도를 하는것도 지혜의 눈을 빨리 얻기를 원하는 것이다.

 

천수경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마음에 새겨야죠.

 

 

 

관음전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시는분들은 반드시 천수경을 외우고 하죠.

 

외우고 하면 천수경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가르침들,

 

이걸 우리가 마음에 새겨서 기도를 해야 좋은기도, 바른기도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늘 해봅니다.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도일체중(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度一切衆)”

 

지혜(智慧)의 눈을 얻었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요.

 

대자대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저희들이 일체중생을 빨리 제도하기를 원하옵니다.

 

 

 

여기는 제도한다는게 어느 수준의 제도를 뜻하느냐, 이렇게 꼭 집어서 말씀드리기는 그렇습니다마는

 

어쨌든 관세음보살님이 누구신지, 불교가 무엇인지, 천수경이 무엇인지 이런것들을 잘 가르쳐서

 

그 가르침의 바른길을 이해하고 불교를 믿는것, 이것만으로도 일체중생들을 제도하는길이다.

 

이렇게 볼수가 있습니다.

 

 

 

물론 궁극에가서는 생사해탈을 하고 그 해탈을 모든 사람과 공히 나누는것.

 

각악 각학 각해원만 아렇게 나아가야 이렇게 나아가야 완전한 제도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우리가 그렇게까지 욕심은 부리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많은 사람들을 부처님앞에 귀의하게하고,

 

부처님가르침을 통해서 인생을 좀더 가치있게 보람되게 유익하게 바르게 살도록하는것,

 

이것이 일단은 중생제도라고 봐야 되겠죠.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선방편(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善方便)”

 

대자대비하신 관세음께 귀하며 받드오며, 휼륭한 방편(方便)을 빨리 얻기를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좋은 방편을 얻어야 중생제도도 할 수가 있고,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모두 성취됩니다.

 

어떤 일이든지 그래요.

 

좋은 방편을 얻어야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방법도 되죠.

 

 

 

좋은 방법을 얻어야 그 일을 효과적으로, 빠른시간안에, 정상적으로 성취 시킬수가 있다.

 

특히 중생제도를 한다 하는것은 정말 방편이 필요합니다.

 

그방편으로써 여러 가지가 있죠.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좋은 말을 한다든지, 같이 놀아준다든지, 같은 일을 해준다든지, 등등…

 

사습법이라고해서 중생제도의 방법을 여러 가지로 해놨는데 그것만 가지고 꼭 되는것은 아니죠.

 

좋은 방편이라고 하는것은‘그사람에게 딱맞는것' 그것이 좋은 방편이죠.

 

 

 

그래서 꼬집어서 무엇이다 이렇게 할 수가 없는 거죠.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다고 해서 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선방편이 안되는 거죠.

 

정말 마음에 우러나는 위로의 말씀 그것도 큰방편이 될 수가 있고 여가가지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편 이게 좋은 방편이 되겠죠.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승반야선(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乘般若船)”

 

그런 방편을 얻어서 반야(般若)의 배를 빨리 타기를 원하옵니다.

 

그렇게 될 수가 있는데 반야선(般若船)라고 하는것은 저승을 가는데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탄다,

 

이런 의미에서 저승에서 해탈(解脫)의 길, 극락(極樂)의 길로 가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극락의 길을 가는데는 지혜의 물로 가겠습니까? 지혜의 배로 갈수밖에 없습니다.

 

지혜가 없으면 갈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지혜가 제대로 우리한테 갖추어져 있다면 그대로 그 순간 그대로 극락입니다.

 

이런 의미를 담고 49재를 할 때 보면 반야용선을 그대로 상징적으로

 

종이배를 만들어서 법당에 걸어놓고 온갖 끈을 달고 해서 영가가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세계로 간 그런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죠.

 

 

 

그것은 그런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하는것이 아니라, 법사스님의 주옥같은 염불과 독경과 설법으로 인해서

 

지혜를 얻고 그러므로써 깨달음의 안목을 갖출때 그순간 그게 육신을 가졌든지, 육신을 버렸든지,

 

이승이든 저승이든 어떤상황이던, 그는 이미 극락을 누리고 있는것이다. 이렇게 볼수가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이 재 지낼때 반야용선을 달아놓는 의미도 잘알고 해야되고,

 

그런것들을 진행하는 스님들은 또 그것을 인연으로해서 좋은 가르침을 전해져야 하지않을까 이런생각도 해봅니다.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월고해(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越苦海)”

 

대자대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고해를 빨리 건너가기를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모두가 고해를 건너가기를 원하는것, 이것은 불교의 목적이

 

‘이고득락(移苦得樂) 이렇게도 표현하지 않습니까.

 

고통의 바다를 전부 건너간다. 그래서 즐거움을 얻는다.

 

이것이 불교의 목적이라고 그러는데 여기보면 순서가 반야용선을 타고

 

고통의 바다를 건너간다 이렇게 이어져 있죠.

 

자세히보면 연결이 매끄럽게 되는 데도 있고, 조끔 어색한데고 있고 그러나 쭈욱 연결이 됩니다.

 

작성자 : 제이제이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맛장 | 작성시간 24.10.01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